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한향란제주 길을 걷다 보면 불과 반나절 사이에 오름과 바다와 몽생이(제주산 망아지)를 차례로 만날 수 있다.
  “경치 좋다는 뉴질랜드에 이민 가 살다 왔지만 이런 곳은 처음입니다. 불과 다섯 시간 만에 오름, 바다, 돌담을 걸어서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곳이 또 있을까요?”(제주시민 정만용)

성산일출봉이 한눈에 들어오는 광치기 해안에 선 사람들은 저마다 행복감에 취한 듯 보였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이어진 대장정. 평소 걷는 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지칠 법도 하건만 피곤한 기색을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지난 9월8일, 사단법인 제주올레(이사장 서명숙)가 법인 발족식을 겸해 주최한 ‘성산 풍경 따라 걷기’ 행사의 마무리 광경이다. 이날 행사에는 소문을 듣고 온 1백50여 명이 참가했다.

지난해 스페인 산티아고를 다녀온 뒤 국내에도 산티아고와 같은 길을 만들겠다고 결심했다는 서명숙씨가 ‘걷는 길 후보지 1호’로 제주를 점찍은 것은, 이곳이 고향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섬’ 제주도는 최근 위기에 봉착해 있었다. 제주 관광객은 2005년 5백만명을 돌파한 뒤 증가세가 멈추었다. 중국이나 동남아 관광지와 비교해 가격 경쟁력은 날로 떨어졌다. 기업들은 더 크고 화려한 시설을 짓는 것으로 난관을 돌파하려 했다.

그러나 서씨는 생각이 달랐다. 제주에 매혹되기 위해서는 제주를 속속들이 느껴보아야 했다. 그러자면 걸어야 했다. 서씨는 9월8일 일반에 선보인 제주올레 시범길을 ‘본디 제주 모습에 가장 가까운 길’이라고 표현한다. 자동차와 가장 적게 마주치면서도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오름·돌담·몽생이(제주산 망아지)를 골고루 만날 수 있는 길, 느릿느릿 걸을수록 오히려 참맛을 느낄 수 있는 길. 그런 길을 찾기 위해 제주 전역을 누빈 결과, 서씨는 성산일출봉으로 유명한 성산읍에서 적지를 찾아냈다. 말미오름(‘두산봉’ 또는 ‘멀미오름’이라고도 한다)에서 종달리 소금밭∼해안도로∼성산일출봉 입구 터진목을 거쳐 섭지코지에 이르는 약 15km 코스가 그것이다.

말미오름 오르자 너도나도 ‘탄성’

이날 시범길을 따라 걷기에 나선 사람들은 특히 말미오름에 이르러 터져나오는 탄성을 감추지 못했다. 야생화가 양탄자처럼 푹신푹신 깔리고, 노약자가 쉬엄쉬엄 걸어도 전혀 지장이 없을 순탄한 길을 20분쯤 오르니 어느 순간 시야가 3백60°로 확 트였다. 오름 정상에 오른 것인데, 여기서 일찍이 보지 못한 대장관이 펼쳐졌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면 저 멀리 한라산을 배경으로 그 앞에 첩첩이 늘어선 오름들의 향연이,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성산일출봉과 우도를 오브제 삼아 끝도 없이 펼쳐진 쪽빛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한비야씨(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는 “외국에도 멋진 풍광을 지닌 곳은 많다. 그런데 그곳들은 대부분 사람을 주눅들게 한다”라고 말했다.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먼 위압감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오늘 만난 제주의 자연은 친근하고 따뜻하게 품어주는 아름다움을 지녔다”라며 제주올레 시범길을 극찬했다.

오후 5시. 비록 몸은 피곤하지만 저마다 충만한 기쁨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사람들은, 그러나 마지막 코스인 섭지코지에 이르러 무거운 침묵에 빠졌다. ‘섭지코지 사수 대책위원회’ 소속 주민들이 유인물을 나눠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섭지코지 정상 일대에는 대규모(19만7천 평) 휴양 리조트를 조성하려는 (주)보광의 공사가 2년째 진행되고 있었다. 제주에서의 길은 그렇게 막혀 위협받고 있었다. ?

〈시사IN〉 창간 기념  독자 참여 이벤트

“오름에서 바다까지, 제주 길을 걷습니다”

‘간세다리’를 아십니까? 간세다리란 나무늘보 같은 게으름뱅이를 뜻하는 제주도 방언이라고 합니다. 〈시사IN〉이 이 가을, 독자 여러분께 간세다리가 될 것을 제안합니다.

정신없이 달려가기도 바쁜 세상에 웬 게으름뱅이 타령이냐고요? 그러게요. 참 한심하다며 혀를 끌끌 차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합니다. 그렇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의 가치를 믿는 분들 덕에 탄생한 〈시사IN〉으로서는 이 모든 것들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습니다. 〈시사IN〉을 세상에 나오게 해주신 독자 여러분, 사단법인 제주올레와 함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평화로운 길’을 느릿느릿 걸어보지 않으시렵니까?

참가하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1. 언제 걷나 : 10월20일(토) ~ 21일(일)

2. 어디를 걷나

1일째 : 김포공항 출발(서울 기준)~제주공항~시흥초등학교(제주 성산읍)~말미오름~종달리~해안도로~수마포~광치기~섭지코지(약 5~6시간 소요) *따로 출발하는 독자는 제주공항 주차장 또는 시흥초등학교로 모여주시면 됩니다.

2일째 : 서귀포시 보목리 검은여~정방폭포 옛길~남성리~외돌개(약 3시간 소요)

3. 참가 비용

1인당 25만원(항공료·교통비·숙박비·식비 포함), 만 12세 이하 자녀는 19만원. *단체 항공편을 이용하지 않는 독자의 행사 참가비는 7만5천원입니다.

4. 어떻게 참가하나

〈시사IN〉 홈페이지(www.sisain.co.kr)에 있는 ‘제주 걷기 행사 참가 신청’난을 이용하거나, 전화 02-3700-3200(담당 배은옥)으로 신청해주시면 됩니다. 선착순 70명입니다.

※ 비가 오더라도 행사는 진행합니다. 제주도는 날씨가 변화무쌍하기로 유명합니다. 비옷과 바람에 날아가지 않는 모자를 꼭 준비해주십시오.

기자명 김은남 기자 다른기사 보기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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