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합성 양한모
전국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가 공개된 지 사흘 만에 전북 임실교육장이 옷을 벗었다. 성적 조작 파문 때문이다. ‘교과부가 연출한 막장 드라마’라는 비아냥까지 사고 있는 이번 성적 공개 파문을 들여다보면 수상한 대목이 여럿이다.

전국적으로 학생들의 성적을 평가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교과부는 이미 2000년부터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실시해왔다. 단, 2007년까지 전체 학생 중 3~5%에 해당하는 학생을 무작위로 가려 뽑아 시험을 치르던 평가 방식(표집 평가)이 2008년 새 정부 들어 바뀌었다. 전국의 모든 학생이 한날 한시 같은 문제지를 놓고 시험을 치르는 전집 평가 방식, 이른바 일제고사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그런데 2000~2006년 표집 평가와 2008년 전집 평가 결과를 비교하다 보면 중학생 단위에서 특이한 대목이 눈에 띈다(2007년 평가 결과는 공개되지 않았다). 이번에 시험을 치른 5개 과목(국어·사회·수학·과학·영어)을 통틀어 중학생들의 기초 학력 미달 비율이 갑자기 높아진 것으로 나오는 것이다(아래 표 참조). 특히 수학 과목 같은 경우는 기초 학력 미달 비율이 2000~2006년 6.9%에서 2008년 12.9%로 두 배 가까이 뛰었다. 과학 미달 비율 또한 5.8%에서 11.7%가 됐다. 같은 기간 초등학생의 전 과목 미달 비율이 2~3%, 고등학생의 미달 비율이 10% 안팎을 유지하고 있는 것과는 크게 차이 난다.

ⓒ교과부.한국교육과정평가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6년간 꾸준한 수준을 보여주던 중학생들의 학력이 고작 2년 만에 급전직하했다면 비상이 걸릴 만하다. 그런데도 교과부는 그 어떤 설명도, 대책도 내놓지 않았다. 사태 초반, 임실군 등 몇몇 특수 사례를 놓고 “학교장의 리더십, 교사의 열정 등이 학교간 학업성취 수준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라며 과잉 분석을 곁들이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오직 초등학교 때 양호하던 기초 학력 미달 수준 학력이 중·고등학교 단계로 올라가면서 10% 전후로 증가한다며 “이는 그동안 지속된 하향 평준화 정책의 결과로 추정된다”라고 ‘해석’ 아닌 ‘추정’을 덧붙였을 뿐이다.
  
중학생 성적 하락에 주목한 진보신당 송경원 정책연구원은, 이들이 시험을 직·간접으로 거부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선생님 말에 순종하는 초등학생이나 평소 많은 시험을 치르는 데 익숙한 고등학생과 달리 중학생의 경우 대부분 중간고사를 치른 직후 일제고사를 치렀기 때문에 시험을 대충 봤을 수 있다는 것이다(37쪽 딸린 기사 참조).

ⓒ〈2007년 사교육비 실태조사〉, 통계청
중학생 기다리는 공포의 2011년

이명박식 교육 개혁을 논할 때 중학생은 특히 주목할 대상이다. 한쪽에서는 ‘미친 교육’이라 깎아내리고 다른 쪽에서는 ‘선진 교육으로의 확실한 전환’이라 추어올리는 개혁의 최일선 시험대에 중학생이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학교 만족 2배, 사교육비 절반’ 공약을 내걸었다. 이를 위한 5대 실천 프로젝트도 제시했다. 그중 으뜸이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다. 2011년까지 기숙형 고교 150개교, 마이스터고 50개교, 자율형 사립고 100개교 등 300개의 ‘좋은 학교’를 만들어 학부모·학생의 학교 선택권을 보장하고 사교육비도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특수고를 늘릴 때 직격탄을 맞는 것이 중학생이다.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 윤지희 공동 대표는, 말이 다양화일 뿐 이런 정책이 특목고를 몇 배 늘리는 효과만 가져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 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사교육비가 줄긴커녕 더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로 경기 침체 여파에도 사교육 시장은 꼿꼿한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서비스업 전체 생산지수가 전년 동기 대비 마이너스로 떨어진 지난해 11~12월에도 학원 생산지수만큼은 2.4%, 2.3% 증가세를 유지했다. ‘사교육비 절반’은 현재까지는 747 공약에 버금가는 ‘공약(空約)’일 따름이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보충 교육비(사교육비)는 2분기와 3분기에 각각 5.8%와 9.1% 증가했다.

변화는 현장에서 더 빠르게 감지된다. 2월19일 열린 한 특목고 입시 설명회는 이름부터가 “교육정책 변화에 따른 특목고 합격 전략”이었다. 이 학원 대표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지난 10년간 유지돼온 평등주의 교육이 자율·경쟁의 교육으로 완전히 변했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에 따르면, 특목고와 자립형·자율형 사립고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구체적인 수치도 제시됐다. 2009년도 대학입시에서 외국어고 출신이 이른바 SKY 대학에 합격한 비율이 각각 8.41%(서울대), 18.61%(고려대), 19.24%(연세대)라는 얘기를 할 때까지만 해도 학부모 사이에 큰 동요는 없었다. 그러나 인문계열 합격자만을 놓고 봤을 때 이 비율이 21.4%(서울대), 43.9% (고려대), 43.7%(연세대)로 뛰어오른다는 사실을 지적하자 곳곳에서 낮은 탄성이 터져나왔다.

ⓒ시사IN 한향란특목고 전문 학원에 다니는 중학생들이 귀가 버스에 오르고 있다. 이들 학원은 갈수록 대형화·기업화하는 추세이다.
그렇다고 특목고만 보내면 안심이냐, 그것도 아니다. ‘고교 다양화 300’이 완성되면 경쟁은 더 격해질 수밖에 없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새사연)’은, 이럴 경우 현재 있는 특목고와 합쳐 이들 특수학교 졸업생이 한 해 평균 6만여 명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했다. 이렇게 되면 특수학교에 진학하더라도 SKY 입학 정원(2006년 현재 1만1256명)에 끼기 위해 상위 6분의 1 안에 들어야 하는 무한경쟁이 펼쳐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반고는 사정이 더 참담해진다. 새사연 최민선 연구원은 2011년부터 ‘특수학교를 나오지 않으면 명문대는 꿈도 못 꾼다’는 위기감이 만연하리라고 전망했다. 앞서의 입시 설명회를 진행하던 학원 대표는 “현재의 중학교 1, 2학년생이 일반고에 진학하게 되면 서럽고 피곤해지는 것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중학생들은 이미 경쟁의 한복판에 서 있다. 특목고 대비 입시학원에서 만난 최 아무개군(서울 성동구)은 “학원에 오니 잘하는 애가 너무 많아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 애들을 다 이기고 외고에 갈 수 있을까 불안하다”라고 말했다. 올해 중3인 최군은 지난해부터 시험 한 달 전이면 위염 증세가 나타난다고 했다.
 

 
이들의 학교 환경 또한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다. 서울 강서·양천구의 경우 학급 수가 가장 많은 학교는 ㅁ중·ㅁ중·ㅅ중·ㅅ중·ㅇ중 순이다. 강서교육청이 관할하는 중학교 40개교의 평균 학급 수가 30.4개인 데 반해 이들 5개 학교의 학급 수는 49~52개에 달한다. 흥미있는 것은 이들 중학교가 최근 몇 년간 특목고 합격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베스트 5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교사 이아무개씨(서울 강동구)는 이를 두고 “교육 현장에서 사실상 고교선택제가 실시되고 있는 셈이다”라고 말했다. ‘물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해 주거지를 옮기는 맹모(孟母) 따라 하기가 2010년 학교선택제 실시(서울시)에 앞서 이미 집단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정책의 변화 및 경쟁 격화에 따른 소비자의 불안이 시장에는 호재다. 지난달 〈국내 입시학원 산업 현황과 전망〉을 펴낸 한국신용평가는 수능등급제 폐지, 고교 다양화 등 MB 정부의 교육 정책이 입시학원 시장에 기회 요인이 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특히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의 성과가 구체화할 경우 중등부 대상 학원시장이 급성장을 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이 보고서는 그 근거로 현재는 인문고 진학생 중 12%가량이 특목고 51개교에 응시 중이나, 특수학교가 300개 가까이 늘어나면 지원 학생이 24~30%까지 확대될 것임을 들었다.

그러나 교과부는 교육 경쟁력을 강화해 사교육비를 줄이겠다는 다짐을 되풀이하고 있다. 교과부는 △방과후 학교 활성화 △영어 교육의 질 제고 △학원비 안정화 △EBS 강의 활용을 2009년 사교육비 절감 대책으로 제시했다. 문제는 특목고나 특수고 입시 경쟁 앞에서는 이런 대책이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이다.

‘일반고 가면 서러워질 것’

교육학자들에 따르면, 사교육과 관련해서는 두 가지 관점이 있다. 하나는 공교육이 부실하고 교육 수월성을 담보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교육이 성행한다는 ‘학습 보충론적 관점’이다. MB식 교육개혁은 이 관점에 서 있다. 현 정부 교육 정책의 기틀을 짰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이주호 교과부 차관은 “공교육의 획일적 평준화가 사교육 팽창으로 이어졌다”라고 주장해왔다. 일제고사 성적으로 부실 학교를 퇴출하고 방과후 학교 등을 활성화해 사교육비를 줄인다는 MB식 교육개혁 또한 여기에 기초한다.

이와 대척점에 있는 것이 미래투자론적 관점이다. 이 관점에 따르자면 사교육 이용자들은 부실한 공교육을 보충하는 것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적극적 투자 차원에서 학원을 찾는다. 실제로 여러 조사를 보면 한국에서는 학업 성적이 낮은 학생보다 높은 학생일수록 사교육을 더 많이 받는 경향이 있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2007년 사교육비 실태 조사〉에서도 이런 사실이 확인된다(35쪽 표 참조).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사교육비를 지출하는 것은 학업 성적이 상위 10% 안에 드는 우등생들이다. 그중에서도 중학생 사교육비가 가장 높다. 상위 10%권에 드는 중학생의 한 달 평균 사교육비는 35만2000원으로 상위 10%권 고등학생(26만8000원)보다 오히려 8만4000원이 많다. 송경원 연구원은 “이미 서열이 어느 정도 짜인 고등학생과 달리 새로 경쟁에 진입하는 중학생 상위권 간에 경쟁이 더 치열할 수밖에 없다”라고 분석했다.

수학·과학 국제성취도 평가(TIMSS)에 참여하는 41개 나라 중 사교육비 지출이 가장 높은 5개 나라(한국·라트비아·인도네시아·이스라엘·홍콩)를 상대로 비교 연구를 수행한 송경오 교수(조선대·교육학)는, 공교육에 대한 투자가 낮은 나라일수록 미래의 대학 진학과 향후 노동시장에서의 기획 획득을 위한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더 많은 사교육을 선택하는 경향이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공교육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노동시장 구조 전반에 대해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부시 따라 ‘값싼 개혁’ 꿈꾸나

그러나 세계적 수준이라는 학생들의 학업 성적과 달리 교육 예산과 관련해 한국은 여전히 후진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에서 발표한 ‘세계 경쟁력 평가’에 따르면 한국의 GDP 대비 교육 관련 공공지출 비율은 4.4%로 세계 31위에 불과하다. 교과부가 올해부터 본격 추진한다는 이른바 ‘뒤처지는 학생 없는 학교 만들기’ 프로젝트 또한 마찬가지다. ‘기초 학력 미달 학생 밀집학교’를 집중 지원하겠다는데, 이를 위한 추가 예산은 없다. 그보다는 이렇게 지원을 했는데도 계속해서 학업 성적이 나쁜 학교에는 불이익을 주겠다며, 한정된 예산을 장차 ‘좋은 학교’에 몰아주겠다는 식이다. 이런 식이라면 미국식 교육개혁을 본뜬 MB식 교육개혁 또한 한계에 부딪칠 것이라고 양성관 교수(건국대·교육학)는 지적했다(오른쪽 딸린 기사 참조). 한정된 자원을 특정 학교에 몰아주는 식으로 진행된 부시 행정부의 교육정책은 초창기부터 ‘값싼 개혁’이라는 혹평을 받은 바 있다.

기자명 김은남 기자 다른기사 보기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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