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23일 이곳 브뤼셀에 있는 유아원에 20세 청년이 침입해 아기 두 명과 보육사 한 명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워낙 사건 사고가 드문 벨기에 사회에서 브뤼셀 시민이 받은 충격은 한국의 강호순 사건에 비견할 만했다. 신문과 방송은 현장에서 잡힌 피의자 김 드 젤더의 얼굴과 실명을 공개했다. 타이블로드 언론은 1면에 대문짝만 하게 그의 사진을 깔았다.

한국에서는 최근 강호순 때문에 범죄자 신상 공개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을 공개한 언론사와 비공개 원칙을 고수하는 언론사 간 대립이 마치 보수-진보 대립 구도와 흡사해 보인다. 대개 이런 경우 외국 사례를 언급하면서 각자 주장의 정당성을 확보하게 되는데, 여기서도 딱히 결론을 얻기는 힘들어 보인다. 유아원 살해 사건을 다루는 벨기에 언론을 보건대, 신상 공개는 정치적 성향과 아무 상관없이 허용되고 있다.

벨기에만 그런 것이 아니다. 유럽 각국에서 모인 브뤼셀 주재 기자들에게 피의자 신상 공개 여부를 물어봤다. 프랑스·영국·이탈리아·스페인 등등…. 다들 원칙적으로는 재판이 끝나기 전까지는 무죄 추정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강호순 사건의 예를 들어주면 대답이 달라졌다. 중요 사건의 경우에는 신상을 공개하는 게 맞다고 말하는가 하면, 한 프랑스 기자는 “정답을 알 수는 없지만, 타 언론사와의 경쟁 때문에라도 신상을 공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들이 소개해준 언론 윤리헌장을 살펴보니 ‘피의자의 신상 공개 여부는 주의깊게 다뤄야 한다’는 식이었다. 해석하기 따라 예외 가능성이 열려 있다. 만약 유럽은 피의자 신상 보호를 한국보다 더 잘할 거라고 기대했다면 실망할 것이다. 유럽·미국·일본에서는 중요 피의자의 프라이버시권보다 독자의 알 권리가 우선한다.

법원도 ‘취재원 신상 공개’ 명령 못해

하지만 여기에도 예외가 있으니 스웨덴이다. 스웨덴 일간신문 다겐스 니헤테르 기자 마리안 뵤르클룬드와 강호순 사건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이미 신병을 확보해 추가 범죄 가능성이 없는데 왜 이름과 얼굴을 공개해야 하느냐”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마리안 기자는 일화를 말해줬다. 1986년 올로프 팔메 스웨덴 총리가 괴한에게 암살당했다. 곧 경찰은 용의자를 체포했다. 하지만 스웨덴 언론은 끝까지 그 용의자 이름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 피의자는 결국 재판에서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다. 물론 지금은 모든 스웨덴 사람이 그의 이름을 안다. 피의자 크리스터 페터손은 2004년 병으로 죽었다. 스웨덴 사람은 그를 암살 피의자로 기억하는 게 아니라 무죄로 풀려난 사람이라고 기억한다.

기자는 연쇄살인범의 경우 얼굴 공개가 공익에 부합한다는 논리에도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스웨덴의 피의자 보호 원칙은 좀 과도한 면이 있어 보인다. 그녀에게 왜 스웨덴은 다른 유럽 인권 국가보다 더 엄격하냐고 물었다. 마리안은 스웨덴의 언론 환경은 여타 유럽과 다른 점이 많다고 했다. “예를 들면 스웨덴 기자는 판사 앞에서도 취재원의 신상을 공개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그러니까 정부나 법원이 기자에게 강제로 취재원을 공개하도록 요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반 유럽 국가나 미국과 다른 점이다. 2005년 미국 뉴욕 타임스 밀러 기자가 취재원을 공개하라는 판사의 명령을 거부하다 구속된 사례가 떠올랐다(뉴욕 타임스는 동네 잡범의 이름도 모두 공개하는 신문사다).

스웨덴 기자는 그 어느 나라보다 높은 수준의 언론 자유를 누린다. 지난 호 칼럼에서 국경없는기자회(RSF)가 매년 발표하는 언론 자유 지수 순위를 언급한 바 있다. 그 순위에서 스웨덴은 매년 10위권에 든다. 반면 취재원을 공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자가 구속되는 미국은 40위권이다.

마리안이 기자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왜 스웨덴 언론이 개인 신상 보호에 유달리 집착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자유가 큰 만큼 책임과 의무도 다른 나라보다 큰 것이다.

기자명 브뤼셀·신호철 기자 다른기사 보기 shi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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