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진영 의원(왼쪽)은 박근혜 대표 시절 비서실장을 지냈다. 지난해 한 시사회장에서 만난 두 사람.

‘퀸(Queen)의 남자’가 바뀌는 걸까?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최근 “계보 모임을 하겠다”라고 나선 김무성 의원(부산 남구을)의 발언을 공개적으로, 그것도 이례적으로 일축하자 정가의 관심이 친박근혜 진영 내부의 권력구도 변화에 쏠리고 있다. 명실상부하게 ‘친박 진영의 좌장’ 노릇을 해온 김무성 의원의 지위가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김 의원에게 우호적인 측에서는 정치 스타일의 차이가 드러난 것일 뿐, 김 의원의 위상에는 큰 변화가 없으리라고 내다본다. 하지만 측근 그룹의 기류는 좀더 냉정하다. “김 의원이 박 전 대표의 의중을 잘못 읽은 것 같다”라고 분석한 측근 의원들은 그 이유를 두 가지로 들었다.

하나는 지금 계보 모임을 만드는 것이 어느 모로 보나 박 전 대표에게 실익이 없다는 것이다. 나라로 보면 “경제 위기 때 웬 패거리 정치냐”라는 소리 듣기 십상이고, 당으로 보면 “합심해서 정권을 성공시켜야 할 판에 당내 분란만 일으킨다”라는 책임론을 뒤집어쓸 수 있으며, 개인으로 보면 “한 사람이라도 더 내 편으로 끌어들여야 하는 판에 오히려 문을 닫아거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박 전 대표가 계파 정치를 ‘아주’ 싫어한다는 것이다. 대선 후보 경선 당시 박근혜 캠프의 입 구실을 했던 이정현 의원(비례대표)은 경선 막바지에 있었던 일화를 하나 소개했다. “막판 표 점검을 했는데, 영남 우세·수도권 열세 해서 전체적으로는 접전을 벌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책회의 끝에 박 전 대표에게 ‘수도권 위원장 다섯 사람만 찾아가자. 그러면 열 사람 효과가 나는 것 아니냐’라고 건의했는데, 꿈쩍을 않더라. 참모들 처지에서 보면 ‘박근혜 바람’에 당선된 사람들의 경우 박 전 대표가 도움을 요청하면 거절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해서 그랬는데, 박 전 대표는 아무리 절박해도 ‘줄 세우기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며 반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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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실익도 없고, 원래 좋아하지도 않는 계보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니 박 전 대표가 ‘일언지하’에 자기 뜻이 아니라고 정리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누구보다 박 전 대표의 의중을 잘 알고 있을 법한 김무성 의원은 왜 ‘계보 모임’을 주장했을까. 정가에서는 이 역시 두 가지 이유로 해석한다.

하나는 친박 복당파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것이다. 이미 하나 둘 잡음이 터져나오고 있듯 친박 복당파는 당협위원장(과거 지구당 위원장) 자리를 놓고 친이명박(좁게는 친이재오) 진영과 각을 세우고 있다. 복당파 의원들 처지에서 보면 당협위원장 자리는 내년 지자체 선거와 차기 총선의 공천과 관련해 매우

ⓒ뉴시스박근혜 전 대표(앞)가 김무성 의원(뒤)의 계보 모임 발언을 일축한 2월4일 본회의장에서 만난 두 사람.

중요한 자리다. 따라서 하루라도 빨리 이 자리를 접수하지 않으면 언제 밀려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하다. 그런 절박감을 박 전 대표가 직접 대변하지 못한다면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 하고, 이를 자임하고 나선 게 김 의원이라는 얘기다.

두 번째는 이른바 ‘자기 정치’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친박 의원은 “김무성 의원은 장관도 되고 싶고, 대표도 되고 싶은 것 같다. 그러려면 친박 진영의 좌장이라는 상징성을 확보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해 ‘나야 나~’를 외치는 것 같다”라고 풀이했다. 그는 “친박 대표선수로 당선된 허태열 최고위원이 김 의원의 고향 선배이긴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김 의원이 선배다. 허 최고위원에 대한 견제심리도 적잖아 보인다”라고 덧붙였다. 다른 한 의원은 “김 의원이 이재오 전 의원에게 계속해서 악담을 하는 데에도 사감이 작용하는 듯하다”라고 말했다. 김무성 의원 지역구의 당협위원장인 정태윤씨는 이재오 전 의원과 민중당을 함께 만든 인물이다. 이 때문에 김 의원은 이재오 전 의원이 정씨를 공천하기 위해 자기를 밀어냈고, 이 전 의원이 들어오면 당협위원장 자리를 확보하는 데도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해 이 전 의원을 맹공격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 가지 이유 중에 친박 의원들은 후자 쪽에 더 무게를 둔다. 김 의원이 ‘문국현 무죄’ 탄원서에 서명한 것도 그런 맥락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친박 진영 내부에서는 김 전 의원의 ‘자기 정치’를 염려한 박 전 대표가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는 얘기와 함께 그 대상으로 박 전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낸 진영 의원(서울 용산)을 거론한다. 보수 진영의 전략가로 불리는 한 외부 인사도 “박 전 대표를 만났는데 ‘진영 의원에게 많은 일을 맡기려고 하니, 적극 도와달라’고 하더라”고 귀띔했다. 이를 두고 정가에서는 영남에 지나치게 의지하고 있다고 판단한 박 전 대표가 수도권 지지세를 넓히기 위해 무게중심을 영남에서 수도권으로 옮기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는다.

하지만 영남 친박들이 그런 상황을 언제까지 관망할지는 미지수다. 영남 텃밭을 두고 친이 측 인사들과 공천 다툼을 벌여야 하는 친박 인사 처지에서 보면 박 전 대표가 당을 장악하거나 아예 새로 당을 만드는 것이 유리하고, 그러려면 똘똘 뭉쳐 친이 측과 끊임없이 각을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당분간 조용하게 세를 넓히려는 박 전 대표와 ‘박근혜’를 앞세워 자기 앞가림을 하려는 친박 인사들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경우 제2, 제3의 김무성 사태는 언제든지 돌출될 수 있다.

기자명 이숙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ok@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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