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안희태지난 1월19일 ‘X파일’ 사건 관련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법원에 출두하는 노회찬 전 의원(오른쪽).
‘지못미’라는 조어가 있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를 줄인 말이다. 2008년 18대 총선 이후 ‘지못미 열풍’이 일었다. 낙선한 스타 정치인의 홈페이지에는 이를 아쉬워하는 댓글이 잇따랐다. 노회찬 진보신당 상임대표도 그중 한 사람이다. 노회찬 후보(40.05% 득표)는 서울 노원병에 출마해 홍정욱 한나라당 후보(43.10% 득표)에게 석패했다. 

‘2008년 지못미 정치인’ 노회찬 대표가 2009년 들어 또다시 시련을 맞았다. 17대 의원 시절인 2005년 8월 ‘삼성 X파일’에 등장하는 이른바 ‘떡값 검사’ 7명의 실명을 공개한 사건 때문이다. 이름이 거론된 안강민 변호사(전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장)가 민사소송과 형사소송을, 김진환 변호사(전 서울지검장)가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검찰이 ‘명예훼손 및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 위반 혐의로 노회찬 대표를 기소했고 지난 1월19일 ‘징역 1년, 자격정지 1년’을 구형했다.

2월9일 1심 선고를 앞둔 상황. 진보신당이 긴장하는 기색이다. 바로 ‘통비법’ 조항 때문이다. 통비법 16조는 도청된 대화 내용을 공개할 경우 ‘10년 이하 징역과 5년 이하 자격정지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벌금형 조항이 없다. 만약 1심 판결에서 집행유예 이상이 나온다면 공직선거법에 따라 집행유예 기간이 끝나고 나서 5년 동안 피선거권을 잃는다(선고유예의 경우, 피선거권은 유지된다). 진보신당의 차기 서울시장 후보로 유력한 노회찬 대표는 지난해 ‘2009년 3월에 서울시장 출마 여부를 밝힐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진보신당도 2010년 지방선거에서 승부수를 띄워야 하는데 이 재판이 뜻하지 않은 암초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X파일 재판 대책위’를 구성해 전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X파일 재판 대책위원장을 맡은 이덕우 진보신당 공동대표(변호사)는 “국회의원으로서 공익을 위해 ‘불법 로비’에 대해 알렸던 것이 피선거권을 박탈할 정도로 중대한 범죄인가? 도둑 잡으라고 소리쳤더니 소리친 사람만 고성방가 혐의로 잡아넣는 꼴이다”라고 말했다.

X파일 관련 피고는 이상호와 노회찬뿐

한 법조인은 이렇게 정리했다. “도청 테이프에서 ‘불법 로비’에 대해 의논한 당사자들(홍석현 중앙일보 회장과 이학수 전 삼성 부회장)의 ‘사생활’을 중요시할 것인가? 공익을 위해 이를 공개한 것을 국회의원으로서 직무에 충실했다고 볼 것인가? 이것이 핵심이다.” 노회찬 대표는 1월19일 법정 진술에서 “이 재판은 저 한 사람의 행위에 대한 판결을 넘어서서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이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올바른 길인지 전범을 만들어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조국 서울대 교수(법학)는 지난 1월18일자 한겨레신문 기고에서 “모든 법 논리를 떠나 불법 선거를 도모한 삼성 쪽 인사, 불법 도청을 행한 안기부 직원 등은 형사 처벌에서 완벽히 자유로운데 ‘X파일’을 보도한 기자와 이를 공개한 국회의원은 피고인석에 서야 한다는 것은 법 허무주의를 조장하는 역설이 아닐 수 없다”라고 말했다. 여러모로 정치·사회적 의미를 띠는 2월9일 재판 결과가 주목된다.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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