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지난 1월20일 철거민 이상림·양회성·이성수·한대성·윤용헌씨와 경찰 특공대 김남훈 경장이 숨졌다. 검찰은 철거민의 화염병을 발화 원인으로 꼽고 있지만, 철거민들은 경찰의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강제 진압이 참사의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서울시 용산구 국제빌딩 뒤편 신용산 5길. 국제빌딩 주변 4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에 속한 이곳 건물은 모두 ‘사형선고’를 받은 채 집행을 기다리고 있다. 대박부동산의 유리창은 깨지고 부서졌고, 대진여관은 폭격을 맞은 듯 뼈대만 남아 있다. 건물마다 붉은색 스프레이로 휘갈겨 쓴 ‘철거’라는 글씨가 눈에 띄고, 용역업체 직원들이 휘두른 망치에 생채기를 그대로 드러낸 채 방치되어 있다.

설을 앞둔 지난 1월23일, 인적마저 뜸해 을씨년스럽기까지 한 길목에서 하나네식당 김부조씨(67)는 마지막 영업을 했다. 지난 20년간 같은 자리에서 식당을 운영한 그에게 용산은 제2의 고향이나 마찬가지다. 충남 당진이 고향인 김씨는 그 세대가 흔히 그랬듯 첫아들을 낳고 서울로 올라왔다. 용산에 둥지를 튼 건 용산 시외버스터미널 때문이다. 김씨는 버스 운전대를 잡았고, 아내는 근처 식당에서 일했다.

국제빌딩 주변 4구역 도시환경 정비사업:용산구 한강로3가 63-70호 일대 53,441.60㎡. 대지면적: 28,718.8㎡. 건축면적: 13,849.71㎡. 연 면 적 : 385,429.61㎡(4-1획지 124,2 77.30㎡, 4-2획지 261,152.31㎡). 4-1획지 지하 7층, 지상 40층, 높이 142.55m 주상복합. 4-2획지: 지하 7층, 지상 39층, 높이 142.55m 주상복합.시행사: 국제빌딩 주변 제4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조합(조합장 이춘우).사공사: 삼성물산, 포스코건설, 대림산업.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도시 미관을 해친다며 시외버스터미널이 없어지자, 김씨도 직장을 잃었다. 김씨는 지금의 자리에 식당 문을 열었다. 식당 이름을 딸의 별명인 ‘하나’로 지을 만큼 아내의 손맛에 자신도 있었다. 한때 외환 위기 한파로 임차료가 밀리기도 했지만, 노부부에게 하나네 식당은 삶의 버팀목이었다. 식당을 운영해 자식들 뒷바라지를 했고, 결혼도 시켰다. 넉넉하지는 않아도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용산은 노년을 보낼 보금자리였다.

그러나 지난해 ‘도시환경정비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날벼락처럼 불어닥친 재개발 바람에 노부부는 삶의 터전이 뿌리째 뽑혔다. 하나네식당은 지난 1월20일 용산 참사가 일어난 바로 뒤쪽 구간의 건물에 있다. 마지막 영업을 하던 김씨는 가끔씩 용산 참사가 일어난 남일당빌딩을 바라보았다. 

세입자 보호막 구실 못하는 법

이번 참사로 숨진 이상림씨(71)는 김씨의 고향 선배다. 이씨는 그에게도 전국철거민연합(전철연) 가입서를 내민 적이 있다. 그러나 김씨는 건강이 좋지 않아 싸움을 포기했고, 전철연 가입도 거절했다. 대신 그는 재개발 조합 쪽이 내민 이주 합의서에 도장을 찍어줬다. 세입자인 김씨가 20년간 뿌리를 내려온 곳을 비워주는 대가로 조합 쪽이 제시한 보상금은 2300만원이었다. 김씨는 울화가 치밀었고 조합에 항의해 그나마 300만원을 더 받아냈다. 김씨는 “내 손에 들어온 보상금 2600만원으로는 이곳을 떠나 식당 자리 구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라고 말했다. 다른 곳에 식당을 내려면 보증금 외에 권리금이나 시설 투자비가 추가로 들어가야 하는데 결국 빚을 져야 가능하다. 김씨는 남일당 건물을 바라보며 “우리도 건강했으면 저 망루에 올라갔을지도 모르겠다. 염라대왕이 좀더 늦게 오라고 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김씨가 2600만원을 손에 쥔 채 길거리로 내쫓긴 것은 관련 법규가 세입자 보호막 구실을 하지 못한 탓이 크다. 현재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을 비롯해 ‘택지개발촉진법’ ‘도시개발법’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 ‘도시재정비촉진을 위한 특별법’에 세입자 보호 장치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상가 세입자가 받는 법적 보호는  영업 손실 보상금이 전부이다. 현행 토지보상법 시행규칙을 보면 상가 세입자는 최근 3년간 평균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최대 3개월분의 영업 손실을 보상받게 되어 있다. 여기에 휴업 기간 중 영업용 자산에 대한 감가상각비·유지 관리비 등이 덧붙는다.

하지만 세입자들이 상가를 빌리며 가장 큰 목돈을 들이는 권리금이나 시설 투자금에 대해서는 보상 규정 자체가 없다. 참사가 난 용산 4구역 세입자 법률 자문을 맡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조동환 변호사는 “상가 세입자 처지에서 가장 절실한 권리금 등의 구제 방안이 빠진 현행법은 사실상 보호 장치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이번 참사로 숨진 이상림씨나 양회성씨(55)도 빚까지 내며 투자한 돈을 보상받지 못해 망루에 올라갔다. 이씨는 지난해 3월 3억원가량을 투자해 호프집 문을 열었다. 17년 동안 갈비집을 운영하다 아들 충연씨(35)와 함께 종목을 바꿔 호프집을 열었지만 2개월 만에 상가를 비워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당연히 영업보상금에는 호프집을 새로 열며 들어간 인테리어 비용 등이 포함되지 않았다. 여의도에서 일식집을 운영하다 5년 전 빚을 내 용산 4구역에 복집을 차린 양회성씨도 마찬가지다. 당시 보증금 8000만원에 상가를 빌려 수리비로 7000만원, 시설 투자비로 5000만원을 썼다. 하지만 그에게 쥐어진 보상금은 5000만원이 전부였다.

 
세입자 처지에서 턱없이 부족한 보상금을 받고 제 발로 걸어 나가는 경우는 드물다. 세입자는 버티고, 조합 쪽이나 구청 쪽은 명도소송과 행정대집행을 통해 용역을 앞세워 충돌하는 ‘재개발 악순환’이 반복되기 마련이다.

세입자 890여 명이 밀집해 있는 용산 4구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탁문헌 민주노동당 용산4구역 세입자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해부터 용역들의 행패를 눈 뜨고는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용역들이 작정하고 시비를 거는데, 안 당해본 사람은 모를 것이다”라고 말했다. 세입자에게는 법적 보호 장치 없다시피 하고, 강제 철거에 나선 용역의 횡포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용산 참사는 언제 또다시 터질지 모르는 ‘재개발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다(39쪽 기사 참조).

주거나 도시 환경을 개선시키겠다는 본래 취지와 달리 재개발 지역에서 내몰린 세입자들이 가는 곳은 또 다른 재개발을 앞둔 지역이다. 값이 싼 지역으로 벼랑 끝 이주가 되풀이되는 것이다. 주거 세입자가 특히 그렇다. 상가 세입자와는 별개로 주거 세입자는 법적으로 50년 공공 임대주택, 임시수용시설, 주거 이전비, 동산 이전비(이사비) 등을 보상받게 돼 있다.  주거 대책비와 임대아파트 입주권을 모두 받을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조합 쪽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하기 일쑤다. 소득 수준에 비해 버거운 4000만~5000만원에 이르는 임대료 탓에 세입자들은 임대아파트 입주권을 스스로 포기하기도 한다.

세입자, 벼랑 끝 이주 되풀이

용산 4구역 주거 세입자(450여 명) 대다수도 재개발을 앞둬 상대적으로 전셋값이 싼 인근 지역으로 이주했다. 민주노동당 용산 4구역 세입자 대책위원회 이강희 간사는 “여기서 쫓겨난 세입자 70~80%가 인근 재개발 지역인 한강로 40번지, 동빙고동, 교분동으로 이주했다”라고 말했다. 이미 이 지역도  재개발 조합이 설립되는 등 철거 예정지이다. 이 간사는 “보증금 800만~1000만원에 월세 20만~30만원으로 얻을 수 있는 집은 한정되어 있다”라고 말했다.

2007년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직 때 서울시정개발연구소에서 내놓은 보고서 〈뉴타운 사업에 따른 원주민 재정착률 제공방안〉을 보더라도 원주민을 내쫓는 재개발 실태를 알 수 있다. 2005년 입주가 시작된 길음 뉴타운의 길음 4재개발 구역의 거주 가구 1468가구(조합원 868가구, 세입자 600가구)의 이주 패턴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세입자 600가구 가운데 공공임대주책 입주권을 선택한 가구는 겨우 135가구(22.5%)였다. 나머지 주거 대책비를 선택한 세입자 485가구는 재개발이 끝난 뒤 길음동 20%(92가구), 성북구 8.3%(38가구), 성북구 인접 지역에 6.2%(212가구)가 산다. 아예 서울을 떠난  세입자도 18.3%(84가구)로 조사되었다.

그렇다면 세입자를 강제로 내몰지 않고도 재개발을 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은 없는 것일까? 해외에서 답을 찾자면 영국은 전면 철거 재개발 방식 자체를 지양한다. 일본은 아예 주거재정비사업이 공공 차원에서 진행되고, 소득에 따라 차등 임대료를 부과해 실질적인 주거권을 보장해준다. 

전문가들은 바다 건너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식 대안 모델이 가능하다고 제안한다. 현실적으로 세입자를 몰아내지 않고도 재개발을 할 수 있는  순환 재개발 방식을 그 대안으로 꼽는다. 민주당이나 민주노동당 등도 순환 재개발 제도를 강제화하는 법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시행되는 재개발은 대부분 해당 지역을 전부 철거하는 철거 재개발 방식이다. 반면 순환 재개발은 재개발 지역 안에 임대주택을 마련해주거나 인근 지역에 세입자를 이주시킨 뒤 순차적으로 개발하는 방식이다. 1988년 재개발이 이뤄진 서울 상계 5-2지구를 비롯해 1990년대 서울 신림 2-2지구, 신림 1구역에서 순환 재개발 방식이 적용됐다. 홍기옥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은 “순환 재개발 방식의 가장 큰 장점은 세입자 등의 재정착률을 높이고, 무엇보다 세입자의 주거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1983년 지주 조합과 건설사가 짝을 이뤄 재개발을 추진할 수 있게끔 한 합동 재개발 방식이 도입·확산되면서 순환 재개발 방식은 설 자리를 잃어갔다. 효율성과 이윤 추구를 위해 지주 조합이나 건설사나 철거 재개발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시사IN 임병식 인턴기자지난 1월23일 김부조씨 부부(위)는 마지막 영업을 한 뒤 용산을 떠났다.
상가 세입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번 용산 참사에서 드러났듯 상가 세입자에 대한 보상 문제는 여전히 태풍의 핵으로 남아 있다. (사)나눔과미래 이주원 지역사업국장은 상가 세입자에 대해 영업손실보상금에 권리금이나 상권 등 그동안 감정평가에서 제외된 유·무형의 자산까지 평가해주고 임시상가 설치 등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1월23일, 하나네식당을 찾은 마지막 손님은 아이러니하게도 ㅎ사 소속의 용역업체 직원들이었다. 오후 2시30분 마지막 영업을 마친 김씨는 고물상에 식당 집기를 넘겼다. 손때 묻은 집기를 넘기고 김씨가 받은 돈은 80만원이었다. 김씨는 보상금으로 받은 2600만원을 고등학교 3학년인 손녀딸의 자취방 구하는 데 썼다. 김씨 부부는 다음 날 제2의 고향인 용산을 떠났다. 고향인 충남 당진으로 돌아갈 염치가 없다며 김씨는 고향에서 가까운 충북 괴산으로 내려갔다. 그는 “주유소 일이라도 하려 했더니 나이가 많다고 거절당했다. 농사를 짓든 뭘 하든 일자리를 구해야지”라고 말했다.

1월29일 김씨가 떠난 하나네식당에도 붉은 색 스프레이로 ‘철거’라는 사형선고가 내려졌다. 하나네식당과 가까운 남일당빌딩에는 참사 유족과 대책위가 임시 분향소를 차려놓았다. 이상림씨를 비롯한 철거민 5명의 영정 사진 옆에는 ‘살려고 올라갔다가 죽어서 내려왔다’고 쓰인 피켓이 놓여 있었다.

취재 도움: 임병식·유슬기·이환희 인턴기자

기자명 고제규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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