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2005년 한국은행의 조언을 받아 ‘모조지폐’를 제작했다고 한다. 당시 한은 발권국장이었는데 이런 사실이 있는가?내 기억에는 없다. 2005년 새 화폐를 만들면서 도안을 활용할 때 적용할 기준을 만들었다. 영화 촬영처럼 모조지폐가 필요한 경우 제작 전에 한국은행에 신고해야 한다. 사용 후에는 한국은행 감독 아래 폐기한다. 그러나 경찰이 모조지폐를 만들겠다고 한국은행에 알려온 적은 없다.경찰이 실제로 협조 요청을 했다면 받아들여졌을까?수사용으로 사용했다가 시중에 나가면 파장이 크다. 가짜 지폐가 시중에서 사용되면 전반적으로 돈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바뀐다. 돈이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한국은행과 조폐공사에 대한 신뢰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돈이라는 게 만들 때 원가가 100원도 안 되는 종이쪽지이지만 이를 한국은행에서 보증하니 믿고 유통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큰 혼란이 염려되므로 심각하게 검토했을 것이다.
미국 FBI는 수사용 가짜 지폐를 갖고 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국내에서는 그동안 수사용 가짜 지폐를 마련하자는 목소리가 없었는가?없었다. 미국하고 우리는 상황이 좀 다르다. 미국에 비하면 마약범죄처럼 수사에 돈이 들어가는 범죄가 많지 않다. 또 미국에서 수사에 사용하는 가짜 지폐는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인쇄된 잉크가 손상되게 만들어져 있다.
경찰이 제작한 것은 가로·세로 크기가 1mm씩 더 크다고 한다.지폐는 100% 코튼(면)이다. 습기가 차면 늘어날 수 있다. 1mm 크냐, 그렇지 않으냐는 별 상관없다. 우리 속옷 같은 것이 젖었을 때 당기면 늘어나듯 지폐도 물에 넣었다 당기면 쉽게 늘어난다. 5mm 이상 차이난다면 모르겠지만 모조 지폐를 1mm 크게 제작했다면 실제 화폐와 큰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다.
2005년 새 은행권이 나온 것도 위조지폐(위폐) 범죄와 관련 있나?당시 새 은행권 기획을 내가 맡았다. 위폐가 급격히 늘고 있었기 때문에 새 돈을 찍어야 했다. 옛날 돈은 위폐 제작을 방지할 장치가 없었다. 더구나 스캐너같이 인쇄할 수 있는 기술이 발달해 위폐가 갑자기 많아졌다. 한국은행에서 위폐를 검증하는 과정은?‘자동정사기’로 한다. 뱅크노트프로세서라 불리는 BPS1000이라는 기계다. 지폐가 기계 위를 지나가면 위폐인지 아닌지 걸러낸다. 위폐로 추정되는 경우 튀어나온다. 위폐를 전문적으로 식별하는 한국은행 직원이 그것을 확인한다. 도사 같은 직원들이다. 내가 발권국장으로 있을 때 100장짜리 뭉치에 가짜 돈을 넣어놓고 꺼내봐라 하면 딱 집어내곤 했다. 한국은행으로 들어온 지폐는 원칙적으로 한 번씩 위폐 검사를 받고 시중으로 나가나?100%는 못한다. 워낙 양이 많다. 이제 5만원권이 나오고 만원권 양이 줄어들면 점검하는 비율이 훨씬 높아질 것이다.
경찰이 납치범에게 준 것은 위폐인가, 모조지폐인가?위폐는 받는 사람을 속여서 쓰기 위한 것이다. 진짜처럼 위조해서 사용할 목적으로 쓰는 것이 위폐다. 모조지폐는 실제 지폐와 구별할 수 있게 제작한다. 또한 ‘모조지폐’라는 것을 쓰도록 되어 있다. 영화를 찍을 때 뿌릴 용도로 모조지폐를 만든다면 한쪽 면만 인쇄하기도 한다. 촬영이 끝난 후 한은에서 인정하는 사람의 입회 아래 이를 잘라 폐기한 후 그 기록을 보내야 한다. 그렇다면 이번 사건에서 경찰이 사용한 것은 위폐인가?지금 내가 명확히 판단하기는 어렵다. (이익을 취할 목적으로) 돈으로 사용하려고 만든 게 아니니 위폐가 아닐 수 있다.
이번 사건으로 경찰은 가짜 지폐 7000만원을 유통시킨 셈이다. 국내에서 발생하는 위폐 사건으로 봤을 때 어느 정도 규모인가?바다이야기(사행성 오락)에 500만원 상당의 위폐를 사용한 범죄가 3건 정도 적발됐다. 그것이 국내 위폐 범죄 중 가장 큰 규모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보기에는 이번이 아마 (가짜 지폐 사건 중) 제일 규모가 큰 것이 아닌가 싶다. 7000만원이면 7000장인데, 그렇게 많은 위폐를 만들어 쓴 경우는 거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