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안희태파면 및 해임 징계를 받았다가 동료의 제작 거부로 징계가 낮춰진 김현석 기자·양승동 PD·성재호 기자(왼쪽부터).
지난해 12월28일 자정 직전, KBS 본관 근처 호프집에서 KBS 기자 6~7명 술을 마시고 있었다. KBS 기자협회와 PD협회가 선언한 ‘무기한 제작 거부’가 이날 자정부터 시작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이들은 보도국 야근 기자들이 제작 거부에 동참하기 위해 자정에 맞춰 퇴근하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야근 기자들을 데리러 가야 할지, 기다려야 할지 의견이 분분했다. 곧 의견이 정리되었다. ‘동료들을 믿자’는 의견이 다수였다. 기자들은 KBS 차량 출입구에서 동료들을 기다리기로 했다. 차량 출입구에 서서 기다리던 기자들은 시간이 가까워오자 신관 계단 아래로, 다시 계단 위로, 결국 개폐기 앞까지 진출했다. 조바심이 난 듯 보였다.

밤 12시7분, 야근 기자 10여 명이 무리를 지어 내려왔다. 협회가 내린 지침대로 자정부터 ‘무기한 제작 거부’에 동참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기다리던 기자들은 동료들에게 음료를 건네며 응원했다. 이명박 정부의 KBS 장악에 맞서다 파면(양승동 PD, 김현석 기자) 해임(성재호 기자) 당한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 간부들에게 내린 징계를 철회하라는 ‘무기한 제작 거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한나절도 지나지 않아 승부가 났다. ‘무기한 제작 거부’ 돌입 10시간 만에 사측은 징계자들의 재심을 위한 인사위원회를 열었다. 인사위원회는 징계자들이 서면 제출한 의견서를 심사하고 다섯 시간 후인 오후 3시, 기자협회와 PD협회 결의대회 시간에 맞춰 재심 결과를 사내게시판에 공지했다. 파면자를 정직 4개월로, 해임자를 정직 1개월로 경감한다는 것이었다.

제작 거부에 돌입한 지 15시간 만의 일이었다. 기자들(즉시)과 PD들(한 시간 후부터)은 다시 업무에 복귀했다. 이로써 ‘KBS 사원행동’ 간부 징계를 놓고 KBS 사측과 기자협회·PD협회가 벌인 전면전은 양 협회의 완승으로 끝났다. 지난 여름, 전임 정연주 사장의 해임부터 시작된 갈등에서 기자와 PD들은 처음으로 승리감을 맛보았다.

ⓒ시사IN 안희태KBS 기자와 PD들은 노동조합의 보호 없이 ‘무기한 제작거부’를 강행해 동료들의 징계를 경감시켰다.
무기한 제작 거부 15시간 만에 사측 굴복

지난여름, 정연주 사장의 해임과 이병순 사장 임명을 위한 이사회 개최를 기자와 PD들은 몸으로 막아섰다. ‘KBS 사원행동’은 이때 만들어진 기자-PD연합 단체였다. 그러나 기자 3명의 갈비뼈에 금이 가는 등 부상을 입으면서까지 막았지만 역부족이었다. 이사회는 공권력을 투입해 기자와 PD들을 제압했다. 

한 달 뒤 사측은 ‘인사 숙청’으로 기자와 PD들을 다시 압박했다. 사장 교체 과정에서 반대 집회를 주도하던 ‘KBS 사원행동’ 핵심 인물들을 지방 총국과 송수신소로 좌천했다. 사측은 탐사보도팀을 해체한 것에 이어 비판적인 시사 프로그램을 개편하는 등 KBS의 비판 기능을 약화시켰다. 그리고 반대파 무력화 작업의 ‘화룡점정’으로 ‘KBS 사원행동’의 대표였던 양승동 PD와 대변인이던 김현석 기자를 파면했다.   

지난 1월16일, 당사자들에게 파면·해임 통보가 전달되었다. 김현석 기자는 당시의 심정을 “전투 중 총에 맞은 것이 아니라 전투가 다 끝나고 집에 가서 씻고 잠들었는데 갑자기 불려나가 무릎 꿇고 앉아서 총 맞은 기분이었다”라고 회고했다. 당사자들은 분노했고, ‘KBS 사원행동’ 소속 회원들도 분노했으며, 회원이 아닌 KBS 기자와 PD들도 분노했다. 

기자협회와 PD협회는 각각 기자총회와 PD총회를 열고 제작 거부를 결의했다. 이른바 ‘중도 세력’으로 분류되던 관망파도 제작 거부 대열에 합류했다. 김현기 PD는 “1987년 이한열 열사 영안실 이후 집회 현장에서 마이크를 처음 잡아본다. 공영방송에 대한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는 함께 갈 수 없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사내 분위기가 격앙되자 이명박 정부의 KBS 장악 저지에 미온적이던 KBS 노조도 나섰다. 1월22~23일 ‘1박2일 제작 거부’를 노조 지침으로 내렸다. 그러자 다른 직군의 사원들도 동참했다. 한석준 아나운서는 “나는 수구보수적인 사람이다. 그런 나마저 이렇게 나와 있다는 것은 회사 측이 잘못하고 있다는 증거다”라고 말했다.

“아주 작은 승리를 이뤘을 뿐이다”

‘1박2일 제작 거부’가 시작되었다. 노조원들은 사무실에 출근하는 대신 집회장에 모였다. 젊은 PD들로 구성된 노래패 ‘병순아일좀하자’가 나와서 투쟁가요에 맞춰 율동을 선보이며 집회장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김연주 기자는 “KBS 파업의 역사를 알기 때문에 이병순 사장이 우리를 쉽게 본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끝까지 갈 것이다. 이병순 기자가 리포트를 해야 하는 날이 올 때까지 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설 연휴가 끝날 무렵 상황은 반전되었다. 노조가 발을 뺀 것이다. 노조는 제작 거부를 철회하고 업무 복귀를 지시했다. 기자와 PD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한 PD는 “어려울 때 ‘힘이 되는 노조’가 아니라 ‘짐이 되는 노조’다. 회사와 싸우기 위해서 노조와 먼저 싸워야 한다는 사실이 서글프다”라고 말했다. 한 기자는 “KBS 노조는 노조가 아니라 회사의 한 부서 같다”라고 비난했다. 

기자협회와 PD협회는 협회 차원에서 제작 거부를 감행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수위를 한 단계 높여서 ‘무기한 제작 거부’를 시작했다. 노조의 보호도 없는 상황에서 사실상 불법 파업이나 마찬가지인, 이른바 ‘막장 투쟁’을 단행한 것이었다. 기자협회 비대위 부위원장인 임장원 기자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만 투쟁했다면 노예해방도 아동노동 근절도 여성참정권도 이뤄질 수 없었다. 역사는 법이 아니라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 만들어냈다”라고 말하며 동료들을 독려했다.

속전속결, 결과는 기자와 PD들의 승리였다. ‘징계 철회’는 아니지만 사측은 징계를 대폭 낮추었다. 정리 집회에서 김덕재 PD협회장은 “여기까지는 우리의 승리다. 분명한 우리의 승리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아주 작은 승리를 이뤘을 뿐이다. 이번 승리의 가장 큰 의미는 우리 자신에 대한 확신을 얻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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