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전질을 구입하기는 돈이 없어 곤란하지만, 관심이 가는 몇 권은 사봐도 좋을 듯싶어 목록을 갈무리해 두었다. 한데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니 이런 기사가 눈에 띈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에 발표된 작품이라는 이유로 통일부의 출간 검증 절차가 필요한 황건의 〈개마고원〉은 심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 소식이 소박하게나마 세상에 알려진 건, 해당 출판사의 편집자라고 밝힌 이가 다음 ‘아고라’에 올린 글 덕분이다. 내용을 읽어보니, 이번 총서에 포함돼 있는 북한의 대표적인 소설가 황건의 〈개마고원〉 출간에 대해 통일부가 제동을 걸고 조건부 승인 방침을 밝힌 모양이다. 그 조건이란 대략 이렇다. ‘김일성’이 들어간 문장(“그 사이에 평양에는 북조선 인민위원회가 창설되고 김일성 장군이 위원장으로 추대되었다”)을 삭제할 것, 남한군이나 미군을 ‘원쑤’라고 표기한 대목(“나는 조국의 이 엄중한 날에 원쑤에 대한 싸움보다도 나 개인을 위한”)을 삭제할 것, 미군에 대한 부정적인 표현이 들어간 문단(“피난 가다 숨은 두 녀자를 미국 놈들이 발견하고 겁탈하려 끌어냈던 것이며”) 전체를 들어낼 것. 하지만 〈개마고원〉은 이미 학자들의 연구를 위해 국내에 들어와 있으며 통일부 북한자료센터에 가면 일반인도 열람할 수 있는 책일 뿐만 아니라, 20여 년 전에는 국내 다른 출판사에서 원본 그대로 출간한 적도 있다고 한다.
‘아고라’에 올라온 글을 읽기 전까지 나는 황건이라는 작가를 전혀 알지 못했다. 〈개마고원〉이라는 책이 출간돼도 적극적으로 구입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신경숙의 소설이 팔리고 황석영의 소설이 엄청나게 나가는 것이 “한국 문학의 부활이고 축복”이라면, 황건의 〈개마고원〉이 당시 표기 그대로 출간되는 것 역시 한국 문학의 처지에서 볼 때 또 다른 의미의 부활이자 축복일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현재 ‘아고라’를 비롯한 몇몇 게시판을 중심으로 누리꾼들의 “어이없다”는 반응이 속속 올라오고 있지만 며칠 사이에 유야무야 묻히는 가운데, 지만지 출판사는 이미 제작까지 마친 〈개마고원〉의 출간을 포기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