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지난 1월22일 경찰특공대원 영결식에 참석한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가 눈물을 닦고 있다.
고작 사흘 만이었다. 경찰청장 내정 사흘 만에 경찰특공대가 철거민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6명이 숨지고 23명이 다쳤다. 책임은 고스란히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55) 몫이었다. 어청수 당시 경찰청장은 사의를 표명하고 현직에서 발을 뺀 상태였다. 더구나 김 내정자는 서울경찰청장으로서 사실상 진압의 최고 책임자였다. 진압에 나선 경찰특공대도 서울경찰청 직할 부대였다. 특공대 투입을 김 내정자가 직접 지시했다는 문서가 공개되면서 숨을 곳이 없었다. 이 과정에서 김 내정자는 말 바꾸기로 점수를 잃었다.

김석기, 경찰과 정권의 신망 두터워

화염병을 던졌다고 해서 그 사람을 죽일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또 이번 진압 작전으로 농성 철거민뿐만 아니라 경찰도 1명이 숨지고 17명이 부상당하는 큰 희생을 치렀다. 명백한 경찰의 작전 실패였다. 이에 따른 지휘 책임도 크다. 경찰권 집행 과정에서 발생한 사망 사건의 책임을 지고 수장이 물러난 사례는 이전에도 적지 않았다. 1987년 박종철씨 고문치사 사건 때는 “책상을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죽었다”라고 말하던 치안본부장(현 경찰청장)이 구속됐다. 내무부 장관은 옷을 벗었다. 1991년 4월 명지대생 강경대군이 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죽었을 때는 바로 다음 날 내무부 장관이 물러났다. 2005년 여의도 농민대회에 참석했던 농민 1명이 숨졌을 때 허준영 경찰청장이 지휘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하지만 원세훈 행정안전부 장관을 비롯해 청와대와 경찰·서울시·용산구 등 어디에서도 책임지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김 내정자는 홀로 여론의 화살을 맞아야 하는 처지다.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는 부친의 뒤를 이어 경찰에 입문했다. 전투경찰에 자원해 병역을 마칠 만큼 경찰을 천직으로 여긴다. 김 내정자의 30년 친구 김 아무개씨는 “김 청장은 경찰이라는 직업에 자부심이 대단했다”라고 말했다. 한 서울경찰청 고위 간부는 “부상한 말단 경찰관들을 위문하고 편지를 자주 써서 후배들을 감동시켰다”라고 말했다.

김 내정자는 경북 영일 출생으로 대륜고와 영남대 행정학과를 나왔다. 1979년 경찰간부 후보 27기를 수석 졸업하고 경위에 임관됐다. 이후 김 내정자는 승진 시험에서 1등을 놓친 적이 없다고 한다. 김 내정자는 오사카 총영사관 영사와 도쿄주재관으로 7년을 일본에서 보낸 ‘일본통’이기도 하다. 김 내정자의 초등학교 친구 한대희씨(57)는 “DJ 정권에서 경찰 수사권 독립을 주장하다 일본으로 쫓겨간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 내정자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포돌이’다. 일본 경찰대학 유학 시절 일본 경찰의 마스코트 ‘삐뽀’를 보고 영감을 받아 1999년 수서경찰서장 재임 시절 포돌이를 창안했다. 포돌이를 그린 만화가 이현세씨는 김 내정자의 경주중학교 2년 후배로, 이씨 모친 살해 사건을 김 내정자가 해결한 인연이 있다. 김 내정자는 포돌이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김 청장 내정자의 이메일과 미니 홈피 주소가 모두 podoricreator (포돌이 창안자)다.

김 내정자는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인물로 경찰 내부에서 평가받는다. 2007년 한화 김승연 회장의 보복 폭행사건 은폐 의혹이 불거질 당시 이택순 경찰청장에게 물러나라고 직언을 해, 경찰종합학교장으로 밀려나기도 했다. 덕분에 경찰 내부의 평가는 대단히 좋은 편이다. 경찰청 한 간부는 “경찰 내부에서는 ‘10년 만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청장감’이라는 평이 있다”라고 말했다. 반면 비판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한 지방경찰청 고위 간부는 “원칙주의자로 알려진 김 내정자가 정권이 바뀌자 정치적 편향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라고 말했다. 

ⓒ뉴시스용산 참사 관련 회의에 참석한 김석기 서울청장(왼쪽)과 어청수 경찰청장.
김 내정자는 경찰 내부를 아우를 만한 힘이 있었다. 여기에 대구·경북(TK) 출신으로 정권 실세들과 관계가 단단하고 충성심도 강하다. 특히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의 고교 후배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김 내정자는 일찌감치 ‘준비된 경찰청장’으로 불렸다. 정권 출범 초기 TK 지역의 한 원로는 “석기가 빨리 경찰청장이 돼야 하는데”라고 말했다.

청와대, 시간 벌기에 들어가

김 내정자는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부활했다. 김 내정자는 원칙을 이야기하면서 계속해서 강공 드라이브를 걸었다. 지난해 7월 서울경찰청장으로 부임한 후 최루액과 색소 분사기 사용, 검거 위주의 진압 작전 등 강경 대응책을 내놓았다. 유모차 부대와 미성년자에 대한 무리한 수사를 벌이기도 했다. 시위자를 검거한 경찰관에게 포상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해 논란을 빚은 것도 그였다. 지난해 11월4일 김 내정자가 한 언론과 인터뷰한 내용이다. “솔직히 원칙대로 하면 불리한 것이 많다. 만약 시위대에게 불상사가 생겼으면 어떻게 됐겠나. 옷을 벗어야 했다. 그럴 각오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이 나라의 법질서가 영원히 회복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용산 참사 이후에는 김 내정자가 자리에 연연하는 인상이다. 이번 사건 발생 하루 전인 지난 1월19일 기자간담회에서 김 내정자는 “불법 시위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러고는 강경 진압 작전으로 대형 참사를 불렀다. 한 치안감급 인사는  “김 청장은 매우 신중한 사람인데 서울청장 시절부터는 너무 강하게 밀어붙였다. 철거민 진압에 경찰 고위층이 직접 나서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왜 그렇게 서둘렀는지,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1월29일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김 내정자의 거취에 대해 “현재까지는 전혀 미풍도 없다”라고 덧붙였다. 경찰 주변에서는 청와대가 김 내정자 지키기에 들어갔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김석기 내정자를 축으로 정리한 권력기관장 인사를 흩뜨리지 않겠다는 계산이다. 법질서 확립을 위해서는 김 청장의 임명을 강행해야 한다는 기류가 대안 부재론과 맞물려 힘을 얻었다는 것이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소나기는 잦아드는 법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불법 폭력 시위에 대한 지적이 나오면서 사퇴설이 수그러들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 내정자를 퇴진하게 하되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는 여권의 기류도 여전히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막판에 퇴진시켜 용산 참사를 마무리하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청와대는 1월29일 어청수 청장 퇴임 두 시간 만에 치안정감급 인사를 단행했다. 김석기 내정자가 낙마할 경우 후임자를 확보하기 위한 인사라는 해석에 목소리가 실린다. 경찰 안팎에서는 경북 성주 출신인 강희락 해양경찰청장과 경북 울진 출신인 주상용 서울경찰청장이 차기 경찰청장으로 꼽힌다.

기자명 주진우 기자·이해나 인턴기자 다른기사 보기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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