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내현
“이거 지금 행사하는 상품이거든요. 두부 하나 사시면 작은 거 하나를 더 드려요. 가져가세요.” 어떤 상품이 진열돼 있는지 판매대를 둘러볼 여유가 없다. 잠재적 고객이 접근하자마자 판촉 사원의 공세가 시작된다. 프라이팬에 두부를 굽고 있는 판촉 사원은 심지어 판매대를 가리고 서 있어서, 그 사람의 등 뒤로 손을 뻗기조차 쉽지 않다.

“두부 가져가세요. 정말 맛있어요.” “아침에 드시면 좋고요, 애들 간식으로도 좋아요. 유기농이에요.” 하지만 내가 찾는 것은 다른 두부다. 판촉 사원의 권유를 한 귀로 흘려듣고 다른 상품을 집어들면 한마디가 더 날아온다. “에이, 그건 행사하는 게 아닌데. 이거 사시면 하나 더 드리는데….” 이런 풍경은 두부 코너뿐 아니라 찾아가는 판매대 곳곳에서 되풀이된다. 도대체 진열된 상품을 여유 있게 둘러볼 여유를 주지 않는다. 대형 마트에서 언제나 반복하는 경험이다. 여러 나라를 방문해보지 않아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서양권에서는 이런 풍경이 벌어지지 않는다.

대형 마트가 확산되면서 재래시장의 존립이 위협받는다는 이야기는 이미 많이 나왔다. 제조업체 처지에서는 대형 마트에 진열되는 물품이냐 아니냐에 따라 상품의 성공 여부가 판가름나기 때문에 대형 마트는 그 자체가 시장의 다양성을 제한하는 효과를 불러온다. 그런데 그 안에서도 선택의 다양성을 해치는 행위가 또 한 번 벌어진다. 그나마 제한된 폭 안에서나마 소비자가 마음놓고 자신의 취향에 따라 상품을 선택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나는 ㄱ상표 고춧가루를 사고 싶은데 판촉 사원의 강권과 유도에 이끌려 ㄴ상표를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 샌드위치 햄을 사야 하는데 굳이 베이컨을 권하는 판촉 사원 앞에서 짜증을 내기도 어렵다.

그것만이 아니다. 매장에 즐비하게 늘어선 판촉 사원의 더 큰 문제는, 남의 카트에 든 물건을 살펴본다는 것이다. 판촉 사원 처지에서야 자기 물건을 많이 팔아야 하기 때문에 당연한 일일 수 있다. 즉석 카레와 라면과 냉동 피자를 카트에 한가득 담고 지나는 사람에게 신선한 조갯살을 권해봤자 판매에 성공할 확률이 적기 때문에, 이왕이면 파와 부추, 말린 표고버섯을 사는 사람에게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프라이버시 보장되지 않는 인권 후진국

난 나 그림
그래서 나는 마트에 갈 때마다, 찾아가는 판매대에서 오랜 시간을 들여 서성일 자유를 빼앗길 뿐 아니라, 끊임없이 나의 카트를 훑어보는 눈길의 숲을 뚫고 지나가야 한다. 그들은 나를 끊임없이 평가한다. ‘혼자 살면서 밥 해먹기 귀찮아 하는 남자군’ 혹은 ‘집에 아직 기저귀 차는 애가 있고 형편이 좀 넉넉한 가장이군’ 등등.

깡패를 동원해 세입자를 내쫓고 누가 어디 소식만 들으면 경찰 버스로 봉쇄하고, 촛불 들고 길을 걷기만 해도 끌려가는 사태만이 인권 후진국이 아니다. 마트에서도 선택의 권리와 프라이버시가 보장되지 않는, 인권 후진국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내 자유를 해치는 판촉 사원들은 대형 마트의 강요로 납품 업체가 울며 겨자 먹기로 고용한 이들이다. 그나마 고용이 창출되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며 그대로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는 것일까? 마트에 갈 때마다 고민 아닌 고민을 하게 된다.

기자명 최내현 (장르문화 전문지 〈판타스틱〉 발행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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