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는 잘생겼다. 그 남자는 목소리가 좋다. 누구는 그가 탤런트 아무개를 닮았다고 했다. 그 남자는 서른여덟 살로 보이지 않는다. 동안이다. 그 남자는 부자다. 아니,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부자로 보인다. 어떻게 아느냐고? 그 남자는 좋은 차를 몬다. 억 소리가 나는 차다. 거기다 부자 남자들이 그렇듯이 그 남자는 오만하지 않다. 노래방 도우미인 데다 나이도 자기보다 열 살은 많은 여자에게 그 남자는 친절하다. 거기다 매너도 좋다. 한국 남자 가운데 무척 드문 경우이다.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느라 힘들어 하는 여자에게 그 남자는 회를 사주고 술을 사준다. 그냥 사주는 것도 아니다. 어디로 가겠느냐? 남자는 여자를 배려하면서 묻는다. 버스 정류소에서 오들오들 떨면서 버스를 기다리는 여자에게 다가간 남자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묻는다. 태워드릴까요?

‘오렌지 미중년’이랄까? 억 소리 나는 차가, 정말 엔진 소리도 안 나게 스르륵 서더니 〈귀여운 여인〉의 리처드 기어 같은 남자가 호의를 베풀어 태워준다는데 거절할 여자가 얼마나 될까? 꽃보다 자동차다. 차도 그냥 차가 아니다. 꽃보다 명차다. 결국 강호순을 연쇄살인범으로 이끈 건 그의 외모가 아니다. 그가 탄 차(사진)다.

강씨에게 감금됐다 풀려나 살아난 40대 여성은 “그가 잘생겨서 전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이를 놓고 언론은 떠들었다. 강씨가 잘생긴 외모로 여자의 방어막을 무너뜨렸다고. 글쎄다. 그렇게 믿고 싶은 순진한 마음이야 뭐랄 수 없다.

하지만 그를 빛나게 한 건 그가 아니다. 그가 탔다는 차다. 바로 에쿠스다. 일찍이 한 자동차 광고가 줄창 읊어댔다.  “당신을 말해주는 건 바로 당신의 차”랬나 뭐랬나. 그 광고, 정곡을 찔렀다. 차는 이제 그 사람이다. “비싼 차 주인은 멋진 인간”이라고 말하는 시대다. 좋은 차 몰고 다니는 인간을 성폭력 살해범이라고 의심할 여자가 얼마나 될까? 비싼 차가 진짜 공범이다.

그런데 왜 연쇄살인범 여자는 없는 걸까? 그것도 남자만 골라 죽이는? 남자 노래방 도우미가 없어서? 비싼 차를 몰고 가다 거리에서 떨고 있는 훈남 청년을 만나 “태워드릴까요?”하고 차에 태운 뒤, 그 청년들을 차례차례 죽인 여자 연쇄살인범이 잡힌 뒤에도 우리 언론은 이렇게 보도할까? 연쇄살인이 일어난 게 마치 피해자들의 잘못이라는 듯이? “남자들 호신용품 구입 급증” “남자들 밤이면 외출 자제” “낯선 여자는 모두 경계해야” “연쇄살인범 강 아무개양은 부성을 자극하는 목소리” “남자들 바지가 너무 쫙 달라붙어 성폭력범 자극”….

연쇄살인범이 여자 7명을 죽이도록 여태 뭐했는지 알 수 없는 치안 현실은 제쳐두고 단지 사람을 믿었던 여자만 탓하는, 강간의 제국 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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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조은미 (오마이뉴스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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