〈시사IN〉 제75호(지난 2월21일자)에 ‘제2 롯데월드 9000억원 특혜 내막’ 기사가 나가자 국회·언론사·시민단체·국방부 등에서는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대부분 격려와 자료 제공 요청이 주된 내용이었다. 그러나 국방부 쪽은 항의성 해명을 해왔다. 윤우 공군 정작부장(소장)은 보도가 나간 뒤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국익을 위한 충정으로 기사를 쓴 점은 이해하나 공군의 사기도 생각해달라”는 취지로 입을 열었다. 그는 “이종석 전 장관의 기억에 착오가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제2 롯데월드 신축, 안보 위해 접었다’라는 제목의 이종석 장관 인터뷰 내용에 대한 불만과 곤혹스러움을 표현한 것이다.

이 전 장관은 〈시사IN〉 인터뷰에서 “참여정부 당시 이미 성남공항 활주로를 트는 방안을 검토한 결과 항공 안전과 안보 면에서 허용 불가 결론이 나왔는데, 이상희 국방부 장관이 지금 와서 활주로 각도 트는 방안은 현 정부 들어 처음으로 검토해 마련한 것처럼 거짓 주장을 하고 있다. 그때 양쪽 활주로 각도를 트는 데 참여한 기술 장교 두 사람이 현재 공군 안에 있다”라는 요지로 답변한 바 있다. 윤 정작부장은 이에 대해 “참여정부 때 기술 검토에 참여한 공군 장교 두 명에게 확인해보니 보조 활주로(동편)는 그대로 둔 채 주 활주로(서편)만 각도를 트는 방안을 검토했다고 하더라. 이종석 전 장관의 기억에 착오가 있는 것 같다”라고 주장했다. 공군의 이런 주장은 서울 잠실 제2 롯데월드 초고층 건물 신축이 항공 안전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기 위해 참여정부와 MB 정부가 각기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가를 비교해주는 ‘진실 게임’이지만, 공군의 주장이 맞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시사IN〉의 특혜 의혹 제기와 기술적으로 항공안전 확보가 어렵다는 보도가 파문을 일으킨 뒤 2월19일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에서도 여야를 막론하고 정부가 제2 롯데월드 초고층 허용을 졸속 추진한다며 이상희 장관을 질타했다. 이상희 장관은 이 자리에서 비행 안전 문제에 관해 여야 의원의 추궁을 받고 진땀을 흘리다가 때마침 방한한 미국 하원의원단 일행의 예방을 핑계로 자리를 빠져나갔다. 그는 미국 하원의원단을 상대로 “여러분이 나를 궁지에서 끌어내줬다. 한·미 동맹의 진가가 여기서 발휘됐다고 본다”라는 말을 남겨 자질 시비에 휘말린 끝에 국방위원들에게 사과하는 해프닝까지 빚었다.

항공 안전 선진국의 경고 외면한 국방부

각계에서 국방부가 제2 롯데 초고층 건축을 허용해주려고 성남공항의 비행 안전을 팽개쳤다는 분노의 목소리가 높아간다. 하지만 국방부는 여전히 “성남공항 ㅅ자형 두 개 활주로 가운데 동쪽 보조 활주로를 3도가량 변경하고 계기 장비만 추가로 설치하면 초고층 제2 롯데가 들어서도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라는 취지의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시사IN〉은 후속 취재 과정에서 이명박 정부 들어 국방부가 서둘러 롯데에 초고층 건물 신축을 승인해주기 위해 내놓은 방안이 졸속이라는 점을 입증하는 비밀 보고서를 입수했다. 2003년 10월19일부터 열흘 동안 미국연방항공청(FAA) 비행 안전 전문가 3명이 성남공항에 찾아와 현지 실사를 한 보고서다. 당시 한국 건교부(현 국토부) 항공안전본부는 제2 롯데 초고층 신축 허용 가능성 검토를 위해 항공 선진국인 미국연방항공청(AFS-420 소속) 항공 안전 특별 전문가 3명을 초빙했다. 이들은 2003년 10월23일 한국 군용기에 탑승해 성남공항 ㅅ자형 활주로 중 주 활주로(서편)를 이륙해 제2 롯데월드 상공을 비행한 뒤 다시 같은 활주로로 착륙하는 절차(ILS RWY20)를 밟았다.

미국연방항공청(FAA) 전문 기술진 3명이 2003년10월 말 건교부 항공안전본부 초청으로 내한해 한국 공군기를 타고 성남공항에서 이륙해 제2롯데 부지 위를 실험 비행(위)한 뒤 비정밀 접근 시 위험성을 경고하는 보고서를 냈다.
미국 측 전문가들은 ‘제2 롯데월드 부지 지면은 해발 83피트이고, 계획된 제2 롯데 건물 높이 1800피트를 더해 총 높이는 해발 1883피트’라고 확인한 뒤 다음과 같은 보고서를 작성했다.

“성남공항 서편 주 활주로를 북쪽 방향에서 남쪽으로 착륙하는 군용기의 비정밀 접근(VOR/DME RWY 20) 과정에서 최종 접근 코스는 건축 예정인 제2 롯데월드 빌딩을 포함하게 된다. 활주로에서부터 호텔까지 짧은 거리는 착륙 때 현재의 ‘최저 강하 고도’까지 강하를 허용하기 위한 단계 강하 픽스(Step Down Fix)의 설정을 불가능하게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절차의 재설계가 필요하다. 초고층 호텔이 착륙 시 안전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려면 항공기 접근 각도를 현행보다 5도 가량 틀어야 한다.”

보고서 전문에 “해발고도 1883 피트에 들어설 제2 롯데 신축계획을 한국 공군이 매우 염려하면서 롯데에 540피트(36층)로 제한하도록 권고했다. 제한 근거는 건설 계획 위치가 공항 표면 및 계기접근절차 표면에 모두 영향을 미치는 위치이기 때문이다”라고 적었다. 이런 공군의 진지한 자세에 감명 받았다고 표현한 이들은 미국으로 돌아간 지 2개월여 뒤인 2004년 1월 ‘세계적으로 직선 착륙이 불가능하고 선회 방식 착륙만 가능한 비행장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위험을 회피할 최저 착륙 결정 고도가 얼마나 될지 정확히 알 수 있는, 제2 롯데와 같은 수직 인공장애물의 사례 정보도 없다’는 요지의 비망록을 추가로 보내왔다.
미국연방항공청 전문가들의 현지 실사 결과 보고서 중 이 대목은 국방부가 최근 내놓은 ‘(서편 활주로는 그대로 두고) 동편 활주로 3도 변경으로 충분히 안전하다’는 주장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보여준다. 왜냐하면 미국의 전문 기술진은 항공기가 이륙할 때 장애물 회피 구역을 벗어나 비교적 안전하다는 서편 활주로에 대해서조차 착륙 각도를 변경하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편 활주로(190도)는 서편 주 활주로(200도)보다 10도나 제2롯데 초고층 방향으로 기울어 있으니 그 위험성이 훨씬 높다는 점은 불문가지다. 그런데도 국방부는 ‘서편 주 활주로는 현재 상태로 그냥 두고 동편 보조 활주로만 3도가량 손대면 안전에 문제가 없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국방부가 개별 기업인 롯데를 돕기 위해 얼마나 무리수를 쓰고 있는지를 그대로 대변한다.

미국 항공 안전 전문가들이 성남공항 현지 실사를 통해 특히 강조한 부분은 착륙 과정에서 비정밀 접근 중 가장 정확성을 자랑한다는 ASR이었다. 이는 구름이 낀 날이나 항공기 계기 결함이 생겼을 때 안전한 착륙을 돕기 위해 지상의 관제사가 조종사에게 무선으로 경로 정보를 보내 유도하는 절차를 말한다. 미국 자문단은 보고서를 낸 뒤 미국으로 돌아가 제2 롯데월드 초고층 건물이 들어설 때 특별히 ASR 분야에 문제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하는 비망록을 따로 작성해 2004년 1월 말 건교부 항공안전본부에 보내왔다. 〈시사IN〉이 입수한 이 비망록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제시된 제2 롯데 건물은 200도 방향 활주로(서편 활주로)의 ASR 보호구역(사다리꼴) 안에 위치하게 된다. 그것은 현존 ASR 절차를 비현실적으로 만들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해발 2140피트에 달하는 최저 강하 고도(MDA)가 필요하다. 제2 롯데가 ASR 보호구역 밖에 위치하려면 (착륙 항공기가) 활주로 끝부분으로 접근하는 각도를 최소 25.03도는 틀어서 유지해야 한다. 항공기의 활주로 접근 각도를 이 정도로 돌리는 절차는 일직선 (착륙)운용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오로지 ‘선회 방식’으로 운용되는 ASR 절차로만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가능한지, 실제 최저 착륙 결정 고도가 얼마나 될지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수직 인공 장애물의 사례에 대한 정보가 아직 없다.”

동편 활주로 3도 변경은 눈 가리고 아웅하기

〈시사IN〉이 보고서 내용을 공군 전투기 조종사와 항공 기술 전문가들에게 문의한 결과 “미국연방항공청 자문단의 지적은 한마디로 비행장 활주로 전방에 그런 초고층 인공 구조물을 세운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위험천만한 조롱거리”라는 경고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즉 미국 자문단의 지적은 흐린 날에도 구름층이 제2 롯데 건물 꼭대기(1800피트)에서 최소한 300피트 이상 더 높은 2140피트 지점에 머물러 있어야 군용기의 안전한 ASR 착륙이 가능하다는 경고라는 것이다. 구름이 제2 롯데 높이보다 낮게 깔린 날은 충돌할 위험이 높아 항공기 착륙이 어려워진다는 지적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 항공 안전 자문단의 보고서에는 또 제2 롯데가 들어서면 현재 국방부가 가만 놔둬도 안전하다며 활주로 각도 변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 서편 주 활주로조차 착륙 항공기의 일직선 운용은 불가능하고, 25도 이상 선회해 들어와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에 대해 한 현직 공군 전투기 조종사는 “착륙 시 최종 접근 경로를 25도 이상 오프셋해야 한다면 구름을 뚫고 내려올 때 활주로 연결선과 맞추기가 어려워 사고 위험이 높다. 그 위험을 피하려다 보면 조종사는 마지막 착륙 과정에서 포기하고 급상승해 선회 비행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해 충돌 위험 또한 높다”라고 염려했다.

미국연방항공청의 전문가 3명은 초고층 제2 롯데월드가 성남공항을 이용하는 군용기의 비정밀 계기 착륙에 미치는 위험성을 실험 비행을 통해 조사 분석했다. 이들은 보고서 말미에 미국 내에서의 항공안전 위협 요인이 되는 인공 구조물 불허 내지 제거 사례를 첨부해 제공했다.
모든 비행장의 계기 접근 절차는 비상 상황을 기준으로 한다는 점에서 공군과 국방부가 정상 비행 상황의 정밀 계기 비행만 염두에 두고 제2 롯데 초고층 건물이 들어서도 비행 안전이 보장된다고 우기는 점도 문제다. 비상 상황이란 갑작스런 통신장비 고장으로 조종사와 지상 관제사 사이에 무선 통신이 두절된다든지 항공기 내에 설치된 자세 계기(노 자이로 어프로치)가 고장 나서 이착륙이 위험해지는 상황 따위를 일컫는다. 국방부 측은 그런 극한 비상 상황은 그동안 발생하지 않아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항공 안정 불감증이라고 개탄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예비역 공군 대령인 김성전씨는 “최근 유럽 상공에서 대한항공 여객기가 1시간 40여분 동안 무선통신이 두절돼 초비상 상태에 들어간 일이 있다. 또 1999년 12월에는 보잉 747 화물기가 영국 런던 스탠스테드 공항 활주로에서 이륙하다 비행장을 이탈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영국 정부 사고조사단은 ‘비행기 내 자세 계기가 고장 난 상태에서 이륙하다가 사고가 발생했다’라고 결론지었다”라고 반박했다. 

결국 항공 선진국인 미국연방항공청이 참여정부 당시 성남공항과 제2 롯데 신축 부지 사이를 직접 비행해보고 내린 결론은 ‘항공 안전을 위협하는 인공적인 위험시설물’이라는 것이다. 현재 200도 각도인 서편 활주로조차 제2 롯데가 들어설 경우 비정밀 착륙 시 비행안전에 위험하므로 5도 이상 틀어 접근해들어와야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 미국 측 조사 결론이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 국방부는 별다른 전문 기관 조사나 항공 안전 영향평가도 거치지 않고 서편 활주로는 그냥 둔 채, 현재 각도 190도인 동편 활주로를 3도 틀어 193도로 바꾸면 제2 롯데월드를 신축하더라도 다른 계기 장비를 보강하므로 성남공항의 비행 안전이 보장된다고 우기는 것이다.

따라서 제2 롯데 신축 허용 논란의 최대 쟁점인 비행 안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국회 차원에서라도 정부의 허용안에 대한 철저한 기술 검증을 다시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