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사진기자단1월30일 ‘대통령과의 원탁 대화’에 나온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 문제와 국민 통합이라는 두 개의 주제를 놓고 국민과의 소통을 시도했다.

“용산요? 이제 정리된 것 아닌가요?” 용산 참사의 파장을 어떻게 전망하느냐는 질문에 한나라당의 한 초선 의원은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이렇게 답했다. 이명박계로 분류되는 이 의원은 “사람들이 처음엔 철거민 사망에 더 분노했지만, 설 연휴를 기점으로 전철연(전국철거민연합회)의 실체가 부각되면서 5 대 5로 바뀐 것 같다”라고 분석했다. 책임 소재가 분산되는 만큼 여론이 한쪽으로 쏠릴 위험도 줄었다는 얘기다.

여론의 흐름이 달라졌다는 진단은 곧바로 ‘김석기(경찰청장 내정자) 고수론’으로 이어졌다. “대통령이 열심히 일하다 생기는 문제는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그래 놓고 김 내정자를 사퇴시키면 다른 공직자들이 과연 소신 있게 일을 할 수 있겠나. 특히 경제부처 공직자에게 미칠 영향 등을 우려해 대통령이 김 내정자 사퇴에 부정적인 것 같다”라는 것이다.

실제로 청와대의 한 고위 인사는 최근 ‘김석기 사퇴론’에 연일 군불을 때는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비슷한 논리를 폈다고 한다. “(김 내정자가) 열심히 설거지하다 접시 깬 격 아니냐. 그랬다고 자르면 공직 사회를 장악할 수 있겠느냐” 하는 내용이었다. 이명박 대통령도 1월30일 ‘대통령과의 원탁대화’에 나와 “일 나갔다가 문제 생겼다고 자르면 공직자 누가 일하겠느냐. 지금은 (김석기 내정자의) 내정 철회를 얘기할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기류 탓인지 서울시장 때부터 이 대통령을 보좌한 한 재선 의원은 아예 김석기 임명을 기정사실화했다. 그는 “대통령이 (김 내정자 경질 여부를 놓고) 고민한다는 식으로 보도가 나오던데, 고민 안 할 것이다. 그냥 가는 걸로 굳히는 거 같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나라당 내 중도파나 친박근혜 진영에서는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하다. 이들 역시 용산 문제의 발화성이 다소 잦아들었다는 데는 동의한다. 문제는 마무리다. 이른바 당내 비주류에 속하는 인사들은 용산 참사의 깔끔한 마무리를 위해서는 ‘김석기 사퇴’가 필수라고 본다. 그래야 2월 국회와 4월 재·보궐 선거(재·보선), 5월 춘투로 이어지는 2009년 상반기 정국에서 용산 참사가 부싯돌로 작용할 가능성을 확실히 없앨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2월 국회는 ‘용산 국회’ 선언

홍준표 원내대표는 김석기 사퇴를 주장하는 이유로 두 가지를 들었다. 하나는 ‘관리 책임론’이다. 원인이 뭐가 됐든 6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면 말이 안 되고, 그 책임은 행정 조직의 수장이 지는 게 마땅하다는 것이다. 그는 “설거지하다 접시 깼다”라는 청와대 인사의 말에 “청소하다 집을 홀라당 태워먹은 꼴이다”라고 받아쳤다고 한다.
 

ⓒ뉴시스민주당과 민노당, 진보신당 등 야당은 시민사회 단체와 공동 기자 회견을 열어 용산 참사를 규명하고 ‘MB 악법’을 저지하겠다고 나섰다.

두 번째는 2월 원내 전략 때문이다. 홍 원내대표는 김석기 내정자가 정리되지 않으면 2월 국회는 오롯이 ‘김석기 국회’가 될 것이고, 한나라당이 핵심 법안을 처리하기가 매우 곤란해질 것을 걱정했다.
아닌 게 아니라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은 일찌감치 2월 국회를 ‘용산 국회’로 명명했다.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는 1월30일, 2월 국회 전략을 논의한 의원총회에서 “2월 국회의 첫째 과제는 용산 문제, 둘째 과제는 인사청문회다”라고 말했다. 여권이 서두르는 쟁점 법안 처리는 후순위로 미뤄놓은 것이다.
사실 미디어법을 비롯한 쟁점 법안 처리를 최대한 늦추고자 하는 민주당 처지에서 보면 용산 사태는 정치적 호재다. 1월 ‘입법 전쟁’ 과정에서 ‘본회의장 점거’라는 마지막 카드까지 써버린 터라 2월 국회 전략이 막막했는데, 정국을 주도할 새로운 ‘꺼리’가 생긴 것이다.

민주당이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400여 시민·사회 단체와 함께 2월1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대규모 국민대회를 연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용산 참사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여론을 이른바 ‘MB 악법’을 저지하는 동력으로 끌어오려는 의도가 깔렸다. 민주당은 용산 참사에 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시민단체와 함께 대규모 집회를 계속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한나라당의 한 중진 의원은 바로 이런 야권의 시도를 무력화하기 위해서라도 위기관리 매뉴얼을 제대로 작동시켜 미리미리 불씨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1월 입법 전쟁 때와 지금이 비슷한 형국이다. 당시 친이 강경파는 본회의장을 점거한 야당 의원들을 끌어내고서라도 법안을 처리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그렇게 할 경우 야당 의원들이 거리투쟁에 나서고 시민사회 세력과 연계해 제2의 촛불로 번질 수 있다는 반대 의견이 더 많아 결국 강경 드라이브를 막았다. 이번에도 친이 강경파는 김석기 고수론을 편다. 하지만 그것이 여론을 자극할 것을 걱정하는 쪽에서는 ‘민심 수습’에 무게를 두고 있다.”

4선인 남경필 의원부터 초선인 김성태 의원까지 청와대에 찍히는 것을 각오하고 ‘음찹마속’과 ‘대통령의 무조건 사과’ 등을 외치는 것은 그런 맥락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강경론과 온건론이 부딪치는 여권 내부의 난맥상, 그리고 내부 동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외부 지원에 기대야 하는 야권의 곤궁한 처지를 지켜보면서, 여야 정치권의 전략가들은 2009년 상반기에 전개될 ‘상식 수준의 시나리오’를 이렇게 제시한다.

경제 법안은 처리, 미디어법·마스크법은 연기?

첫째 김석기 카드는 청와대가 ‘퉁 치는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김석기 내정자를 끝까지 안고 가는 것은 정권에 부담이 크므로 검찰 수사와 원세훈 국정원장 내정자의 인사청문회가 끝나는 2월 초순쯤 정리할 것으로 보인다. “김석기 내정자만 그만두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쪽으로 분위기가 고조될 때에 맞춰 ‘버리는 카드’로 쓴다는 것이다. 게다가 현직 신분을 가지고 검찰 수사에 임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에라도, 그때까지는 내정자 자격을 유지하도록 하리라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해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은 “새로운 서울청장에 대구·경북 출신을 앉힌 것은 결국 김석기 카드를 버리겠다는 뜻 아니냐”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대통령이 경찰청장과 서울청장을 둘 다 같은 지역 출신으로 두는 무리수를 설마 쓰겠느냐는 얘기다.
 

ⓒ시사IN 안희태2월 국회는 의외로 싱겁게 끝날 가능성도 제기된다. 각 상임위별로 각개전투가 벌어지겠지만, 1월 국회의 외통위처럼 격렬한 싸움을 벌이기에는 여야 모두 여론의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둘째 ‘김석기 문제’가 해결되면 2월 국회는 의외로 싱겁게 마무리될 공산이 있다. 일단 교섭단체 대표 연설-인사청문회-대정부 질문 등이 끝나고 나면 법안 처리는 2월 중순 이후에나 시작된다. 2월 말까지 시간이 빠듯한 상황에서 방송법 같은 반대 여론이 높은 법안을 국회의장이 직권상정하는 것도 부담이고, 민주당이 본회의장을 다시 점거하는 것도 원천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따라서 각 상임위별로 핵심 법안에 대한 각개 전투를 벌인 뒤 막판에 경제 법안과 사회 법안을 갈라치기할 가능성이 높다. 출총제나 금산분리 완화 같은 경제 관련 법안은 합의 처리하고, 미디어법이나 ‘마스크법’ 등은 또다시 회기를 넘기는 식이다. 물론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지도부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이번에는 반드시 처리한다” “절대로 밀리지 않겠다”라는 기 싸움이 팽팽하다. 특히 각각 5월과 6월에 임기가 끝나는 홍준표·원혜영 원내대표 등 원내 지도부는 “말년 병장이 두려울 게 뭐가 있겠느냐”라며 끝장을 보겠다고 큰소리친다. 하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양쪽 다 막가기는 어려워 보인다. 여권의 강경 드라이브도 야권의 물리력 저지도 국민 여론이 썩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이 역력해서다.

셋째, 2월 국회가 큰 충돌 없이 끝나면 정치권은 곧바로 4월 재·보선 정국으로 돌입한다. 2월1일 현재 4월 재·보선이 확정된 지역은 인천 부평을과 전북 전주의 두 곳(덕진·완산), 경북 경주 등 국회의원 선거 4곳과 경기도 시흥시장 선거다. 이 가운데 여권 내 지각변동과 관련해 관심이 쏠리는 곳은 아무래도 경북 경주다. 친이 대 친박 후보 간 공천 경쟁이 이미 점화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역시 예상 외로 쉽게 정리될 수도 있다고 내다본다. 현재 친이계인 정종복 전 의원과 친박계인 정수성 예비역 육군대장이 격돌하고 있는데, 여론조사 결과 정수성씨가 앞서는 것으로 나타난다. 더욱이 정수성씨는 공천을 못 받을 경우 무소속으로라도 출마한다는 입장이어서, 제2의 친박 무소속 바람을 염려한 친이 진영이 차라리 친박 후보의 공천을 인정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물론 이 시나리오는 객관적인 데이터와 친이계 후보의 수용 등 여러 조건이 전제되어야 한다.
 

ⓒ시사IN 백승기한나라당은 국회폭력방지법 제정을 위해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사전 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그러나 재·보선의 핵심은 역시 수도권 선거의 승패 여부다. 몇 석 안 되지만, 결국 이명박 정부의 1년에 대한 평가가 여기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인천 부평을에서 박희태-정동영 빅매치가 이뤄져야 한다는 다소 황당한 얘기가 나오는 것도 그런 무게감 때문이다.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다고 알려진 박희태 대표가 재·보선에서 낙마라도 한다면, 그날로 한나라당은 선거 패배 책임론과 조기 전당대회를 둘러싼 계파 간 전면전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이런 ‘상식적 수준’의 시나리오가 과연 그대로 작동하느냐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용산 참사’처럼 또 어떤 변수가 튀어나와 상반기 정국을 뒤흔들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당장 주목되는 변수는 각종 경제 사정이다. 최근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정부의 경제 전망을 놓고 일부 참석자 사이에 설전이 벌어졌다. 특히 실물경제에 강한 정몽준 최고위원은 정부가 2009년 경제를 ‘상저하고(上底下高·상반기에는 경제가 부진하고 하반기에는 회복된다)’로 전망하는 데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하반기에 풀릴 거라면 대통령이 지하 벙커에 ‘워룸’을 만들 이유도 없다. 그만큼 상당 기간 어려우리라는 것을 정부도 알고 있다는 얘긴데, 왜 국민에게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고 기대감만 높이느냐”라는 내용이었다. 홍준표 원내대표도 기자들과 만나 “경제가 3~4년은 어려울 것으로 보고 정부가 대책을 세워야 한다. 국민의 기대감만 높이면 오히려 실망감을 키울 수 있다”라고 염려했다.

비정규직법 개정안이 새로운 화약고 될까

정 최고위원이나 홍 원내대표 등이 걱정하는 문제는 결국 국민의 실망이 행동으로 분출되는 것 아니냐이다. 실제로 여권 일각에서는 “취직이 안 되고, 장사가 안 되고, 월급이 깎이고, 직장에서 쫓겨나고, 그래서 먹고살기가 막막해진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리라 보인다. 특히 날씨가 따뜻해지면 이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흐름이 훨씬 거세질 것이다”라며 경계의 목소리를 높인다. 이른바 3월 위기설이 한나라당 안에서도 힘을 얻는 셈이다.

게다가 최근 새롭게 불거진 비정규직법은 이런 거리의 흐름에 불을 지필 가능성이 크다. 여권의 한 고위 인사는 “비정규직 문제가 2009년 춘투의 핵심이 되리라고 보고 지난해 여름부터 정부에 대책을 마련하라고 채근했다. 그런데 손 놓고 있더니 닥쳐서 비정규직법 개정안을 내놓았다”라고 불만을 표출했다. 정부·여당이 내놓은 개정안은 비정규직 최대 고용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것이 핵심이다. 이에 대해 야당과 노동계는 강력히 반발한다. “단순히 기간만 연장하는 것은 시한폭탄을 뒤로 미룬 것일 뿐이다. 현행법을 유지하되 기업의 정규직 전환을 유도하는 정책을 적극 써야 한다”라는 것이다. 이 문제는 자칫 노동계와 여권의 극한 충돌을 부르는 뇌관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에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 솔로몬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여권 내부에서부터 나온다.

그러나 돌발 변수 가운데 무어니 무어니 해도 파괴력이 큰 것은 ‘이명박 변수’다. 이명박 대통령이 정치적 결단의 순간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정국을 순항하게도, 아니면 더욱 요동치게도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이 대통령이 김석기 경찰청장 카드를 끝까지 고집할 경우, 또 이 대통령이 2월 국회에서 미디어법을 비롯한 모든 법안을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고 한나라당과 국회의장을 강하게 압박할 경우, 아니면 4월 재·보선 때 특정 인사는 꼭 공천해야 한다거나 절대로 안 된다고 지침을 내리는 경우 등이다.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민주당 이광재 의원은 “국민이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건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경제라는 공 하나에만 집중해야지, 여러 공을 차려다가는 한 골도 못 넣을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보수의 책사로 알려진 윤여준 전 한나라당 의원은 1월29일 희망제작소가 주최한 특강에서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대통령이 한나라당과의 소통, 야당 등 비판 세력과의 소통, 국민과의 소통 등 세 갈래 소통에 치중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국가 지도자에 대한 냉소와 불신이 깊어지고 지지도 하락이 장기간 이어지면서 권력의 공백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원탁 대화’에 나와 국정 전반에 대한 의견을 피력한 것도 어찌 보면 이런 소통의 필요성을 인식해서인 듯하다. 하지만 여전히 ‘소통’ 보다 ‘홍보’에 치중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이 목말라 하는 것은 일방향이 아닌 쌍방향 소통이라는 얘기다.

기자명 이숙이·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ok@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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