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일각에서는 ‘초조감의 발로’라며 ‘비딱한’ 잣대를 들이댄다. 정 최고위원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받고 있는 걸 꼬집은 것이다.
지난 1월5일 서울고법(이기택 부장판사)은 정몽준 최고위원이 지난 총선 때 내걸었던 뉴타운 공약이 선거법에 저촉된다며 민주당이 낸 재정 신청을 받아들였다. 재정 신청은 검사가 ‘혐의 없다’며 불기소한 사건에 대해 고소·고발인이 ‘기소해달라’고 상급 법원에 요청하는 제도로, 이를 재판부가 받아들였다는 것은 곧 ‘유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당시 재판부는 “오세훈 서울시장은 뉴타운 추가 지정에 대해 부동산이 안정화되면 고려할 수 있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설명했을 뿐, 뉴타운 사업에 명시적·묵시적으로 동의한 것으로 볼 수 없다. 정 최고위원이 마치 오 시장이 동작·사당 뉴타운 지정에 동의한 것처럼 허위 사실을 유포한 점이 인정된다”라고 판시했다. 법원이 재정 신청을 받아들이자 당초 ‘무혐의 처리’했던 검찰은 1월19일 정 최고위원을 불구속 기소했다.
만약 이런 법원과 검찰의 판단이 정식 재판에까지 이어져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확정될 경우 정 최고위원은 의원직을 잃는 것은 물론이고, 아예 대권 도전의 꿈을 접어야 한다. 5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되기 때문이다. 정 최고위원에게 6선 의원과 수도권 진출의 영예를 안겨준 뉴타운 공약이 거꾸로 그의 발목을 잡을지도 모르는 위태로운 상황이 된 셈이다.
정 최고위원 측은 겉으로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이다. 몇몇 측근은 “우리법 연구회(강금실 전 법무부장관 등 개혁 성향 판사들의 모임) 출신 ‘꼴통’ 판사를 만나 재정 신청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본재판에서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내부 기류는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한 측근 인사는 “설마 아웃시키기야 하겠는가” 하면서도, “지금까지 재정 신청이 받아들여진 10건 가운데 7건이 유죄, 3건이 무죄로 판결났기 때문에 결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라고 심각성을 인정했다.
오 시장은 체면 차리고, 정 최고는 배지 챙기고?
정 최고위원의 ‘목줄’을 거머쥔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잠재적 대권 경쟁자인 오세훈 서울시장이다. 오 시장이 정 최고위원과 만나 뉴타운에 대해 나눴던 대화 내용과 분위기를 어떻게 진술하느냐에 따라 정 최고위원의 허위 사실 유포 여부에 대한 판단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2월9일 열린 첫 공판에서 재판부는 오세훈 시장을 3월3일 공판의 증인으로 채택했다.
다른 한 서울시 인사도 “‘MJ가 그렇게 받아들였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정도에서 진술의 적정선을 찾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물론 재판부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별개 문제다.
이처럼 정몽준-오세훈 두 잠룡이 고차방정식을 풀기 위해 머리를 싸맨 가운데, 민주당에서는 정동영 전 장관이 역시 이 재판으로 속을 끓이고 있다. 정 전 장관의 4월 재·보선(전주 덕진) 출마를 반대하는 당내 인사들이 그 명분 가운데 하나로 이 재판을 꼽기 때문이다. 정세균 대표의 측근인 최재성 의원은 “정동영 전 장관이 출마했던 동작을을 놓고 재판이 진행 중이다. 최소한 그 재판 결과는 지켜봐야 하는 것 아니냐”라면서 정 전 장관의 4월 복귀를 반대했다. 이에 대해 정 전 장관 측은 “논리는 그럴싸한데, 속내는 정동영 발목잡기다”라며 불쾌해한다. “MJ가 날아가면 결국 DY(정 전 장관)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꼴인데 여권이 그렇게 하겠느냐” “검찰에 이어 사법부까지 권력에 넘어가는 양상을 민주당 지도부가 뻔히 알면서 재판 결과를 지켜보자는 건 시간 끌기다”라는 것이다.
실제로 오세훈 시장과 정몽준 최고위원이 ‘공생’ 쪽으로 방향을 잡은 걸 보면 동작을 재선거는 불발로 끝날 공산이 크다. 하지만 고소·고발의 당사자 격인 정동영 전 장관 처지에서 보면 일찌감치 손 털고 나갈 수도 없어 오히려 재정 신청이 받아들여진 게 부담으로 작용한다.
정치 9단이라 불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은 어려울 때마다 “기회는 천사의 얼굴로 찾아오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동작을에 발목이 잡힌 잠룡 3총사 가운데 과연 누가 이 위기를 기회로 승화시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