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안희태용산 참사 현장을 찾아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시민.
참사를 빚은 서울 용산 4구역 재개발 사업은 300명 남짓 되는 부동산 소유자가 조합을 결성해 세입자 900명과 임대차 계약을 해지하고 기존 건물을 철거한 뒤 새로운 건물을 짓는 일이다. 이를 위해 철거는 철거업체에, 건물 짓는 일은 시공업체에 맡겼다.

그러나 실제로 재개발 전 과정을 주도하는 ‘보이지 않는 손’은 시공을 맡은 건설재벌이다. 재개발이 큰 돈벌이가 되기 때문이다. 용산 4구역의 사업비는 2조원으로 용산 역세권 개발사업의 일부분이다. 용산 역세권 개발사업은 사업비가 28조원에 달하는 초대형 재개발 사업으로, 엄청난 개발 이익이 걸린 까닭에 웬만한 건설재벌은 모두 참여하고 있으며 주간사를 맡은 삼성물산이 개발을 주도한다.

증권가 분석에 따르면 삼성물산이 용산 역세권 개발 사업에서 얻는 이익은 시공 이익을 포함해 무려 1조4000억원에 달한다. 삼성물산은 포스코·대림과 함께 4구역 시공도 맡고 있는데, 시공비 6000억원을 받고 주상복합건물 7개 동을 짓는다. 시공업체들은 건물 높이를 40층까지 올려 전체의 47%를 기존 소유자 300여 명에게 분양하고 53%를 일반 분양하는데, 분양가는 3.3㎡(1평)당 3500만원이 훌쩍 넘는다.

재개발 과정에서 기존 부동산 소유자는 땅값이 오르고 분양가를 낮춰 받음으로써 개발 이익을 나눠 가진다. 투기세력·철거업체·시행사도 돈을 벌고 지자체도 재산세 수입이 늘어 이득을 본다. 그러나 엄격히 말하면 이들은 조연 또는 엑스트라이고 주연은 역시 건설재벌이다.

이처럼 재개발의 주연과 조연, 엑스트라가 각자 돈벌이를 위해 2월로 예정된 공사 시작 기일을 맞추려 속전속결로 한겨울 철거를 강행하다 참사를 빚은 셈이다.

건설재벌이 재개발의 주연이 된 데는 주택 공급이나 재개발을 정부나 지자체가 책임지고 공공개발하는 선진국과 달리 민간에 맡기는 민영개발 방식을 택한 역대 정권의 부동산 정책 탓이 크다. 1973년 주택 개량에 관한 임시조치법이 제정 공포된 이후 지난해까지 서울에서 진행된 재개발·재건축·도시환경정비 사업 977건 중 969건이 민간에게 맡긴 민영 개발 방식이었다. 말이 민간이지 재개발 사업은 대부분 소수 건설재벌 차지였다. 지난해 8월 기준으로 서울의 80개 뉴타운·재개발 지구에서 건립될 주택 중 75%를 삼성물산·현대건설·GS건설 등 다섯 개 건설재벌이 수주했다. 특히 공동 수주를 포함해 삼성물산이 확보한 물량이 전체의 32%에 이른다.

삼성물산, 수주량 90%가 재개발·재건축

최근 아파트 미분양이 쌓이자 건설재벌이 미분양 위험이 적은 재개발·재건축에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어 이같은 현상은 더 심해지고 있다. 심지어 지난해 9월 현재 삼성물산이 수주한 주택 물량의 90%가 재개발·재건축일 정도다.

국민의 주거 안정과 직결된 주택 공급과 재개발을 이윤만을 좇는 건설재벌에 맡기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것’과 다름없는 극단적인 결과를 빚을 수 있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만성적인 부동산 투기, 고분양가 폭리, 살던 사람을 내쫓는 재개발, 건설업 비대화 등이 바로 이를 잘 보여준다.

건설재벌이 도맡아 하는 재개발 사업에서 일어나는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의 돈벌이를 극대화하기 위해 세입자들을 가혹하게 희생시킨다는 점이다. 상가 세입자가 다수 포함돼 있던 용산 4구역의 경우 관련 법규조차 정비되지 않아 권리금과 시설비 등을 전혀 보상받지 못하고 내쫓겨야 했지만, 주거 세입자가 다수인 재개발 지역 역시 법에 보장된 임대주택이나 이주비까지 떼이는 일이 잦다.

재개발을 마친 동네가 아파트, 그것도 서민이 살기 어려운 중·대형 일색인 것도 건설재벌의 돈벌이와 무관하지 않다. 기존 집주인들 역시 자산가치를 감안해 아파트를 선호한다. 2000년 이후 서울에서 각종 재개발 사업을 거쳐 새로 지은 주택의 99%가 아파트였다. 그 결과 재개발 뒤 거주할 수 있는 가구가 오히려 줄어드는 경우도 발생했다. 다양한 주택이 섞여 있던 용산 4구역에도 700가구 이상이 살고 있었으나, 재개발 이후 들어설 주택은 아파트 493채로 거주 가구수가 200가구 넘게 줄어든다.

아파트 중에서도 중·대형을 더 많이 짓는 이유는 단위 면적당 건축비가 싸게 드는 반면 분양가를 높일 수 있어 건설재벌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용산 4구역에 들어설 아파트 493채 가운데 임대주택 84채를 빼고는 모두 164㎡(50평)~312㎡(95평)형으로 가장 싼 아파트가 20억원에 육박하고 제일 큰 평형의 일반 분양가는 40억원대다. 살던 사람 열 중 아홉이 동네를 떠난 길음 4구역의 예처럼, 용산 4구역도 세입자는 물론이고 다수의 집주인도 비싼 분양가를 감당 못하고 떠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동네를 떠나더라도 재개발이 동시다발로 진행되고 그 과정에서 투기가 극성을 부려 가난한 사람이 설 땅은 점점 좁아진다.

ⓒ뉴시스건설재벌은 건축비는 싸게 드는 반면 분양가는 높일 수 있는 중·대형 아파트를 재개발 지역에 주로 지어 이익을 극대화한다. 위는 한 건설사의 모델하우스 모습.
이처럼 살기 좋은 동네 만들자고 시작한 재개발이 건설재벌 배 불리는 사업으로 전락함으로써 세입자와 넉넉지 못한 집주인들을 동네에서 쓸어내는 ‘서민 대청소’ 작업이 되는 것이다.
나아가 재개발은 아파트 분양제도와 함께 한국사회 부동산 먹이 피라미드의 최상층에 있는 건설재벌과 부동산 부자가 세입자 등 부동산 서민층을 수탈하는 유력한 수단이 되고 있다.

용산 참사에서 목격하듯 그 과정은 단시간에 이윤을 뽑기 위한 속도전일 뿐 아니라 세입자들이 먹고살기 위해 투자한 권리금이며 인테리어 비용 등 전 재산을 사실상 빼앗는 과정이었으며, 이에 저항하는 세입자를 ‘생떼 부리는 집단’으로 취급하며 용역 깡패와 테러 진압 경찰 특공대의 가혹한 폭력으로 짓밟는 것이었다.

재개발 사업은 공공 부문에서 맡아야

서울시에 따르면 현재 예정된 각종 재개발 구역은 934곳에 달한다. 만약 지금까지와 같이 건설재벌이 중산층의 욕망을 자극해 서민 삶의 터전을 짓밟고 자신의 탐욕을 채우는 방식이 계속된다면, 지난 총선 때처럼 서울에서 한나라당이 싹쓸이하는 행진은 이어지겠지만 한국 사회 자체가 벼랑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용산 참사는 이것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용산 참사를 계기로 상가 세입자 보상비 현실화와 지자체 보조 등 부분적인 개선책이 논의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이 논의는 냉전 체제 아래서 형성된 극단적 사유재산 절대주의를 넘어서고 주거권을 인권으로 인정해 재개발 과정에 세입자의 참여를 철저히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이 또한 미봉책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지금부터라도 국민의 주거 생활과 직결된 주택 공급과 재개발 문제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책임지고 공공의 영역에서 해결하기 위한 큰 그림을 다시 그려가야 하는 이유다.

기자명 손낙구 (〈부동산 계급사회〉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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