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일 그림
주부 김인애씨(40·서울 중계동)는 중학교 3학년인 아들의 천진난만하던 시절을 기억한다. 그때 아들은 마치 거북이 같았다. “행동은 굼뜨고, 무슨 말을 하면 씨익 웃기만 했다”라고 김씨는 추억했다.

그러나 아들이 ‘질풍노도’(사춘기)에 휩쓸리면서 거북이는 공작이나 하이에나 혹은 야생마로 변했다. 틈만 나면 밖으로 달려 나가거나, 시끄러운 음악을 즐겨 듣거나, 머리 염색을 하곤 했던 것이다. 게다가 느릿하고 친근한 말투도 빠르고 퉁명스럽게 달라졌다.

김씨가 더 낙담할 일은 최근에 벌어졌다. 날이 화창하던 2월 첫째 주 금요일 저녁, 아들이 감쪽같이 증발한 것이다. 아들이 남긴 것은 “오늘 들어오지 않으면 가출한 거야”라는 말 한마디뿐이었다. 김씨는 그 말을 귓등으로 흘려버렸다. 아들이 비교적 수더분한 데다 이제껏 단 한 번도 가출한 적이 없어서였다. 그날 밤 김씨는 생애 처음으로 자식 탓에 날밤을 세웠다. 아들에게 휴대전화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며칠 전 휴대전화 때문에 공부를 하지 않는다며 일방적으로 통화 정지를 해놓은 상태였다.

이유 없는 가출, 부모를 놀래키다

가출 이틀째. 아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큰 해일처럼 걱정이 몰려오고 온갖 잡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쁜 아이들과 어울리는 건 아닐까?” “돈 한 푼 없이 나갔는데, 도둑질이라도 하다 잡히면 어쩌지?” 등등. 혹시나 해서 아들의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본 적이 없다’는 대답뿐이었다. ‘가출 신고를 할까’ 고민도 해보았지만, 나중에 문제가 복잡해질 것 같아 포기했다. 애간장이 타는 날이 하루 이틀 늘어났다.

가출 5일째. 김씨 부부는 동네 PC방과 찜질방 10여 곳을 모두 뒤졌다. 그러나 허사였다. 침울한 얼굴로 집으로 돌아온 부부는 아들의 가출 이유를 곰곰이 짚어보았다. “우리가 뭔가 섭섭한 말을 한 건 아닐까?” “혹시, 걔가 우리가 모르는 잘못을 저지른 건 아니겠지?” 아무리 헤아려봐도 그 까닭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부부는 성심성의껏 뒷바라지를 해왔다고 자부하던 터였다.

그날 저녁, 부부는 가출 관련 자료를 뒤적이다가 깜짝 놀랐다. 청소년 100명 중 16명 정도가 가출한 경험이 있고, 가출 충동을 느낀 학생 중 28% 정도가 “별다른 이유 없이 갑갑해서”라고 응답했기 때문이다(한국청소년상담원 자료). 특히 “최근 들어 특별한 이유 없이 가출하는 ‘자아상실형 가출’을 하는 청소년이 늘고 있다”라는 대목에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가출 엿새 뒤, 아들이 ‘기적같이’ 들어왔다. 그날 부부는 가출 청소년을 모험가·반항자로 부르는 까닭을 알 수 있었다. 조심스레 어디에서 먹고 잤느냐고 묻자 아들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친구 집에서….” (확인 결과, 아들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가출 이유에 대해서는 “대답하기 싫어!” 소리를 반복하더니, 마지못해 “그냥 집이 싫었어. 갑갑해” “휴대폰을 일방적으로 끊은 것도 짜증났어”라고 말했다.

ⓒ뉴시스특목고를 향한 경쟁은 압박감을 부른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성장통'을 겪는 중학생들을 피로에 빠뜨린다.
중학생들의 놀라운 ‘이중성’

“겨우 그것 때문에 가출한 거야?” 김씨는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이번 사건의 결말이 ‘개과천선을 다룬 사춘기 드라마 같다’는 생각을 했다. 또 자신이 아들의 경이로운 외적 성장(8개월 만에 키와 몸무게가 14cm, 10여kg 늘었다!)에만 관심을 쏟았지, 내적 성장통과 심리 변화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김씨는 더 이상 노도(怒濤) 같은 아들의 심사를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같은 마무리는 두 번째 가출을 부를 가능성이 높다. 아들의 내적 상처를 봉합해주지 않고, 소독약만 살짝 찍어 바른 수준에서 정리했기 때문이다. “중학생 가출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가족 간 의사소통 부재 같은 가정 문제가 곪아터진 것이라 볼 수 있다. 자녀의 마음을 세세히 읽고, 좀더 지혜롭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라고 신경정신과 김선욱 원장은 말했다.

김 원장이 걱정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김씨처럼 많은 중학생 부모가 사춘기 자녀의 급격한 감정 기복을 눈치채지 못하거나 대처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사실 학자들조차 왜 사춘기에 인식 능력과 사회적 적응 능력이 한꺼번에 변하는지 아직 그 해답을 잘 모른다. 발달심리학에서는 이 시기에 성인이 됐을 때 키의 98%까지 자라고, 호르몬 분비가 왕성해지면서 성적 욕구와 공격 욕구가 산만하고 방향성 없는 상태로 표출된다고 분석한다. 그뿐만 아니라 성적 자극에 대한 관심과 두려움이 증폭되고, 전반적으로 우울하고 공격적으로 변한다.

또 대다수 중학생의 내면에는 두 가지 욕구가 공존한다. “하나는 부모에게 의지하고 싶은 욕구, 다른 하나는 부모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욕구다”라고 김애순 교수(아주대·심리학)는 말했다. 이들 두 욕구는 시시때때로 상충하며, 그 결과에 따라 아이는 부모에게 순종하기도 하고 가출하거나 반항하기도 한다(물론 이 시기에 부정적인 면만 표출되는 것은 아니다. 도덕성이 발달하고 양심도 점차 강화되어 사회에서 설정한 행위 규범을 넘어서면 죄책감도 느낀다. 인간의 선악과 권리, 의무와 규범 따위를 이해하는 것도 이 무렵이다). 

그러나 이같은 변화무쌍한 자녀의 감정을 이해하면서 다독여주는 부모는 드물다. 감싸주긴커녕 권위를 내세워 아이를 조종하고 윽박지르고 이끌려고만 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부모들이 자신이 행사하는 권위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아동기 자녀들은 보통 엄마나 아빠가 아는 것도 많고, 힘도 세고, 따뜻한 사람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사춘기에 접어들면 생각이 달라진다. 부모의 능력과 실력이 자신이 기대하고 믿는 만큼 안 된다는 점을 알고 낙담하거나 좌절하는 것이다.

이 시기는 중학생이나 어른에게 모두 중요하다. 부모가 자신의 나약함을 감추고 더 권위적이 되거나 자녀를 강압적으로 교육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또 아동기처럼 보상과 처벌 위주로 통제하려 들면 자녀는 더 반항적이고 적대적으로 변할 가능성이 높다. 이 시기에 자녀가 보이는 저항, 거부, 거짓말, 분노, 숨기기, 책임 전가, 남 괴롭히기, 공격적 행동 등은 거의 모두 부모의 권위에 저항해 발생한다. 물론 부모로서도 어쩌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경쟁 사회에 대응하려면 자녀를 학교로, 학원으로 내몰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이른바 공부 좀 한다는 중학생들은 ‘이중고’에 시달린다. 불안하고 복잡한 감정 추스르랴, 경쟁에서 이겨 특목고에 진학하랴, 그야말로 3년간 정신이 쏙 빠진다.

ⓒ시사IN 한향란중학생들이 처한 심리적.육체적 상황을 고려하면 비행이나 가출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아이 취급하면 스트레스 늘어”

얼마 전 유희정 교수(분당서울대병원·신경전신과) 팀은 이른바 교육 특구라 하는 네 지역(대치동·분당·중계동·목동)의 10대 스트레스 ‘유병률’을 조사했다. 그 결과 중학생이 고등학생보다 더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원인을 유 교수는 “일찍부터 특목고 진학을 준비하는 등 입시 스트레스가 늘어난 탓으로 보인다”라고 해석했다.

개별적으로 겪는 스트레스는 더 안타깝다. 앞에서 예를 든 김씨의 아들은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혼란한 감정 변화에 휘둘리고 있지만, 공부 좀 한다는 교육 특구 중학생들은 거의 다 특목고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특목고에 가라며 부모님이 투자를 많이 한다. 그래서 친구들과 어울리기라도 하면, 이유는 묻지 않고 ‘너한테 들어가는 돈이 얼만데 노느냐’고 구박한다. 친구를 외면하면서까지 특목고에 가야 하는지 의문이다.”(중계동 ㅇ중 3학년 여학생).

엄청난 양의 학원 숙제에 시달리고, 다른 애들을 앞서야 한다는 중압감에 괴로워하고, 부모가 찍어누르듯 선택해준 진로를 향해 달리다 보면 스트레스는 가중된다. 목동 ㅁ중의 한 2학년 남학생은 특목고 진학 탓에 초등학교 때부터 스트레스를 받아왔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특목고 준비를 해왔다. 지금도 특목고 종합학원 외에 수학·한자·중국어 과외를 따로 받는다. 놀 시간이 있을 리 없다. 하루 종일 숙제, 공부, 숙제를 반복하니 스트레스가 엄청나다. 가끔 부모님이 아이 취급하면서 일일이 간섭하면 스트레스는 더 커진다.”  

학교는 감옥, 교사는 경찰?

학교와 교사도 중학생들을 옥죄기는 마찬가지다. 중계동 ㅂ중학교의 한 남학생은 “담임선생님의 잔소리가 싫어 학교에 가기 싫다”라고 말했다. 담임이 자신이 그린 동그라미 안에 애들을 집어넣고, 거기에서 벗어나려 하면 무조건 지적하고 혼낸다는 것이다. 이 남학생에게 학교는 머리도 못 기르고, 옷도 마음대로 못 입고, 하고 싶은 얘기도 마음대로 못하게 하는 감옥같이 따분한 곳이다. 게다가 교사는 친구끼리 서로 감시하게 만드는 경찰관이나 다름없다. 한 중학교 여교사는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 “학교마다 차이는 있지만,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를 통제하려면 강제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중학교 교사들이 학생들을 드잡이하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제자들의 ‘고군분투’를 안쓰러워하기도 한다. 구 아무개 교사(서울 ㄱ중학교)는 이렇게 말했다. “중학생이 되면 부모의 자녀에 대한 관심이 매우 형식적으로 변한다. 자녀가 초등학교 때 책이나 축구를 좋아하면 잘한다고 칭찬한다. 그런데 중학생이 되면 ‘책 집어치우고 공부해!’라고 소리친다. 카프카 책을 보면 ‘내게 생명을 준 아버지가 다시 그것을 빼앗는다’는 구절이 나오는데, 요즘 중학생이  꼭 그렇게 느낄 것 같다.”

권 아무개 교사(서울 ㅍ중학교)의 걱정은 더 크다. “중학교는 입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동아리·독서 활동도 하면서 내가 누구인지 발견하고, 내가 뭘 해야 할지 모색해야 하는 시기다. 그런데 아이들을 특목고 가라고 내모니 아이들이 설익는다(약아지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도 없고, 예의도 없어졌다는 뜻). 특목고 진학을 준비하는 애들이나, 포기한 애들이나 모두 부담감·자괴감·압박감을 느낀다. 스트레스는 기대 수준에 비해 성취도가 낮을 때 생긴다. 결국 중학생 스트레스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기대가 큰 탓이다.”

사면초가. 지금처럼 중학생들을 무한 경쟁으로 내모는 상황에서 그들의 스트레스와 부모의 시름을 줄일 방법은 별로 없다. 그렇더라도 부모는 그들이 사면초가에서 벗어나 모든 장애물을 넘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어디에서부터 시작할까. 전문가들은 아이들 처지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라고 충고한다. “우선, 부모들이 인간발달학 등을 숙지해 자녀들의 몸과 머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필요가 있다”라고 김봉석 교수(상계백병원·신경정신과)는 말했다.

중·고교생의 스트레스 지수를 조사하던 유희정 교수는 대화를 강조했다. “요즘 중학생에게는 따라하고 싶은 모델이 없다. 부모가 유일한데, 그 관계가 단절되어 있다. 대화를 통해 자녀의 마음을 읽어주고 따뜻하게 이끌어주어야 한다”라고 유교수는 말했다. 실제 많은 연구에서 대화를 자주 하는 가정의 청소년이 그렇지 않은 가정의 아이보다 비행을 저지를 확률이 낮고, 가출도 덜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행복지수나 성적은 더 높았다.  

오랫동안 자녀와 부모, 교사의 역할을 연구해온 토머스 고든(미국의 심리학자)의 해결책은 더 구체적이다. 그는 저서 〈부모의 역할〉에서 자녀를 건강하게 키우려면 “자신의 성취욕을 자녀에게 강요하지 말고, 아이가 자신의 소유물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아이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기대를 버리고, 부모의 가치관이 항상 옳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렇다고 자녀에게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곤란하다. 자녀는 부모의 ‘간섭’은 싫어하지만,  부모가 곁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자원’을 후원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특히 김인애씨처럼 자녀가 가출한 적이 있거나, 학교 규율에 잘 따르지 않는 자녀를 둔 부모들은 이 점을 더 깊이 명심해야 할 듯싶다.

취재 도움 : 김은지 인턴 기자

기자명 오윤현 기자 다른기사 보기 nom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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