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학교에서 문학을 읽고 가르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몰랐던 내가 1991년 가을에 〈녹색평론〉을 창간하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이 나라는 군사독재의 질곡으로부터 벗어나고 있었고, 그런 점에서 민주화의 일차적 과제는 성취된 셈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때마침 구 공산권의 몰락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직면하여 한국의 지식인 사회는 큰 충격과 혼란을 경험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야말로 본격적인 토론을 시작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녹색평론〉 창간을 결심했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했던 것은 단순히 환경보호 문제가 아니었다. 물론 그 무렵 이미 한국 사회에는 고도 경제성장에 의해 숱한 환경 문제가 노정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다운 삶의 지속을 위해서 마냥 방치해둘 수 없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더욱 심각한 것은 경제 발전을 통해서 이 사회가 궁극적으로 가고자 하는 방향이 과연 무엇인지, 참으로 알 수 없는 상황으로 점점 깊이 빠져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고민 속에 지내고 있던 내게 1991년 봄에 일어난 한 사건은 참으로 충격적이었다. 그것은 전국 각지에서 농민들이 다 자란 보리밭을 태워버린 사건이었다.

꽤 오래전 일이지만, 나는 지금도 그때 받았던 충격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이 사회에서 그동안 환경이 걷잡을 수 없이 망가지고, 공동체가 파괴되고, 인간성이 왜곡되는 희생을 치르면서도 경제성장의 논리가 정당화되어온 것은 ‘가난’을 벗어나려는 뿌리 깊은 욕망 때문이었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수많은 한국인에게 ‘가난’이란 무엇보다도 ‘보릿고개’로 표상되어왔다. 묵은 곡식이 떨어지고 보리는 아직 여물기 직전 4~5월 동안은 실제로 굶주리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그 시련 속에서 사람들은 ‘보릿고개’만 넘으면 된다는 이야기로써 굶주림의 고통을 서로 달랬던 것이다. 그렇게 ‘보리’는 한국인들에게 각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경제발전에 성공하여 ‘선진국’을 지향한다는 사회에서 그 보리를 불태우지 않으면 안 되는 기막힌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예전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이런 사태의 배후에는, 말할 것도 없이 경제 논리가 있었다. 농민들에게는 수확해봐야 ‘돈이 되지 않는’ 보리를 아예 태워버리는 게 오히려 더 이상 경제적 손실을 막는 상책이었다. 이 세상에 어떤 농민이 자신의 작물을 이렇게 망가뜨리고 싶겠는가. 그만큼 농민의 처지는 벼랑 끝으로 몰려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행동이 찬미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우리는 농심이 천심(天心)임을 당연지사로 여기는 문화 속에서 살아왔다. 그러나 이른바 경제 발전 과정에서 농사는 어느새 이 사회에서 가장 천대받는 일이 되고, 농심은 망가져버린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슈퍼마켓에서 휴지를 사듯 쌀을 사고, 휴지를 소비하듯이 쌀을 소비한다. 우리는 오로지 돈만 있으면 되지, 땅이 훼손되든 공동체가 무너지든 인간성이 황폐화되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태도로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도달한 지점은 크나큰 불경(不敬)의 삶인 것이다.

공생의 삶에 완벽하게 무지한 권력자들

불경의 삶이란 ‘거룩한 것’에 대한 감각을 상실한 삶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존재의 근원으로부터 절연된 채, 어떠한 확고히 뿌리내릴 지반도 없이 떠도는 난민이 되어버렸다. 실제로 지금 이 나라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해괴한 일들은 이곳에 뿌리박고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 가운데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 나라를 이끌어가고 있는 권력자들이 드러내는 공생의 삶의 논리에 대한 거의 완벽한 무지와 무관심이다. 그들에게 이 나라의 모든 땅은 투기의 대상 외에 아무것도 아니며, 풀뿌리 민중은 선거 때나 적당히 비위를 맞추면 되는 단순한 소모품일 뿐이다.

그렇지 않다면, 재개발 논리를 내세워 서민의 생활 터전을 빼앗는 만행이 이렇게 오래 계속될 리 없었다. 그것도 모자라 이제 사람들이 불에 타죽는 끔찍한 사태까지 오고 말았다. 그런데 이 사태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을 져야 할 국가권력은 사건이 발생한 지 열흘이 지나도록 ‘사과’ 한마디 하지 않고 있다. 보리도 아니고, 사람이 불에 타죽는 끔찍한 일이 일어났는데도, 그들은 ‘경제 살리기’가 중요하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과연 그들이 살리겠다는 경제는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경제인가?

기자명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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