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uters=Newsis지난 1월27일 의회에서 공화당 의원들을 만나 8250억 달러에 이르는 경기부양안을 지지해달라고 설득한 뒤 기자회견을 하는 오바마 대통령.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취임 벽두부터 전임 부시 행정부가 물려준 난제와 씨름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 그는 취임 일주일 만에 대통령 행정 명령을 여러 건 발표해 전임 정부의 ‘악습’을 근절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테러용의자를 마구잡이로 가둬 사실상 치외법권 영역에 속했던 관타나모 수용소를 1년 안에 폐쇄하라는 것이 단적인 예다. 또 사상 최악의 경제난국을 해결하기 위해 오바마 행정부는 8250억 달러에 이르는 경기부양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지난 8년에 걸친 부시 행정부의 치정에 익숙한 공화당은 오바마 행정부의 ‘반부시 정책’에 불쾌해한다. 오바마 행정부는 시급하게 경기부양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공화당은 이 돈이 지출에만 초점을 맞추었을 뿐 세금을 줄이는 데 등한시했다면서 조직적으로 반발한다. 그 때문에 사상 최악의 경제난과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두 가지 숙제를 물려받은 오바마 행정부가 공화당의 조직적 저항을 물리치고 순항할 수 있을지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우선 부시 행정부 8년 내내 국제 인권단체와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지탄 대상이 돼온 관타나모 수용소 폐지 문제만 해도 공화당 인사의 반응은 대체로 차갑다. 이를테면 부시 전 대통령의 연설문 작성자였던 마크 티센은 워싱턴 포스트에 쓴 글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부시 전 대통령이 취한 방어적 조처를 약화시켜 테러범들이 다시 미국을 공격한다면 미국 국민은 그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며, 민주당은 한 세대 동안 집권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의 국정 운영에 직접 타격을 가할 수 있는 조직적 저항은 마크 티센 같은 개별 우파 인사가 아니라 공화당 자체다. 현재 가장 첨예하게 맞서는 대목은 8250억 달러의 경기부양안에 대한 현격한 견해차다. 오바마 행정부는 경기부양안 가운데 2750억 달러는 세금을 깎아 일자리 300만~400만 개를 보존하는 데 쓸 방침이다. 그러나 공화당 측은 전체 경기부양안 중 40%를 기업을 포함한 세금 감면에 쓸 것을 요구한다. 지난 대선 때 오바마의 적수였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조차 “더 감세해야 한다. 특히 법인세 삭감이 필요하다”라며 이런 내용을 경기부양안에 반영하지 않으면 찬성할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공화당의 비협조에 여론은 ‘싸늘’

사실 미국 의회는 상·하원을 모두 민주당이 장악했기 때문에 민주당 소속 오바마 대통령이 제출한 경기부양안도 민주당 지도부의 마음먹기에 따라 언제든 통과 가능하다. 그러나 문제는 상원이다. 안건에 대한 토론 없이 바로 표결에 붙이려면 상원의원 100명 가운데 60명이 필요한데 민주당은 현재 58석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화당 상원의원이 토론을 요구하고 다른 의원들까지 동조할 경우, 오바마 행정부가 제안한 경제 촉진안은 토론만 하다 사라질 수도 있다. 이런 의사진행 방해권을 원천 봉쇄하려면 최소한 공화당 상원의원 2명이 오바마 측에 동조해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다. 더구나 공화당 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이 있는 매케인 의원이 반대 의사를 표명한 상황이어서 다른 공화당 의원을 ‘포섭’하기란 쉽지 않다.

공화당 지도부도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미국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당선된 오바마 대통령의 발목을 집권 초기부터 잡는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공화당은 과거 민주당 소속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도 집권 초기부터 강하게 도전했지만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크게 다르다. 1992년 클린턴은 대선에서 투표율 43%로 간신히 승리했고, 공화당은 의회를 장악했다. 반면 지난 대선에서 오바마는 압도적 다수로 당선됐고, 그의 인기 덕에 상·하원을 모두 민주당이 장악했다. 한마디로 공화당은 지난 대선과 의회 중간선거에서 미국 국민의 냉정한 심판을 받고 국정 운영권을 민주당의 오바마와 의회에 돌려준 것이다. 그런 데다 부시 행정부 때 빚어진 사상 최악의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오바마 행정부가 분투노력하는데 계속 딴죽을 건다면 공화당은 초장부터 ‘훼방꾼’이란 이미지를 심어주기 충분하다는 지적이다.

ⓒReuters=Newsis오바마 대통령은 말도 많고 탈도 많던 관타나모 수용소(위)를 1년 안에 폐쇄하라고 명령했다.
실제로 사상 최악의 경제난을 놓고 초당적 협조가 필요한 상황에서 공화당이 이처럼 비협조적 태도를 보이는 데 대해 여론도 싸늘하다. 워싱턴 포스트의 정치 평론가인 E. J. 디온은 “중대한 난국을 극복하기 위한 초당적 협력 공약에도 불구하고 당파 정치는 중단되지 않았다. 공화당은 오바마 대통령에 대해 이미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디온은 특히 앞서 언급한 우파 논객인 마크 티센이나 제브 헨설링 공화당 하원의원이 주장하는 논리는 오바마 행정부 출범 후 공화당 내부의 기류를 대변한다고 지적하고 “이런 행위는 오바마 행정부가 추구하는 초당적 정신과는 맞지 않는 것이다”라며 비판했다.

이처럼 공화당의 저항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오바마 대통령은 대선 유세 때와 취임 초 약속한 대로 공화당과 협조해 일을 처리하려 한다. CNN의 정치 평론가인 빌 시나이더는 “오바마가 마음만 먹으면 민주당의 힘만으로도 경기부양안을 통과시킬 수도 있지만 나라를 다시 분열시키는 또 다른 대통령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절묘한 균형의 정치를 펼치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경제 촉진안을 포함한 중대 국정 현안에 대해 공화당이 계속 발목 잡기 식으로 나올 경우 오바마의 ‘균형 정치’는 조만간 깨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기자명 워싱턴·권웅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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