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동성애가 대세야!” 내 게이 동생들이 요즘 내게 외치는 소리다. 그들의 목소리에는 살짝 흥분이 섞여 있다. 반 옥타브 올라간 그들의 목소리에는 ‘이제 이 나라도 게이로서 좀 살 만한 세상이 되었나? 이제 나의 정체성을 주변 사람들에게 노출해도 되는 건가?’라는 기대와 설렘의 작은 떨림이 묻어난다.
그렇다. 지금 돌아가는 세태를 보면 동성애가 대세는 대세다. 적어도 문화예술계는 그렇게 보인다. 연극과 뮤지컬에서는 이미 몇 년 전부터 동성애 캐릭터가 자주 등장하고, 광고계에서는 긴가민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광고부터 아예 대놓고 ‘완벽한 남자에게는 예쁜 여자 친구 혹은 남자 친구가 있다’라는 동성애 코드의 영상까지 버젓이 내비친다. 케이블 텔레비전을 보면 외국 인기 프로그램이든 국내 제작 프로그램이든 동성애 소재나 인물이 없으면 재미가 반감될 정도다.
공중파 텔레비전도 얼마 전부터 금기에 도전하고 있다. 오래전인 1999년 KBS 연말 특집 단막극 〈슬픈 유혹〉(주진모·김갑수 주연)이 있었고, 2007년에는 MBC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동성애가 나왔다. 오락 프로에서는 꽃미남 출연자가 여장을 하고 나오는 게 허다해졌다. 영화에선 〈왕의 남자〉 〈후회하지 않아〉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쌍화점〉까지 이제 멋진 배우들이 지독하고 처절한 동성애를 연기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대한민국 대표 미남 주진모와 조인성이 완전 누드로 러브신을 펼치고, 관객이 그들의 사랑 연기에 가슴을 떨며 안타까워하고 놀라워하는 날이 올 줄을….
내가 이태원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에 심심찮게 게이 친구들이 와서 밥을 먹는다. “너 〈쌍화점〉 봤니? 나 죽는 줄 알았다.” “아니, 왜?” “주진모랑 조인성 정사 장면은 왜 그리 짧은 거야?” “야야, 그 영화의 교훈이 뭔 줄 아니? 일반 이성애자를 사랑하면 뼈도 못 추리고 패가망신한다는 거야. 알아? 크크크.” 이런 식의 농담을 다른 사람들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떠들어댄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새로운 충격이다.
못생긴 동성애자는 동성애자 취급도 못 받아
9년 전이다. 2000년 9월, 나는 대한민국을 상대로 무지개 깃발(동성애 운동을 상징한다)을 흔들며 ‘난 게이다’라고 커밍아웃했다. 많은 사람에게 욕을 배 터지게 먹었고, 참여하던 모든 방송 프로그램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났다. 3년 동안 수난은 계속됐다. 드라마 작가 김수현 선생님이 드라마 〈완전한 사랑〉으로 불러주기까지 난 배우의 날개를 꺾을 수밖에 없었다. 생활인으로서도 삶을 포기해야 했고, 수없이 많은 밤을 눈물로 지새워야 했다. 내 정체성 때문에 삶과 죽음의 경계를 얼마나 오갔던가….
그건 결코 진실이 아니다. 못생기고 뚱뚱하고 옷발도 서지 않고 나처럼 대머리인 사람이 “사실은 나도 게이야”라고 밝히면 “네가?”라며 토끼눈을 뜨는 사람을 여럿 보았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상황이 참 묘하다. 내가 좀더 잘생긴 얼굴이었다면 9년 전 커밍아웃했을 때 돌을 조금 덜 맞을 수 있었을까? 내가 〈꽃보다 남자〉의 F4처럼 꽃미남이었으면 ‘게이 꽃미남 판타지 영화’의 주인공을 맡을 수 있었을 텐데…. 별 미친 생각도 한번 해본다. 그래도 언젠가 ‘있는 그대로의’ 동성애 이야기를 다루는 멋진 작품에서 나도 작은 역을 맡아 신명나게 연기하는 꿈을 꿔보는 게 그리 큰 죄는 아니지 않은가.
전화를 건 작가 선생님도 다음 작품에서 그릴 게이 캐릭터를 조인성이나 주진모처럼 ‘완벽하고 멋진 배우’로 캐스팅하고 싶다고 했다. 선생님! 그래도 그 옆에 동료 역할로, 저처럼 못생기고 대머리에, 진행하는 케이블 텔레비전 출연자에게 긴장 풀어주기 위해 농담하면 “껄떡댔다”는 시답지 않은 루머에 시달려 밤잠을 설치는 진짜 게이에게 연기를 시켜보심이 어떨는지…. 흉내만 내는 배우들 보기도 이젠 좀 지친다고요.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