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 Photo‘휴대전화 광팬’인 오바마 미국 대통령(위)이 블랙베리 폰으로 전화를 하고 있다.
취임하기 전부터 미국 대통령 오바마가 블랙베리 폰(휴대전화의 모양이 산딸기를 닮았다 하여 붙은 이름)에 거의 목을 매다시피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정도로 따지면, 웹서핑으로 밤을 꼬박 새웠던 우리의 노무현 ‘올빼미 대통령’만큼이나 오바마 또한 휴대전화 광팬이라 한다. 요새 나오는 스마트폰 기능을 보면  그럴 만해 보인다. 문자 메시지 보내고 메일 보내고 일정 기록하고 인터넷 검색하는 정도는 기본이다. 바쁜 대선 일정에 쫓기는 그에게 이런 블랙베리의 기능은 어지간한 비서 이상의 능력을 보여줬을 것이다.

그러면서 취임 이후에도 오바마가 애지중지하는 휴대전화를 계속 가질 수 있는지가 세간의 화제가 됐다. 통신 보안이 가장 취약한 곳이 무선 영역이라니, 그의 블랙베리는 도무지 백악관 입성이 불가한 항목처럼 보였다. 전임 부시조차 낙향해 그동안 보안 문제로 백악관에서 전혀 못했던, 전자메일이나 친구들에게 보내면서 쉬고 싶다고 하는 것을 보면, 무선이든 유선이든 마음먹고 벌이는 도청과 감청에는 당해낼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결론은 오바마가 워낙 이 휴대전화를 갈망하는지라, 도·감청으로부터 상당히 강한 특수 스마트폰을 제작해 휴대하는 것으로 낙찰을 보았다. 하지만 이도 마음먹고 덤비는 도·감청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니, 대국 대통령의 통신이라 하여 철옹성인 것만은 아닌 셈이다.  1년 6개월간 휴대전화 1만2000대 복제돼비슷한 시기에 한국에서는 배우 전지현의 소속사 싸이더스HQ가 조직적으로 벌인 휴대전화 불법 복제가 주요 기사로 떠올랐다. “내 스타일이야”를 속삭이며 삼성 애니콜 폰을 광고하던 그녀가, 바로 그 휴대전화의 복제로 그녀의 문자 메시지 등이 열람되고 있음이 밝혀진 것이다. 그녀의 휴대전화 복제 행위의 당사자에 싸이더스 대표가 개입되었는지 아닌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광범위하게 벌어지는 한국 사회의 정보 인권 불감증이 문제다. 지난해 10월 국감 기간에 방통위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08년 상반기까지 불법 복제된 휴대전화가 1만2000여 대에 이른다고 한다. 사태가 이 정도면, 소속사가 한 연예인의 휴대전화를 복제하는 것은 너무나 손쉬운 일일 수밖에 없다.        첩보전으로 따라갈 만한 나라가 없는 미국, 그것도 대통령 오바마의 블랙베리조차 외부 침입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아 골머리를 썩는 것이 오늘날 전세계의 통신 현주소다. 하나 오바마의 블랙베리와 한국 배우 전지현의 복제 전화 사건은 배경이 많이 다르다. 불안한 무선 통신의 현주소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동일하지만, 발생 지점과 사안이 별개다. 한국만큼 사회 영역에서 이토록 빨리 휴대전화가 사회 통제의 도구로 쓰이는 나라는 드물다.

2005년 유야무야 종결된 삼성SDI의 노동자 휴대전화 위치추적 의혹이 그 대표 사례다. 전세계 휴대전화 기기 매출 1, 2위를 다투는 그 기업에 의해, 그 회사에서 만든 휴대전화를 이용해 후진적 노동 통제가 공장 담벼락을 넘어서까지 가능한 것이 우리네 현실이다. 첨단 통신 기기인 휴대전화가 주는 편리성은, 일부 한국 사회의 질곡과 결합하면서 점점 나쁘게 변하고 있다. 휴대전화는 의사 소통의 기능에 더해, 정당하게 노조를 만들려는 노동자들의 모임을 위치 추적해 감시하거나 소속사 연예인의 사생활을 관리하는 등에 적극 악용되고 있다. 이는 오바마의 블랙베리나 대다수 선진 국가의 통신 현실과는 무척 다른 척박한 풍경이다.

기자명 이광석 (성공회대 외래교수·신문방송학과)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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