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철 기자는 한국언론재단(KPF)과 유럽저널리즘센터(EJC)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언론교류 프로그램에 따라 유럽연합(EU) 기구가 모여 있는 벨기에 브뤼셀에 파견됐다. 브뤼셀은 유럽 정치의 수도이면서, 한편으로는 기자 1만2000여 명이 모인 유럽 언론의 수도이기도 하다. 현장에서 만난 유럽 언론인의 이야기를 모아 ‘유럽의 기자들’ 칼럼을 연재한다.

 

 

ⓒ시사IN 신호철미네르바 구속 사건을 다룬 1월9일자 파이낸셜 타임스.


지난 1월9일 아침, 브뤼셀 유럽의회 앞에서, 이 동네 터줏대감 기자인 마리아라우라 프란초시를 만났다. 대뜸 그녀는 “당신네 나라에서 한 블로거가 정부에 안 좋은 글을 썼다가 잡혀갔다면서요?”라고 물었다. 나는 ‘블로거’라기에 대체 무슨 말인가 하고 갸우뚱했는데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얘기였다. 어디서 들었느냐고 물으니 파이낸셜 타임스에서 봤단다. 프란초시 기자는 “미네르바를 체포한 이유가 거짓 정보를 온라인에 썼기 때문이라는데, 만약 글에 잘못이 있다면 정부가 사실을 바로잡아 발표하면 될 일이지 왜 사람을 잡아 가두냐?”라고 물었다. 딱히 대답할 말이 없었다.

프란초시뿐만 아니었다. 한국에서 언론 자유가 악화되는 현상을 말하는 유럽 언론인을 만나기는 어렵지 않았다. 내가 출근하는 유럽저널리즘센터 건물(레지던스 팔라스) 같은 층 옆방에 국제기자연맹(IFJ)이 있다. 1월13일 인사차 IFJ에 들러 에이든 화이트 사무총장을 만났는데, 그가 “하우 아 유” 인사 다음에 건넨 첫마디는 “요즘 YTN은 어떠냐”였다. 화이트 사무총장은 미네르바 사건에 대해서도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 흐름이 거꾸로 가는 것 같아 걱정된다고 말했다.

역시 기자가 있는 레지던스 팔라스 C동에는 ‘국경 없는 기자회(RSF)’ 지부가 있다. RSF는 1월12일 미네르바를 석방하라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그가 체포된 것은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훼손된 것이며 한국 인터넷의 미래가 병드는 조짐이다”라고 밝혔다. 국경 없는 기자회는 참여정부 시절인 2006년 한국의 언론 자유 순위를 아시아에서 가장 높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 그런데 2년 사이 RSF가 한국을 보는 시각이 크게 바뀐 것이다.

아마도 이명박 정부 쪽에서는 경제 발전을 위해 언론 자유를 유보할 수도 있다는 구실을 댈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 유럽에서 보면, 표현의 자유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국익의 문제다. 외교·경제적 실리와 결코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브뤼셀에서 겪은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지난 1월19일에 터키 총리가 브뤼셀에서 조찬 브리핑을 했다. 총리는 터키가 EU에 가입할 준비가 다 되었다고 강조했다. 질의 시간이 되자 유럽 기자들은 터키 정부가 최근 기자들을 탄압한 사건을 언급하며, 언론 자유를 막는 터키가 EU 회원국이 될 자격이 있는지 따졌다. 민주주의와 사회 개혁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터키의 EU 가입을 판가름하는 기준은, 종교·경제 격차 못지않게 민주주의 성숙 여부였다.

인권 경쟁력 추락=정치·경제적 손실

한국 정부는 최근 EU와 FTA를 체결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1월21일 EU집행위원회 경제부처의 홍보 담당자와 만났다. 그는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라 FTA를 맺는 데 거부감이 적다”라고 말했다.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 만약 민주주의가 취약한 나라와 FTA를 맺는다면 EU 내부 반발이 심할 거라고 설명했다.

아직 한국이 민주주의 인권 국가라고 생각하는 유럽인이 많다. ‘언론 자유 국가’ ‘사실상 사형제 폐지 국가’라는 이미지 덕분이다. 하지만 미네르바 구속 같은 희한한 사건이 외국 기자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하면, 한국의 ‘인권 경쟁력’은 추락하고, 이는 외교·경제적 손해로 이어진다. 이명박 정부 식으로 말하면, 이건 이념이 아니라 실용에 관한 문제다.

 

 

기자명 브뤼셀·신호철 기자 다른기사 보기 shi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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