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한향란사주 카페를 찾은 젊은이들(왼쪽)은 ‘누군가가 나의 미래를 고민해주었다’라는 점에 만족을 느낀다.
“왜 지금이죠?” “그게… 중요한가요?” “그럼요, 왜 지금 이 시점에 이곳을 찾아왔는지가 제일 중요해요. 이곳에 오게 된 ‘동기’를 말해주거든요. 심각한 문제가 있어서 온 건지, 아니면 뭔가 고민을 털어놓고 이야기할 상대가 필요한 건지.”

차마 ‘취재하러요’라고 말하지는 못하고 잠시 뜸을 들였다. 첫날이라 말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며 말문을 튼 건 상담교수다. 2월18일 서울 한 대학의 학생생활상담연구소. 그곳에서의 상담은 일종의 ‘오리엔테이션’으로 시작되었다. 전체 20% 이상의 학생들, 즉 다섯 명 중 한 명은 이곳 학생생활상담소를 방문했다고 한다. 상담교수는 “꼭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좀 더 편안해지려고 이곳에 왔다고 생각하라”고 말했다.

상담 시간과 상담 주기는, 상담 전 1시간30분에 걸쳐 실시하는 다면적 인성검사(MMPI)와 문장완성검사(SCT) 결과를 토대로 결정한다. MMPI와 SCT의 결과는 꽤 상세하다. 내담자의 불안·우울·공격성·반사회적 행동·부적응 정도가 그래프에 나타난다. 이 그래프가 높이 떠 있으면 ‘상담 요망’. 심한 경우 병원에서 약물치료를 권하기도 하는데, 최근 걱정할 만한 수준의 학생이 늘었다고 한다.

검사 후 상담까지는 1주일, 상담 완료까지는 기약이 없다. 1회 상담으로 충분한 경우는 드물고 길게는 3, 4년에 걸쳐 상담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상담교수는 1주일에 한 번씩 이야기를 나누며 ‘생짜’였던 내담자의 마음이 무르익어가는지, 이야기할 준비가 되어가는지를 가늠한다. 교수는 “충분히 잘하고 있고, 지금은 성장통을 겪는 중이다. 느긋하게, 당신의 성장을 위해 온다고 생각하라”며 첫 상담을 마무리했다. 그렇게 허한 마음을 어루만지는 상담은 약한 불에 조금씩 뜸 들여가며 끓여 먹는 죽처럼 은근히 진행된다. 

상담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

생활상담소에서의 상담이 ‘슬로푸드’라면, 이쪽은 ‘패스트푸드’다. 대학가 앞이나 번화가  후미진 골목에 하나씩 자리 잡고 있는 ‘사주 카페’ 이야기다. 2월11일 이화여대 앞. 한 사주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탁자에 몸을 바짝 붙인 채 운세를 푸는 상대의 입에 시선 집중한 사람들이 눈에 띈다. 등받이에 기대고 편안히 앉은 이는 거의 없다. 진로·애정·결혼·재물·건강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일반 상담(종목당 5000원)과 모두 아우르는 스페셜 상담(15000원), 타로카드와 사주 풀이를 함께 하는 패키지 상담(2만원) 등이 마련돼 있다. 일반 상담에 걸리는 시간은 40~45분 정도.

자리를 잡고 앉자 중년 여성이 “인상이 참 좋으시네요”라고 말을 건네며 마주앉았다. “뭘 보러 오셨나”라고 묻기에 “요즘 젊은 사람이 제일 많이 보는 것”을 주문했다. 그는 ‘취업’과 ‘애정운’을 봐준다며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각을 묻고, 그것을 어려운 한자를 섞어 빼곡히 적어나간다. 한 글자도 알아볼 수 없어 무안한 기분이 든다. 그저 “어떤가요?”라고 물을 수밖에 없다. 마치 난해한 병원 차트를 보는 환자가 된 기분이다.

“아가씨 사주가 좀 춥네”라는 말에 순간 마음이 덜컥한다. 재미삼아 온 건데 갑자기 상담자의 한마디 한마디가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묻는 목소리가 사뭇 진지해졌다. “반신욕을 많이 하세요.” 추상적인 사주에 비해 ‘실용적인’ 답변이다. ‘추운 사주엔 반신욕을 많이 하라고?’ 하는 생각이 든 건 역시 나중. 그때는 “아, 반신욕!”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로도 사주 풀이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추운 사주’인 나에게 “겨울보다는 따뜻한 여름에 인연을 만나야 한다. 여름에 만난 사람과 함께하는 게 여생이 따뜻하다”라고 했다. 일단 ‘춥다’는 말로 장래와 애정운까지 한 번에 풀어준 상담의 ‘일관성’에 경의(?)를 표하며 일어섰다. 일어서기 전, 상담자는 전화번호 하나를 적어주며 고민이 생기면 전화하라고 했다. 그는 “요즘 심야 상담전화가 성업이어서 어느 날엔 한숨도 못 잘 때도 있다”라고 덧붙였다. 알고 보니 그는 케이블TV에서 심리 상담과 사주 풀이 코너를 진행하는, 나름대로 유명 인사였다.

집에 와 반신욕을 하며 상담 내용을 찬찬히 되짚어보았다. 논리적인 허점은 많았지만, ‘복채’가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왜 볕 좋은 오후에 그늘진 청년들이 그 카페에 앉아 있는지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누군가가 나의 미래를 함께 고민해주었다는 것만으로도 고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명 유슬기 인턴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ima03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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