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가 2월25일 집권 1주년을 맞았다. 임기를 따져보면 걸어온 길보다 걸어갈 길이 더 많이 남았다. 하지만 올 한 해는 남은 4년 임기보다 더 중요한 해이다. 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내년에는 지방선거를 치러야 한다. 지방선거에서 야당에 밀리면 이명박 정부는 곧장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레임덕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청와대나 여권 인사들은 부쩍 “올해가 중요하다”라고 입을 모은다.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에 선 이 대통령은 자신과 운명을 함께할 집권 2기 진용을 짰다.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가 용산 참사로 취임도 못하고 낙마하는 등 인선 과정에서 애를 먹기도 했다. 그림 로비 의혹으로 사퇴한 한상률 국세청장의 빈자리는 아직도 채우지 못했다.

〈시사IN〉은 이명박 정부 1주년을 맞아 핵심 요직 100명을 분석했다. 2월20일 현재 공석인 4명을 제외하면 모두 96명이다. 이들과 2005년 참여정부 당시 100대 요직 분석 결과와도 비교했다. 권력 지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굳이 노무현 대통령의 집권 2년차인 2004년이 아닌 2005년을 비교 기준으로 삼은 것은 정치 상황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참여정부도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2005년 승부수를 띄웠다.

100대 요직은 언론 매체의 범례와 〈시사IN〉 기자들의 판단을 종합해 선정했다. 먼저 이번 100대 요직 선정과 2005년 선정 기준을 비교해보니 자리의 변화 자체가 권력 교체를 실감케 했다. 2005년 당시 100대 요직에는 동북아시대위원장(문정인),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장(성경륭), 국정홍보처장(정순균)이 포함됐다. 이번에는 자리 자체가 사라졌다. 대신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미래기획위원장 등이 새로 포함됐다. 100대 요직 선정에 정부 조직 개편도 반영했다. 국정홍보처가 통폐합되면서 처장 노릇을 하는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포함됐다. 언론 판을 뒤흔들고 있는 방송통신위원회도 핵심 요직에 포함됐다. 중앙인사위원회가 폐지되면서 그 기능을 넘겨받은 행정안전부 인사실장과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핵심 요직으로 떠올랐다.

ⓒ청와대사진기자단이명박 대통령은 국가정보원장에 서울시 인맥의 핵심인 원세훈 전 행정안전부 장관(오른쪽)을 앉혔다.
TK, 권력 핵심 기관 독식…전남 몰락

정권 교체 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역시 100대 요직 인사의 출신 지역이다. 분석 결과 부산·경남(PK)에서 대구·경북(TK)으로 이동했다. 이명박 정부 100대 요직 가운데 영남 출신은 96명 가운데 37명(38.5%)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이 수도권 출신 20명, 충청 출신 16명, 호남 출신 15명, 강원 출신 5명, 제주 출신 2명이었다.

영남 출신 37명 가운데 TK 출신은 21명이고 PK 출신은 16명이다. 수치만 보면 TK 출신은 참여정부 당시와 비교하더라도 크게 늘어난 것은 아니다. 2005년 참여정부 당시 영남 출신은 35명이었고, 호남 출신 24명, 수도권 출신 19명, 충청 출신 13명, 강원·제주 출신 6명이었다. 당시 영남 출신 35명 가운데 PK 출신이 16명이었고, TK 출신은 19명이었다. 참여정부와 비교해보면 TK 출신은 2명 더 늘었다(19명→21명). 겉으로 보면 야당이 제기한 ‘TK 독식’이라는 말은 전혀 근거 없는 비난처럼 보인다.

그러나 ‘양’보다 ‘질’을 따져보면 인사 편중의 실체가 드러난다. TK 인사들이 차지한 ‘자리’를 참여정부 때와 비교해 보면권력기관의 핵심 중에서도 핵심을 차지했다.

김경한 법무부 장관, 원세훈 국정원장, 김주성 국정원 기조실장,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김종태 기무사령관, 김종창 금감원장, 성용락 감사원 사무총장, 이현동 서울지방국세청장, 주상용 서울지방경찰청장, 노환균 대검 공안부장이 모두 TK 출신이다. 게다가 차기 경찰청장에 내정된 강희락 해양경찰청장도 TK 출신(경북 성주)이다.

국정원·국세청(서울지방국세청)·경찰·군 등 권력 핵심 기관인 사정기관을 TK 출신이 싹쓸이한 셈이다. 권력기관의 생리상 한 지역 인사들이 이렇게 싹쓸이하면 견제와 균형은 사라진다. 대신 ‘우리가 남이가’라는 동질 정서가 파고든다. 사정기관의 고유 업무인 인사 비리나 부패 감시가 무뎌진다. 그래서 역대 정권은 되도록 지역 안배에 신경을 썼다. 2005년 참여정부 당시 국정원장(고영구)에 강원 출신을, 경찰청장(허준영)에는 대구 출신, 법무부 장관(김승규)과 국세청장(이용섭)에 전남 출신을 배치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에서는 김석기 전 청장에 이어 강희락 경찰청장 내정자까지 돌려막기를 하면서 TK 출신이 사정기관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국정원과 경찰 수장 자리에 모두 TK가 앉게 됐고, 임채진 검찰총장이 비록 PK 출신이지만 검찰 주변에서는 ‘김경한 검찰총장’이라는 말이 돈 지 오래인 점을 감안하면 TK 독식 인사가 빈말은 아닌 셈이다. 

 
TK 출신이 권력기관의 수장을 차지하면서 자연스럽게 조직 내부에서도 TK 쏠림이 두드러지고 있다. 국정원의 경우 원세훈 원장에 이어 김주성 기조실장까지 TK 출신이다. 국정원 인사권이 TK 손안에 있는 셈이다. 이들은 동향뿐 아니라 측근 인사, 정실인사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원세훈 원장은 이 대통령의 서울시 인맥으로 핵심 측근이다. 김 실장은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의 측근이다. 김 실장은 김성호 전 원장과 껄끄러운 관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원장이 ‘아웃’된 반면, 김 실장이 유임된다면 모든 인사는 형으로 통한다는 ‘만사형통’의 힘이 또 한번 입증되는 셈이다. 야당에서는 대통령 측근에 ‘상왕’ 측근까지 가세한 국정원이 ‘음지에서 일하고 권력을 지향하는’ 안기부 시절로 되돌아갈 것이라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벌써부터 나온다.

이런 염려 때문에 역대 정권에서 내부 조직 안에서는 지역 교차 인사가 불문율이었다. 참여정부는 당시 강원 출신 고영구 국정원장에 PK 출신 김만복 기조실장을 앉혀 지역 교차 인사를 했다.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지역 교차 인사를 하더라도 인사 잡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참여정부 때도 국정원 안에서는 PK를 중심으로 한 영남 라인과 호남 라인의 갈등이 불거졌다. 하지만 지역 교차 인사로 조직 안에서 견제와 균형이 가능해졌고 특정 지역의 인사 독주를 막을 수 있었다. 이번처럼 국정원장과 기조실장을 한 지역에서 싹쓸이할 경우 앞으로 국정원의 모든 인사에 잡음이 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다”라고 말했다.

강희락 경찰청장 내정으로 경찰 역시 ‘넘버 2’인 주상용 서울경찰청장(경북 울진)까지 양대 축이 모두 TK 출신이 차지했다. ‘넘버 3’인 조현오 경기청장(부산)은 PK 출신이다. 경찰 최고위층이 모두 영남권으로 포진했다.

검찰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검찰 인사 때 수사 라인에 TK 편중 인사가 워낙 심해, 지난 1월 정기 인사를 두고 지역 안배가 이뤄졌다는 평이 많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지난해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균형 인사라고 부각됐을 뿐, 주요 수사 라인 곳곳에 TK 인사가 박혀 있다. 대검의 양대 수사 축인 중수 1·2과장 가운데 우병우 대검 중수 1과장(경북 봉화)이 TK 출신이다. 대검에 이어 권력형 수사를 전담하는 서울지검 특수부를 지휘하는 최재경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고향은 경남 산청이지만 대구고등학교를 나와 검찰 안에서는 TK 인사로 분류된다. 정병두 서울중앙지검 1차장은 경남 하동, 김희관 서울중앙지검 2차장이 전북 익산인 점을 감안하면 적어도 3차장은 비영남·비호남 쪽을 앉히는 게 관례였지만 이번에 깨졌다. 2005년 참여정부 당시에도 황희철 서울중앙지검 1차장은 호남(광주), 황교안 2차장은 서울, 박한철 3차장은 경남(부산)으로 지역 안배를 했다.

최 차장검사는 ‘대표 검사’로 일컬어질 만큼 수사통이지만, BBK 수사와 노건평씨 수사 등으로 정치성 시비에 시달리기도 했다. 최 차장검사 산하 박정식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대구), 김기동 특수3부장(경남 진주), 김강욱 금융조세조사1부장(경북 안동), 안태근 금융조세조사2부장(경남 함안), 노승권 첨단범죄수사부 2부장(대구) 등도 영남 출신이다. 특히 김강욱 부장검사는 지난해 청와대 민정2비서관을 지냈다. 촛불 시위로 청와대 민정팀을 개편하면서 물러나 법무연수원을 거쳐 요직으로 되돌아왔다.

 
참여정부 이어 이명박 정부에서도 충청 약진

TK 싹쓸이와 반대로 이명박 정부 들어 호남, 특히 전남 출신의 쇠퇴는 눈에 띈다. 참여정부 당시 24명이던 호남 출신은 이번에 15명으로 줄었다. 15명 가운데 전남은 6명뿐이다. 청와대 요직 가운데 전남 출신은 강윤구 사회정책 수석(전남 영광) 단 1명뿐이다. 장관 중에도 이만의 환경부 장관(전남 담양)과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전남 무안)뿐이다. 100대 요직에 포함되기는 했지만 다른 장관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핵심에서는 비켜나 있다. 구색 맞추기용 끼워 넣기 인사가 아니냐는 불만이 호남 쪽에서 나온다. 광주 지역의 한 언론인은 “이명박 정부한테 기대 자체를 접었다. 바랄 게 있어야 불만이 있든 뭐든 할 게 아니냐. 한나라당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하는데, 전남이야말로 그 말을 절감한다”라며 밑바닥 지역 정서를 전했다.

전남 출신의 쇠퇴와 달리 ‘충남의 힘’은 참여정부에 이어 이명박 정부에서도 셌다. 참여정부 당시 이해찬 국무총리(충남 청양), 김우식 비서실장(충남 공주) 등 충남 출신이 PK 출신에 이어 100대 요직에 가장 많이 포함됐는데, 이번에도 대전·충남 출신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TK (21명), 서울(17명), PK(16명)에 이어 대전·충남 출신 14명이 진출했다. 천성관 서울중앙지검장(충남 논산), 백용호 공정거래위원장(충남 보령),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충남 서천),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충남 청양) 등을 배출하면서 참여정부에 이어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같은 충청권이지만 충북 쪽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오게 생겼다. 100대 요직 가운데 충북 출신 인사는 윤진식 청와대 경제수석(충북 충주)과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충북 괴산) 단 2명에 그쳤다.

대전·충남권 인사의 요직 진출은 출신 고등학교 분포에도 영향을 끼쳤다. 단연 경기고 출신이 13명으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TK 아성인 경북고(5명)와 똑같은 대전고(5명)였다. 서울고(4명), 경남고(4명)와 경복고(3명)가 뒤를 이었다. 2005년과 비교해보면 부산고(6명→2명)의 하락세가 뚜렷하다. 참여정부 말기에 임명된 임채진 검찰총장을 빼면, 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이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부산상고는 ‘화무십일홍’의 상징이다. 이번에는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유일하다. 이 총재도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이 임명했다. 100대 요직 인사 가운데 이명박 정부 들어 새로 임명된 부산상고 출신은 1명도 없는 셈이다.

대전고 출신의 두각이 의외라면, 대학별 분포에서 고려대 출신의 약진은 예상 그대로였다. 이명박 정부 1기 인사가 ‘고소영 S라인’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 일부 개선되기는 했지만, 고려대 출신은 15명으로 서울대(45명) 다음으로 요직에 많이 진출했다. 김백준 청와대 총무비서관, 박형준 청와대 홍보기획관,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한상대 법무부 검찰국장, 성용락 감사원 사무총장, 현인택 통일부 장관, 이명구 방통위 기획조정실장 등이 고려대 출신이다. 강희락 경찰청장 내정자도 고려대 출신으로, 경찰에서는 강 청장 외에도 주상용 서울청장, 조현오 경기청장 등 최고위층이 모두 대학 선후배 사이다.

연세대도 11명을 배출하며 만만치 않은 세를 과시했지만 참여정부 때와 달리 구심력은 약하다. 2005년 김우식 청와대 비서실장, 윤태영 당시 1부속실장, 천호선 국정상황실장 등을 중심으로 구심력이 강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승수 국무총리, 맹형규 정무수석, 김주성 국정원 기조실장 등이 연세대 출신이지만 각개약진의 모양새를 띤다.

이재오 전 의원의 모교인 중앙대 출신의 요직 진출도 눈에 띈다. 2005년 참여정부 당시 100대 요직에 중앙대 출신은 단 1명도 없었지만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변도윤 여성부 장관, 백용호 공정거래위원장 등 3명을 배출했다. 박범훈 중앙대 총장은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 준비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100대 요직에는 2005년 때나 지금이나 관료 출신이 48명으로 가장 많이 포진했다. 다음으로 법조 출신(12명)이 학자 출신을 따돌리고 요직에 기용됐다. 정동기 민정수석, 김회선 국정원 2차장, 김황식 감사원장, 정연수 금감원 자본시장 조사 본부장이 법조 출신이다. 법치를 강조한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기조와 함께 법무부와 검찰 자리 자체 영향력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2005년 참여정부 때는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를 청와대 홍보수석에 발탁하는 등 학자 출신(18명)이 관료 출신에 이어 요직에 많이 기용됐지만 이번에는 9명에 그쳤다. 시민사회단체 출신은 서울 YMCA 이사를 지낸 변도윤 환경부 장관 1명뿐이었다.

100대 요직의 평균 나이는 56.5세다. 참여정부 당시 평균 나이인 55.4세와 큰 차이가 없지만 세대별로 따져보면 40대와 50대가 줄고 60대가 크게 늘었다. 40대는 2005년 참여정부 당시 11명에서 8명으로 줄었고 50대도 68명에서 이번에는 56명으로 줄었다. 대신 60대가 18명에서 30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최연소자는 김희중 청와대 1부속실장(41)이고, 최연장자는 한승수 국무총리(73)이다. 다음이 최시중 방통위원장(72), 김백준 청와대 총무비서관(69) 순으로 이명박 정부의 실버 트로이카를 이루고 있다.

흔히 인사는 만사라고 한다. 일할 수 있는 유일한 해를 맞은 이명박 정부가 TK 편중 인사니 고려대 중용이니 하는 비난을 뛰어넘어 대통령의 뜻대로 성과를 낼지, 아니면 ‘인사가 망사’임을 되풀이할지는, 이 대통령과 호흡을 맞추는 100대 요직 인사의 손에 달렸다.

취재 도움·김은지 인턴 기자

 
기자명 고제규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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