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 경제가 2008년 하반기 미국발 금융 위기로 호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해 3분기 실질 GDP성장률이 전기 대비 0.5% 하락한 데 이어 4분기에는 3% 이상 하락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 정도의 경기 침체는 1974년 이후 거의 35년 만에 처음이다. 세계 경제의 동반 침체에 따라 2008년 수출이 급격히 감소했는데(-3.4%), 수출 총액 자체가 감소한 것 역시 7년 만에 처음이다. 이는 역대 최대의 하락률(-15.8%)을 보인 대미 수출의 급감에서 비롯된다. 수출 부진에 따라 일본 기업의 수익(경상이익)과 설비투자는 지난해 두 자릿수의 마이너스 성장세를 기록하리라 예상된다.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취업자 수는 11개월 연속 감소했으며, 실업률은 4.4%로 2005년 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가계의 소비 지출 역시 지난해 3월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발 금융 위기 이후 실물경제 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 정부는 지난해 10월과 12월 세 차례에 걸쳐 총 64조 엔에 이르는 대규모 긴급 경제 대책을 내놓았다. 이번 긴급 경제 대책은 다음의 몇 가지 면에서 과거 그것에 비해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첫째, 직접적 재정 투입 규모가 대규모화했다는 점이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경제 대책에서 재정 투입 규모는 총 10조 엔에 달했는데, 이는 2000년 이후 열 차례의 경제 대책에서 2.5조~3.9조 엔 수준이던 재정 투입 규모에 비해 3배 정도 많은 것이다. 이것은 일본 정부가 재정정책의 기본 방향을 2000년대 초반부터 견지해온 재정 건전화 노선에서, 작금의 실물경제 침체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재정 악화가 염려되는데도 불가피하게 경기 부양 노선으로 전환했음을 의미한다.

ⓒAP Photo일본 정부는 하이브리드 카(위) 같은 저공해차를 구입할 때 한시적으로 세금을 줄여주기로 했다.

경기 회복 이후를 대비한 정책도 제시

둘째, 과거의 대책에서는 공공사업이 재정 지출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으나, 이번 대책에서는 중·저소득층, 중소기업을 위한 고용대책과 감세 지원이 중심을 이룬다는 점이다. 주목할 만한 조처로는 중소기업의 고용 유지 지원, 비정규직·실직자에 대한 공공기관의 유휴 주택 제공, 중소기업의 법인세 경감세율 추가 인하,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정액급부금 지급(1인당 1만2000엔)을 예로 들 수 있다. 이것은 일본 정부가 소비 확대와 중소기업 활성화를 통해 경제의 조기 회복을 최우선으로 도모함을 시사한다.
셋째, 정부가 향후 경제 상황의 급변에 탄력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2009년도 예산안에 실탄을 준비해놓았다는 점이다. 일본 정부와 여당은 2009년도 예산안에 과거 사례가 없는 1조 엔 규모의 ‘경제 긴급대응 예비비’를 편성했다.

넷째, 환경·에너지 분야에 대한 감세와 재정 지원을 통해 녹색성장 분야를 배려하고 경기회복 이후를 대비한다는 점이다. 이 분야에 대한 주요 사례로는 에너지 절약, 신에너지 부문의 설비투자에 대한 감세, 저공해차 구입에 대한 한시적 감세, 태양광 발전 설비 도입에 대한 재정지원 따위 조처가 있다. 아울러 일본 정부는 향후 5년간 환경 관련 산업의 시장 규모를 100조 엔으로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일본판 그린 뉴딜 대책을 이르면 3월께 내놓을 예정이어서 주목된다.

현재 일본 정부는 전대미문의 대규모 경제 대책으로 전대미문의 경제 위기에 맞서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책이 소비와 투자의 확대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므로 당장의 경기 감속 완화를 기대하기는 무리가 있다. 또한 현재의 금리 수준(0.1%)이나 대규모 재정 적자 등을 고려할 때 추가 대응 여력에 상당한 제약이 있다.

결국 일본 경제는 2009년에도 고통스러운 한 해를 보낼 것으로 예상한다. 지난 1월28일 국제통화기금(IMF)은 일본 경제가 올해 더욱 감속(-2.6%)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것은 일본 경제가 1998년 금융 위기 당시 -2% 성장을 기록한 이래 약 10년 만에 최대 폭의 경제 침체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기자명 이형근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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