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합성 시사IN 이정현

“문제는 이상희 국방부 장관이다. 그가 물러날 각오를 하고 이명박 대통령에게 국가 안보와 군심을 반영한 재검토 건의를 해야 군도 살고 대통령도 산다.”
고급 군 장교 출신인 한나라당 국방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상희 장관의 제2 롯데월드 신축 허용 추진 강경 드라이브가 불러일으키는 심상치 않은 국론 분열과 군심 이반을 두고 하는 말이다. 당내의 충정 어린 고언으로 볼 만한 이런 지적에 이상희 장관이 끄떡이나 할까. 현재로서는 ‘전혀 아니올시다’이다. 그는 제2 롯데월드 신축 허용에 ‘총대를 메고’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우선 이상희 장관 스스로가 지난 7년간 국방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제2 롯데월드 초고층 건물 신축 허용에 대해 보여준 모순된 태도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제2 롯데월드 초고층 신축 논란은 군부의 15년 묵은 골칫덩어리였다. 이 기간에 이상희 장관은 합참작전본부장, 3군사령관, 합참의장을 거쳐 MB 정부 국방부 장관에 임명됐다. 장관이 되기 전 3개 보직을 역임하던 국민의 정부·참여정부  6년여 동안 그는 다른 대다수 군 간부와 마찬가지로 ‘국가안보’를 이유로 제2 롯데월드 초고층 건축 허용 반대편에 섰다. 특히 그가 맡았던 합참작전본부장은 공군의 작전권까지 관할하는 자리였다. 잠실 초고층 건물이 유사시 공군 작전상 초래할 가공할 문제점을 누구보다 잘 알 수 있는 위치다.

이상희 국방부 장관의 잇단 거짓말

그랬던 그가 MB 정부 들어 국방부 장관을 맡은 뒤 왜 갑자기 제2 롯데월드 신축 허용 찬성론자로 돌변했을까. 그 이면에는 물론 임명권자인 이명박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자리한다.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부터 잠실에 제2 롯데월드 초고층 신축을 허용하자는 쪽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6년여의 군 간부 시절 그가 보여준 ‘소신 강한 군부 지도자’의 모습이 설명되지 않는다. “이상희 장관이 제2 롯데월드 문제로 군을 망신시켰다”라는 한 성우회 간부의 장탄식은 그래서 나온다.
두 번째 걸림돌은 이상희 장관이 제2 롯데월드 신축 허용 논란 과정에서 군과 국민 앞에 진실하지 않다는 점이다. 오랜 반대 소신을 저버리고 이 대통령의 의중을 따르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뒤부터 그는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는’ 고약한 상황까지 연출하고 있다.

ⓒ뉴시스이상희 국방부 장관(오른쪽)과 이계훈 공군참모총장(왼쪽)이 1월12일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에 참석해 ‘성남공항 활주로 3° 변경과 장비보강’ 방안을 설명하며 제2 롯데월드 초고층 신축 허용 논리를 펴고 있다.


지난 1월12일 이계훈 공군참모총장과 함께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이상희 장관은 제2 롯데월드 초고층 신축 허용 가능 방안을 설명하면서 “과거(참여정부)에는 현 기지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 비행 절차만 논의했다”라고 보고했다. 최근 마련한 신축 허용 ‘검토 의견서’도 배포했다. 국방부와 공군은 이 자리에서 ‘성남공항 동편 활주로 방향을 3° 변경하고 장비를 보강하면 서울 기지의 안보상 기능이 유지되고 비행 안전에 문제점이 없어진다’는 취지로 의견서를 냈다. 이번에 ‘기지 자체 이전 방안’과 ‘활주로 방향 10° 변경 방안’도 함께 검토했지만 여러 문제점 때문에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는 단서를 닮으로써 사실상 ‘동편 활주로 내측 3° 변경안’을 제2 롯데월드 신축을 허용하기 위한 유일한 대안이라고 보고한 것이다.

국방부는 이 자리에서 “과거에는 활주로 각도 변경을 검토한 적이 없고 현 정부 들어 2008년 4월 처음으로 활주로 각도 변경을 통한 초고층 건물 신축이 가능한 안을 내놓았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허위 보고다. 〈시사IN〉이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해보니 참여정부 시절에도 제2 롯데월드 초고층 건축 허용을 검토하면서 활주로 각도 변경을 통한 군사안보적·기술적 문제해결 가능성을 모조리 검토했다(18~19쪽 인터뷰 참조).

활주로 3° 변경안에 숨은 치명적 허점

〈시사IN〉이 입수한 공군본부 작성 행정협의조정위원회 문건 등 관련 정부 기록에 따르면, 심지어 2007년 정부에서는 활주로 각도를 틀 경우 항공안전과 잠실 초고층 건물 신축 가능 요건을 충족하는 데는 예산이 약 1조2000억원 들어가는 것으로 추산했다. 당시 국방부는 제2 롯데월드를 신축할 경우 성남공항 안전 문제에 대해 미국연방항공청(FAA)과 국제민항기구(ICAO)에 자문하고, 비행 안전 영향평가까지 거쳤다. 이런 광범위한 조사와 자문을 토대로 당시 국무조정실은 최종적으로 제2 롯데월드의 안전한 건축 제한 고도를 203m로 도출해냈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 들어 국방부는 이런 내용을 감췄을 뿐 아니라 검토 방안에조차 넣지 않은 것이다.

 

 

 

참여정부 당시 공군이 검토한 성남공항 활주로 각도 변경안. 당시 1조2000억원을 들여 활주로 각도를 7° 틀면 항공안전을 확보하는 것으로 판단했지만, 참여정부는 국가 안보를 위해 롯데에 초고층 신축을 불허하고 건물 고도를 203m(50층 안팎)로 제한했다.

 

이번에 국방부가 제출한 성남공항 동편 활주로 남측 3° 변경에 드는 비용은 약 3000억원으로 추산된다. 국방부는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롯데 측이 이 돈을 대야 한다고 밝힌다. 결국 비용으로만 따져도 참여정부에 비해 1조2000억에서 3000억원으로 롯데의 부담을 줄여주면서 초고층 건물을 지을 길을 터준 셈이다. 특혜도 이만저만한 특혜가 아니다.

그렇다면 국방부가 이번에 내놓은 방안은 잠실에 제2 롯데월드 초고층 건물 신축을 허용하면서도 항공안전과 군용공항의 기능을 온전히 살려낼 수 있을까. 이 대목에도 국방부의 눈가림식 대응이 자리하고 있다. 〈시사IN〉이 국방부가 내놓은 ‘3° 각도 변경안’을 공군 기술 전문가들에게 의뢰하고, 성남·잠실 지역 위성사진을 놓고 거리와 각도를 검증한 결과 국방부의 주장은 허점이 많았다. 국방부는 성남공항 동편 활주로 내측 3° 변경이 ‘항공기 이륙 시 장애물 회피 기준을 충족한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뒷받침하는 그림 자료를 국회에 제출했다. 장애물 회피기준이란 조종사가 육안으로 보고 비행(시계 비행)할 때 안전 보호구역을 뜻한다. 산악이나 초고층 빌딩 등 비행 장애물을 중심으로 반경 1852m 이내가 회피구역이다.

그동안 ‘ㅅ자형’ 활주로를 가진 성남공항에서 군용기가 이륙해 직선거리 3마일 밖에 있는 제2 롯데월드 지점에 이르면 동편 활주로에서 뜬 비행기는 장애물 회피구역의 훨씬 안쪽인 1160m, 서편 활주로 이륙기는 1960m 지점에 이른다. 초고층 빌딩이 들어설 경우 동편 활주로는 무려 700m나 장애물 회피기준 안쪽에 들어 있는 셈이다.

그러면 국방부의 안대로 동편 활주로를 3° 틀면 이 회피기준을 벗어날 수 있을까. 공군 기술 전문가가 계산해낸 결과 이 항로는 기껏해야 장애물에서 이격 거리가 1500m에 지나지 않았다. 장애물 회피기준 1852m를 넘어서기는커녕 그 안쪽 350m 지점에 항로가 자리한 셈이다. 그러나 국방부는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통해 이런 사실을 가리고 활주로 3° 변경안이 마치 장애물 회피구역을 완전히 벗어나는 것처럼 그림을 그려서 내는 꼼수를 뒀다. 이같은 사실이 들통나자 국방부는 “비행기가 이륙할 때 조종사들이 오른쪽으로 선회 비행하므로 제2 롯데월드 초고층 지점에서는 장애물 회피기준을 벗어난다”라고 군색한 변명을 내놓았다.

사정이 이런데도 이상희 장관은 성남공항 활주로 3° 변경안에 대해 “국가안보와 국민 생명에 지장이 없다고 100% 확신한다”라고 강변했다. 하지만 이계훈 공군참모총장은 이 문제에 대한 국방위원들의 추궁에 “계기 비행과 악천후 때 사고가 날 수 있다”라고 시인했다. 대신 3° 변경 말고도 여러 첨단 장비를 보강 설치하기 때문에 충돌 위험을 피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공군은 또 제2 롯데월드 건물(555m)을 지나는 항공기가 착륙할 때는 2000피트(약 6500m) 고도를 유지하고 건물을 지나쳐서 급강하하도록 규정을 바꾸면 해결된다고 주장한다.

“성남공항의 전시 군사 안보 기능 사라진다”

하지만 이런 대책 역시 정상적인 시계 비행을 위주로 마련한 것이다. 국제 항공운항 규정에는 기체 고장·악천후 등 비상 상황에 대비한 계기 접근 착륙 절차를 중요한 기준으로 설정한다. 이 기준으로 보면 제2 롯데월드는 착륙할 때도 명백히 위험 구역에 자리한다. 
성남공항은 평상시에도 국가 안보에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지만 특히 유사시 수도권을 지키는 핵심 군사시설이다. 기지 자체를 옮기지 않는 한 이 공항의 안보 기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시사IN〉은 국방부의 3° 변경안을 들고 전·현직 공군 전투기 및 수송기 조종사 6명을 접촉해 의견을 물었다.   

 

 

최근 국방부가 마련한 ‘성남공항 동편 활주로 3° 변경안’. 약 3000억원이 소요될 이 방안이 100% 안전하다는 국방부 주장과 달리 동편 활주로를 이륙하는 항공기는 장애물 회피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 사진 안 도표는 항공기가 성남공항에 계기 착륙할 때 제2 롯데월드와 충돌할 위험성을 보여준다.


F16 전투기를 조종하는 한 현역 공군 장교는 “비행 절차상 통신 장비가 고장나거나 악천후 등 비상 상황에서는 노자이로 어프로치를 해야 하는데 활주로를 3° 틀어도 롯데 건물과 충돌할 위험은 상존한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현직 공군전투기 조종사는 “이륙할 때는 오른쪽으로 회피하면 된다지만 착륙이 문제다. 안전한 항공기 착륙 각도는 활주로 전방 3마일 지점(초고층 제2 롯데월드 지점)에서는 2.5°~3°를 유지해야 한다. 그 각도에서 높이는 지상 350m 안팎이다.  555m 초고층 건물 높이보다 훨씬 낮아서 충돌할 위험이 크다”라고 밝혔다.

15년간 전투기를 조종하다 국내 민항기 조종사로 옮긴 한 전직 공군 중령은 “평상시 좋은 날씨만 가정하면 성남공항을 지금 그대로 두고 초고층 건물을 지어도 조종사가 피하면 그만이다. 엄밀한 항공 안전을 기준으로 보면 활주로 각도를 3° 트나 현행대로 두나 불안전성에는 차이가 없다. 하지만 전시가 문제다. 유사시는 후방의 전투기까지 성남공항으로 이동해 수도 방어 또는 전선 북진을 위해 대량 이륙과 대량 착륙이 필수다. 그때는 좌우 대기 비행, 선회 비행을 가리지 않는데 전방에 초고층 건물이 버티고 있으면 서울공항의 전시 군사 안보적 기능은 유명무실해진다고 봐야 한다”라고 걱정했다.

국방부가 제2 롯데월드 신축 허용한 진짜 이유

 

 

 

ⓒ뉴시스제2 롯데월드와 항공기의 충돌 위험을 경고하는 조진수 교수.

 

잠실에 고도 555m의 초고층 빌딩이 들어서면 바람에 부딪혀 생기는 와류난류(Wake Tur bulence)로 항공기 이착륙에 심각한 지장이 발생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와류난류란 빌딩이나 높은 산과 같은 지형에 바람이 부딪히면 공기가 좌우 다른 방향으로 소용돌이치며 움직이는 현상이다. 한양대 기계공학부 조진수 교수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제2 롯데월드가 건설되면 와류난류로 인근 서울공항 항공기의 이착륙에 심각한 장애가 예상된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군용기를 직접 조종하는 현장의 이같은 목소리와 전문가의 경고에도 국방부는 요지부동이다. 항로 주변에 더 많은 안전 장비를 확보하고, 112층 건물 꼭대기에도 조종사에게 위험을 경보하는 장치를 하므로 안전하다고 우긴다. 심지어 국방부의 한 고위 간부는 KBS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고층 건물이 많이 들어선 홍콩에서 카이탁 공항은 빌딩 사이로 점보기가 뜨고 내려도 안전에 문제가 없고, 고층 건물과 조화돼 아름답기만 하다. 제2 롯데월드가 들어서면 아름답게 느껴지고 안전하기만 할 것이다”라는 취지로 말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거리가 있다. 카이탁 공항은 유사시 전투기가 오르내리는 군용 공항이 아닐뿐더러 홍콩 당국은 그간 고층 건물과 항공기 충돌을 심각하게 여겨 이미 카이탁 공항을 폐쇄하고 첵랍콕 공항을 개항해 운영한다.

항공 안전이나 국가안보 면에서 충분한 공론화가 이뤄져야 할 제2 롯데월드 신축 허용안을 국방부가 이처럼 서둘러 강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방부는 공식적으로는 ‘상황이 바뀌어서’라고 설명한다. 그 바뀐 상황이란 지난해 롯데 측에서 제2 롯데월드 빌딩 신축을 허용해주면 성남공항 시설 변경 비용을 대겠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 국방 수뇌부도 지난 15년 동안 국가안보를 이유로 제2 롯데월드 신축을 반대한 인사들이다. 돈 부담 문제를 소신인 안보와 바꿨다고 보기에는 설득력이 떨어지는 대목이다. 야권에서는 그 이면에 이명박 대통령이 있다고 본다. 이 대통령은 제2 롯데월드 신축 주관사인 (주)롯데물산 장경작 사장과 고려대 경영학과 61학번 동기 동창 사이로서 오랫동안 롯데 측과 각별한 인연을 과시한 바 있다. 제2 롯데월드를 둘러싼 특혜 의혹을 더욱 부채질하는 이유다(20~21쪽 딸린 기사 참조).

지난 1월12일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 자리에서 이계훈 공군참모총장은 의미 있는 ‘실언’을 했다. 김무성 국방위원이 “활주로 3° 변경안은 언제 제안됐습니까”라고 묻자 이 총장은 묵묵부답이었다. 김 의원이 재차 “묻는 말에 제대로 답변을 해야지, 시간이 없는데”라고 다그치자 이 총장은 엉겁결에 “그것은 잘 아시다시피 지난해 4월에 청와대에서…”라고 답해버린 것이다.

바로 이런 사정 때문에 국회 국방위원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활주로 3° 변경을 통한 제2 롯데월드 신축 허용’이 국가 안보를 도외시한 친재벌 정책의 결정판이라며 반대한다. 예비역 군장성의 모임인 성우회 한 간부는 “국가 안보를 한 재벌 기업의 이익에 저당 잡힌다면 이상희 장관과 이계훈 공군참모총장은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다”라며 반대 투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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