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uters=Newsis세계적인 헤지펀드 투자가 짐 로저스(위)는 “파운드화로 지닌 자산을 모두 팔아치우라”고 강조했다.
‘영국의 식민지’라는 소리를 듣는 지중해 연안의 휴양지 마요르카와 이비자·코스타 델 솔·그랑카나리 군도 등 영국인이 들끓던 휴양지에 요즘 영어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겨울철 스키 천국인 스위스 알프스의 생 모리츠나 다보스·사보이 지역도 사정이 비슷하다. 에게 해 연안의 휴양 중심지 안탈야는 독일어 전용 지역이 됐다. 영국인 관광 휴양객의 발걸음이 확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영국 통화 파운드스털링의 화폐 가치가 추락하면서 영국인의 해외 휴양이나 관광이 줄었다. 영국의 자존심이자 ‘주권의 상징’으로 사랑받아온 파운드화가 세계 금융 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비틀거리고 있다.
2007년 11월에 대 달러 환율이 2.116달러였던 파운드가 지난 1월21일에는 24년 이래 최저선인 1.3733달러까지 추락했다. 지난해 여름만 해도 1파운드 대 1.5유로였던 환율은 1월27일에는 1.068유로로 곤두박질쳤다.

‘파운드 쇼크’ ‘파운드 굴욕’으로 불리는 파운드의 날개 없는 추락은 지금 영국 경제의 자화상이다. 영국 금융기관과 노동당 정부의 구제금융정책에 대한 불신과 경제 전망에 대한 불안이 늘어나면서 파운드화 가치 추락의 밑바닥이 어디일지 가늠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으로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헤지펀드 투자가인 짐 로저스는 영국 투자자에게 “파운드화로 지닌 자산을 모두 팔아 치워버리라”고 권유해 영국 금융정책 당국자의 가슴에 천불을 놓았다. 그의 말을 일반 투자자나 영국인이 흘려들을 수 없는 이유는 그가 헤지펀드의 세계적 큰손인 조지 소로스와 1990년대 초 ‘콴텀펀드’를 공동으로 설립해 1992년 영국 금융계에 크게 한 방 먹이고 합법적으로 영국 납세자의 돈을 20억 달러나 ‘털어 먹은’ 전력이 있는 투자 귀재이기 때문이다.

그는 1월19일 홍콩에서 “나는 파운드화 재산은 한 푼도 갖고 있지 않고 모두 처분했다”라고 호언했다. 그리고 “영국은 이제 북해 유전도 없고 금융 중심지인 시티(City of London)도 없으며, 이제 더 이상 팔아먹을 것도 없다”라며 영국인의 자존심을 박박 긁어놓았다.

정부의 구제금융정책, 신뢰 못 받아

한때 달러화·유로화와 함께 세계 3대 기축 통화로 신뢰받던 파운드화가 고작 1~2년 사이 천국에서 지옥으로 추락한 원인은 영국 시중 은행이 해외에 진 빚이 영국 국내총생산(GDP)의 2배가 넘는 4조4000억 달러에 달하는 등 영국 금융기관의 몰락 가능성이 엿보이면서부터다. 투자자와 국민이 영국 정부가 내놓는 구제금융정책이 성과를 낼지 의문을 품는 데에도 직접적 원인이 있다. 영국 정부는 지난해 10월 1차 구제금융정책에서 공적 자금으로 스코틀랜드 왕실은행(RBS), HBOS, 로이즈 TSB 등 거대 은행의 지분을 매입한 후 1월19일에는 RBS의 지분을 70%로 늘리는 내용을 포함한 2차 구제안을 내놓았으나 정작 은행주가 요동을 치는 등 구제금융정책의 성과를 예측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유로화의 문턱을 배회하는 ‘유령’이 된 파운드라는 비아냥이 대륙의 ‘유로 존’(유로화 통용 지역)에서 떠도는데도 영국 국민과 정부는 아직도 지난날의 자존심에 기대어 유로권 진입(유로화 도입)을 한사코 반대한다. 영원한 세계 1위가 없듯이 자존심이 경제 위기를 막아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이미 유럽연합(EU) 제2위의 경제 대국 영국에 경제적 몰락의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깊어간다.

기자명 런던·남정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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