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돌아온 일지매〉(〈돌지매〉·사진)의 연출을 맡은 황인뢰 감독은,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는 거절했지만 별 기대 없이 원작(고우영 선생의 〈일지매〉)을 읽던 중 마음이 바뀌었다고 한다. 원작을 충실하게 반영한 드라마가 만들어졌고, 시청률만 놓고 보면 꽤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얻었다. 하나 제작진이 야심 차게 시도한 ‘내레이션’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원작에서 저자가 능청스럽게 등장해 서사의 흐름을 유쾌하게 만들듯, 〈돌지매〉도 원작의 취지를 살려 ‘책녀’라는 인물을 등장시킨다. 2회가 끝난 현재, 이러한 시도에 대한 누리꾼의 반응은 대략 다음과 같다. “낯설다” “다큐멘터리 같다” “드라마의 몰입을 방해한다”…. 심도 깊게 조사해본 건 아니지만, 괜찮더라는 의견은 3할5푼 정도인 듯하다.

책을 편집하다 보면 종종 빠지는 고민 가운데 하나는 이런 거다. 독자에 대한 배려는 어디까지가 적정한가. 편집자는 어느 선까지 개입해야 하는가. 이와 관련해 들은 일화가 떠오른다. 한 출판사 대표가, ‘반상의 철녀’ 루이 9단의 자서전을 만들 때 일이다. 전문적인 바둑 용어가 도처에 난무하니만큼, ‘편집자 주’를 붙이긴 해야 할 것 같은데, 도대체 어느 선까지가 적정한지를 모르겠는 거다. 용어 문제만 해결되면 바둑을 모르는 독자도 흥미롭게 읽을 것이라는 자신이 있었다. 장고 끝에 처음부터 끝까지 편집자 주를 붙이기로 결정했다. 일상에서 쓰는 말까지 전부. ‘패착-패배의 결정적 요인이 된 한 수’, ‘말-공격과 방어를 행하는 바둑돌’ 하는 식으로 말이다. 결과는 참담했다. 무엇보다 이 책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기울일 법한 타깃 독자들이 외면했다. 사사건건 붙은 편집자 주를 읽다가 자신을 바보 취급하는 게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들어 불쾌했다고 토로하는 독자도 있었다.

나는 〈돌지매〉의, 내레이션을 집필하는 작가를 따로 둔다는 시도(‘결정적 장면’이라는 코너로 한때 장안을 떠들썩하게 했던 한동원씨가 그 주인공이다)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뭐든 좋으니 내키는 대로 맘껏 해봐” 하는 대범한 내레이션을 듣다가 감탄하기까지 했다. 거기엔 일반적인 사극이나 텔레비전 소설에서 볼 수 없었던 가슴 설레는 요소가 있었다. 다만 제아무리 재기발랄하더라도 해설자의 과도한 개입은 역시 곤란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렇게 얘기하는 나도 얼마 전 미스터리 소설을 편집하면서 독자가 이해하기 어려울 거라는 판단에 편집자 주를 잔뜩 붙였다가 ‘의욕과 과욕 사이에서 헤매고 있다’는 독자들의 불평을 듣고 말았다. 아마 그 책을 다시 만든다 하더라도 나의 태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으리라. 독자(혹은 시청자)에 대한 배려, 의욕과 과욕의 언저리에서 미묘한 균형을 잡는 일은 그토록 어려운 모양이다.

기자명 김홍민 (출판사 북스피어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