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백승기정부는 ‘14일’ 만에 의견수렴을 끝낸 녹생성장기본법을 2월 임시국회 때 통과시키려 한다.
오바마노믹스의 핵심으로 떠오르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코드그린〉에서 저자 토머스 프리드먼은 “그린 혁명의 수행에 관한 한, 진행이 따분하면 할수록 그 파급 효과는 더욱 혁명적이다”라고 설파했지만, 우리 사정은 다르다. 엠비노믹스의 핵심인 ‘저탄소 녹색성장’은 “전광석화 같은 속도전”으로 진행되고 있다.

1월28일 서울 여의도증권거래소 안팎에선 30분 간격으로 상반된 풍경이 펼쳐졌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국가 비전으로 천명한 녹색성장의 근거 법령이 될 ‘저탄소 녹색성장기본법’에 관한 견해 차였다. 먼저 공청회장 입구에선 시민사회 단체들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들은 “아직까지 저탄소 녹색성장이 무엇인지 사회적 합의가 무르익지 않은 상황인데도 정부는 보통 5∼9개월 이상 걸리는 입법 기간을 2개월 이내 초스피드로 진행하고 있다”라며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을 주장했다. 실제로 준비 단계인 기관(대통령 소속 녹색성장위원회)이 자신의 설립 근거가 되는 법안을 입법예고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또한 통상 20일인 입법예고 기간도 14일로 단축해 충분히 의견 수렴을 거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정부 측은 녹색성장위원회는 대통령훈령으로 법적 근거를 갖췄으며, 입법예고 기간은 법제처와 협의해 단축했다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녹색세탁법’이라는 외부의 싸늘한 시선 속에서도 공청회가 열린 증권거래소 국제회의장은 청중 300여 명으로 가득 찼다. 특히 산업계의 관심이 뜨거웠다. 이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내용은 두 가지다. 온실가스 배출 허용 총량을 제한하는 ‘총량규제 배출권 거래제’ 도입(43조)과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재화와 서비스에 대해 조세 부담을 강화하는 ‘탄소세 도입’ 근거 조항(27조)을 들어 산업 경쟁력을 위축시킨다고 반발했다. 하지만 이들의 불만을 ‘엄살’로 보는 시각도 있다. 법안 설명에 나선 이창수 녹색성장기획단 국장의 말처럼 “3분의 1이 채찍 규정이라면 3분의 2는 인센티브 규정”으로, 규제보다 지원이 더 많기 때문이다.

녹색성장기본법은 상위 기본법?

가령 이런 것이다. 일반 주식회사처럼 수익을 주주에게 배분하는 ‘녹색산업투자회사’의 설립(59조)이나 녹색금융 상품의 개발(26조)을 위해 정부가 지원하는 내용이 대표적이다. 이는 또 환경단체들이 반발하는 대목이다. ‘민간 주도’로 저탄소 녹색성장을 추진한다는 규정(3조)을 들어 “사회기반시설과 국책사업 등 공공성이 보장돼야 할 분야에 대한 자본과 시장의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것 아니냐”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물 산업을 적극 육성·지원한다는 규정(49조 3항)에 대해 “물 민영화를 반대하는 여론으로 입법 보류된 물산업지원법의 조항을 그대로 담고 있다”라는 지적도 같은 맥락이다. 또한 49조 2항의 ‘물길’ 조항에 대해서도 대운하의 전 단계로 의심받는 4대강 정비 사업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며 삭제 주장이 나오지만 정부 측은 ‘대운하’나 ‘4대강’이라는 명시적인 표현이 없지 않느냐며 무시하는 분위기다. 

부정이든 긍정이든 녹색성장기본법에 관한 관심이 이토록 높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앞서 추진되던 지속가능발전기본법, 에너지기본법이나 국토종합계획 등을 통합 조정한 상위법으로 사회 전체, 삶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칠 ‘파워풀’한 법안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기본법 중의 기본법’ ‘상위 기본법’이라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녹색교통체제 구축 조항(50조)이나 친환경 건축물의 확대 규정(51조)은 우리 일상에 지각 변동을 일으킬 수 있는 내용들이다.

하지만 법안은 허술하고 모호했다. 특히 녹색성장의 추진 주체와 운영 방식이 불분명하다. 법적으로 이 위원회는 심의기관이어서 구속력이 없다. 한 정부기관 전문가는 “국가의 책무를 규정하고 있지만 정확히 어느 정부 부처를 말하는 건지, 책무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불분명하다”라고 지적했다. 운영 방식도 모호하다. 녹색성장의 추진동력이 정부인지 시장인지도 불명확하다. 한 내부 실무자는 “사실 위원회는 자문·심의·집행의 성격을 모두 띠고 있으며, 추진 과정에서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라고 말해 자칫 초법적 기구가 될 수 있음을 암시했다. 부처 간 조율도 끝나지 않았다. 교육과학기술부와 농림수산식품부는 왜 당연직 위원에서 자기들을 배제하느냐며 반발한다.

그럼에도 정부는 속도전에 열을 올린다. 수장들의 각오는 하늘을 찌른다. 이날 공청회에 참석한 김형국 민간위원장(전 지속가능발전위원장·서울대 환경대학원 명예교수)은 “시행착오의 비용을 물지도 모르지만 고강도 대응이 불가피하다”라고 말했다. 며칠 앞서 한승수 국무총리는 “모든 국민이 정부 정책을 신뢰하고 저력을 모으면 녹색성장의 기적을 이룰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명박식 녹색성장이 ‘녹색혁명’으로 이어질지 ‘녹색저항’을 부르게 될지, 시간과의 싸움이 시작됐다.

기자명 박형숙 기자 다른기사 보기 phs@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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