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백승기

민주당 박지원 의원(사진)의 방 번호는 615호다. 김대중 정부 시절 6·15 남북 정상회담의 산파 노릇을 한 그가 18대 국회 입성이 결정되자 특별히 청해서 얻은 방이다. 그런 박 의원이니만큼 DJ-김정일 두 정상의 6·15 공동선언, 노무현-김정일 두 정상의 10·4 선언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에 남다른 소회를 가질 법하다. DJ의 복심으로도 불리는 박 의원은 2월4일 진행된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지금이 남북 문제를 풀 마지막 기회다”라고 연거푸 강조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기류가 급변하고 있다. 현재 남북 관계를 어떻게 진단하는가?
(이명박 정부 1년간) 실패의 연속이다. 부시의 대북 강경 정책이 미사일 모라토리엄, NPT 탈퇴, IAEA 조사관 추방, 북한의 핵실험까지 이어졌다. 그렇게 실패한 부시도 마지막에는 김대중-클린턴 대통령의 햇볕정책으로 돌아와 북미 직접 대화와 6자 회담을 통한 문제 해결을 추진했고, 그 연장선에서 오바마 시대가 열렸다. 그런데도 이명박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의 실패한 대북 강경 정책을 쓰고 있어서 우리가 아무 역할도 못한 채 배제당하기만 하는 양상이다. 경제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다’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들린다.
그 사이 핵도 진전되고, 대포동 미사일도 진전된다. 버스 지나간 다음 손 들어서 뭐 하나. 결국 손해나는 건 누군가. 한반도에 긴장이 조성되어 국가 신용 등급이 낮아지고 국채 이자가 높아지면 대한민국 기업만 손해다. 해외 투자 유치가 어려워지고 현재 와 있는 외국 자본이 빠져나가면 한국 경제가 흔들린다. 실용주의 경제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왜 기본을 무시하는가.

북한이 강경하게 나오는 데는 북한 내부 사정이 작용하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중국 왕자루이를 통해 김정일 위원장의 건재는 확인시켰고,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4·15 김일성 생일 등 빅 이벤트를 앞두고 북한 내부와 오바마 정부에 세게 한번 ‘데모’를 해보는 수순 아니겠나. 역사적으로 보면 북한 특유의 자존심 외교나 벼랑끝 전술이 결국은 성공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 북한 내부 사정을 들여다보면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 이후 엄청난 개혁 개방이 진행되고 있다. 그런 마당에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도 사실로 드러났다. 그렇다면 김 위원장으로서는 어떻게든 미래를 대비할 수밖에 없다. 북·미 관계 개선으로 북한 체제를 인정받고, 개혁·개방으로 경제발전을 이뤄내야 하는 당면 과제에 직면한 것이다. 미국 처지에서도 이란·이라크·아프카니스탄보다 비용이 적게 드는 북한 핵 문제를 먼저 해결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 이를 동력 삼아 중동 지역 문제 해결에 나설 수도 있다. 따라서 서로의 필요가 맞아떨어지는 지금이 한반도 문제를 풀 적기다. 이럴 때 우리가 남북 관계의 중요성과 역학 관계를 잘 설명해서 가속화하는 것이 필요하지, 뒷다리를 잡으면 안 된다.

후계 문제나 군부 분위기 등이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는 시각에 대해서는?
김정남이 방송에 나와 “(후계자 문제는) 아버님만이 결정하실 수 있다”라고 하는 걸 보면, 김정일 체제가 여전히 굳건하다는 것 아닌가. 다만 가장이 한번 심하게 아프고 나면 집안 걱정을 하듯, 김 위원장도 자기 대에 뭔가를 매듭짓고자 하는 마음이 강해졌을 것이다. 지난날 ‘김일성 주석만 죽으면 북한은 무너질 것이다’ 했지만, 그렇게 됐나? DJ 정부 때 클린턴-김정일 만남이 성사됐다면 얼마나 많이 발전했겠는가. 오바마 4년,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이 대통령은 “한·미 관계가 튼튼해서 북한의 통미봉남 정책이 먹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미·일 동맹이 얼마나 굳건한가. 그런데도 “일본인 납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절대로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빼서는 안 된다”라는 일본의 주장을 무시하고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했다. 그만큼 미국 외교는 철저하게 국익에 따라 좌우된다. YS 정부 때에도 “핵을 가진 자와는 악수도 안 한다”라며 손을 놓고 있다가 북·미 관계가 진전되면서 KEDO 분담금 70%를 부담하는 등 들러리 노릇만 했다.

한국이 다소 밀려나 있더라도 북·미 관계가 진전되어 북핵 문제가 풀리면 나쁠 것 없지 않은가?
결국 뒷감당은 우리가 해야 한다. 미국은 절대 자기 돈 안 낸다.
 

ⓒ사진공동취재단꼬인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 박지원 의원은 이명박·김정일 정상회담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왼쪽은 2000년 김대중·김정일 두 정상이 만난 장면.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 정책으로는 안 된다는 얘긴가?
비핵·개방·3000은 북한이 먼저 다 포기하면 이쪽에서 뭔가 해주겠다는 의미인데, 상대가 있는 협상에서 그런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 부시 전 대통령도 처음엔 북한이 핵을 먼저 포기하라고 주장하다가 결국 6자 회담을 통한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 방식의 협상으로 바뀌었다.

대통령의 철학이 문제인가, 참모진이 문제인가?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을 찾아와 50분간 면담을 했는데, 햇볕정책에 대한 얘기를 20~30분 듣는 동안 “각하, 저하고 (생각이) 똑같습니다”를 다섯 번이나 하더라. 그런데 취임 후 나오는 정책이나 발언을 보면 영 다르다. 정보위원회에서 김성호 국정원장이나 김하중 통일부 장관과 얘기를 나눠봐도 우리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청와대만 가면 막혀오더라. 결국 대통령의 철학과 관련 있는 것 아닌가 싶다. 대통령의 원탁 대화를 보면서도 이런 것도 같고 저런 것도 같고, 도통 모르겠더라.

현인택 통일부 장관 내정자에 대해서는 왜 반대하는가?
그분은 부적격자다. 대한민국 주미대사나 주일대사도 주재국에서는 한국을 대변하지만, 본국에 오면 주재국 처지에서 역할을 한다. 그런 면에서 최소한 통일부 장관이나 적십자사 총재 등은 북한이나 일반 국민이 보기에 납득할 만한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데 현 내정자는 남북 문제 전문가도 아니고, 또 북한이 강력하게 반발하는 비핵·개방·3000 정책의 이론 제공자이기도 하다.

이런 기세라면 남·북간에 또다시 무력 충돌이 있을지 모른다는 염려가 나온다.
꽃게잡이를 놓고 충돌이 있었는데, 그래서 이익 본 게 무엇인가. 북한도 그런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오바마 정부는 북한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설 것이다. 힐러리 국무장관의 아시아 방문도 그런 맥락이고, 보스워스 전 대사 등도 이미 움직이고 있다. 그런 오바마 정부에 미사일을 취임 첫 선물로 보내서야 되겠나.

남북 문제를 풀기 위해 대북 특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여전히 유효한가?
2000년 3월 초 내가 싱가포르에서 김정일 위원장 특사와 만나 4시간 동안 얘기를 나눴을 때 “마치 DJ 음성을 듣는 것 같다”라면서 신뢰를 보내더라. 그것이 결국 남북 정상회담 성사로 이어졌다. 그래서 DJ도 이 대통령이 가장 신임하고 4년간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을 특사로 보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이 대통령도 그 노하우를 다 알고 있다. 그런데도 ABKR (Anything But Kim Dae-jung & Roh Mu-hyun) 전략을 쓰는 것 같다.

한 방송에서 북한이 정중히 청하고 이명박 정부도 요청할 경우 김 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할 수도 있다고 했는데.
그건 특사가 아니라 원로 자격으로 방문할 수 있다는 얘기다. 남북 대화의 핵심은 김정일 위원장을 직접 만나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정상회담을 해야 하고, 그러려면 이 정부 인물이 ‘특사’로 가야 한다.

기자명 이숙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ok@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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