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국산 와인은 칠레 와인(위)의 파고를 넘을 수 있을까.
동행한 사진기자가 국산 사과 와인 파라다이스 얘기를 꺼내자, 김홍철 디오니캐슬와인 기획실장이 웃으며 말했다. “어, 그 와인 이야기하면 나이가 꽤 드셨다는 건데….” 그렇다. 첫 국산 와인 ‘파라다이스’는 꽤 오래전(1967년)에 등장했다. 하지만 소주와 막걸리에 길들여 있던 한국인들의 입맛을 크게 자극하지는 못했다. 1974년에 양조 포도로 만든 노블포도주가 나왔지만 처지가 비슷했다. 1977년 출시된 마주앙이 그나마 체면치레를 하지만, 역시 소주와 막걸리 소비량의 10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시작이 미약한 탓일까. 국산 와인은 지금도 고전 중이다. 2007년 우리나라 와인 소비량은 3만7655㎘(1인당 평균 590㎖). 2002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었지만, 그중에 국산 와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14.6%에 지나지 않는다. 그 나머지(85.4%)는 프랑스·칠레·미국·오스트레일리아 산 와인이 점령하고 있다. 이 판세는 앞으로도 크게 흔들리지 않을 듯하다. 칠레·오스트레일리아 산 와인의 공세가 점점 더 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칠레 와인의 점프력이 좋다. 2004년에 전체 수입 와인의 13.8%를 차지하며 단숨에 이탈리아 와인(8.1%)과 오스트레일리아 와인(7%)을 제치더니, 이듬해에는 17.6%로 미국산 와인까지 앞섰다. 칠레 와인이 잘나가는 이유는 세 가지. 1만~2만원대의 저렴한 가격과 비교적 달콤한 맛 그리고 낮은 알코올 도수 덕이다.  

수치로만 놓고 보면, 현재 국산 와인의 가장 쟁쟁한 경쟁 상대는 칠레·오스트레일리아 와인이라 할 수 있다. 과연 국산 와인은 두 나라의 벽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쉽지 않아 보인다. 국산 와인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도가 낮고, 국산 와인의 풍미가 가격에 비해 고상하지 않은 탓이다.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도 도약대에 선 국산 와인의 발목을 잡는다. 명절에 선물용으로 구매하다가, 명절이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다시 칠레·오스트레일리아 와인 등에 눈길을 주는 것이다.

와이너리 투어도 비슷하다. 오스트레일리아나 유럽의 와이너리 투어는 비싼 돈을 들여서라도 부랴부랴 좇아가지만, 접근성이 좋은 국내 와이너리 투어에는 아직까지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하나로마트를 제외한 대형 할인 마트도 국산 와인을 외면하기는 매한가지다. 이대로라면 성장 가능성이 없지 않을까. 포도·와인 전문가 송기철 박사(국립원예특작과학원·기술지원과)는 “국산 와인의 입지가 점점 더 줄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 땅에 맞는 품종을 찾아내면 사정이 달라질지 모른다”라고 말했다.

그 시기가 언제쯤일까. 일본이 자국산 와인의 시장 점유율을 20%대로 끌어올리는 데 50년 이상이 걸렸으니까, 파라다이스를 국산 와인의 원조로 삼는다면 이제 10여 년 남은 것인가.

기자명 오윤현 기자 다른기사 보기 nom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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