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엘렌 H. 브라운 지음, 이재황 옮김, AK 펴냄

미국의 금융과 경제, 나아가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미국 연방준비은행이 민간 법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미국 연방준비은행은 민간 은행 컨소시엄이 소유한 은행이다. 달러는 미국 정부가 찍어내는 게 아니라 미국 재무부가 연방준비은행이라는 민간 법인에 정부 지불증권, 즉 국채를 담보로 맡기고 이자를 주면서 빌려 쓴다. 이 책에 따르면, 연방준비은행은 유럽 최대 금융 재벌 로스차일드 일가에 뿌리를 두거나 J.P. 모건, 록펠러 가문과 연관된 자본의 힘에 휘둘린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미국 정부는 먼 장래에 걷을 세금까지 사실상 담보로 내놓는다. 일반 민간 은행도 담보를 잡고 사람들에게 대출한다. 미국 정부와 국민은 결국 거대 자본가의 채무자가 된다. 달러를 ‘찍어낸다는 건’ 미국 정부가 국채 담보를 통해 국가 재정은 물론, 납세자인 국민에게 엄청난 부담을 새로 지운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달러란 결국 ‘부채의 성’을 쌓는 벽돌이자, 그 벽돌로 쌓은 모래성과 비슷하다.

 은행의 부분준비금 제도가 거품 양산과 그 붕괴의 구조적 근원이라는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대출 원금에 대한 은행의 지급준비금은 대체로 10% 정도다. 준비금 10만원만 있으면 100만원을 대출할 수 있으니, 90만원의 신용 화폐가 생겨나는 셈이다. 복리 5%로 대출받은 사람은 14년 뒤 부채가 원금의 두 배가 되는 상황을 맞이한다. 은행은 원금과 같은 액수의 이자 수입을 올린다. 채무자는 원금에 해당하는 이자를 갚아도 그만큼의 빚을 지게 된다.

 은행은 이러한 이자 수입으로도 모자라 이른바 파생상품을 만들거나 투자해서 엄청난 거품을 발생시킨다. 이러한 구조에 따라 오늘날 세계 금융과 경제는 이 책의 원제처럼 거대한 ‘빚의 그물(The Web of Debt)’에 걸려 있다. 이 그물을 피할 수 있는 나라는 드물다. 월스트리트의 거대 자본은 이른바 신흥시장 또는 신흥 공업국 통화를 공격해 인플레이션과 환란을 초래하고, 바닥을 기게 된 자산을 긁어모으고 철저하게 채권을 회수한다. 이 책에 따르면, 이것이 우리가 겪었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 금융 체제의 실상이다.

 그러나 이 단단하고 촘촘해 보이는 ‘빚의 그물’도 어느 한 그물코가 터지거나 엉키면 전체 시스템이 붕괴하는 위기를 맞이할 수 있다. 바로 지금 우리가 겪는 현실이다. 저자는 금융 시스템을 민간이 아니라 국가가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괜히(?) 궁금해진다. 국제 금융 사기범에게 사기당했다고 주장한 우리 대통령은 이러한 ‘빚의 그물’에 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기자명 표정훈 (출판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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