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식 1952년 대구 출생. 노르웨이 주재 한국대사관 공보관. 통일부 교류협력국장. 국민의 정부 청와대 통일비서관. 통일부 인도지원국장. 남북회담사무국 상근 회담 대표. 14대 통일부 차관. 한림대 객원교수. 현대아산 사장.
지난해 7월11일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으로 얼어붙은 남북 관계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얼음장 밑으로 물이 흐르듯 물 밑에서 얼어붙은 관계를 녹이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통일부 차관을 지낸 조건식 현대아산 사장도 남북을 오가며 현장에서 뛰고 있다. 그는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 이후 위기에 빠진 현대아산의 선장이 됐다. 통일부 관료와 대학교수를 거쳐 기업가로 ‘현장’에 돌아온 그를 1월15일 집무실에서 만났다. 

금강산 피격 사건의 현장 조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남북 관계를 풀 수 없다는 것이 우리 정부 태도다.기업 처지에서가 아니라 남북 관계를 풀기 위해서라도 금강산 관광은 무조건 재개되어야 한다. 관광 재개가 남북 관계의 물꼬를 틀 수 있다. 정부 당국자에게도 대범하게 전향적 조처를 취하라고 직접 얘기했고, 탄원서도 냈다. 관계 회복을 전제로 내세운 현장 조사도 이제는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나도 사건 현장에 가봤는데 태풍 등으로 현장 지형이 많이 바뀌었다. 현장 조사의 실효성이 없다.

북한 쪽이 현장 조사를 받아들일 가능성은?그랬으면 좋겠지만 남과 북은 체제가 다르다. 북은 자존심이 많이 상해 있다. 북한 군부 처지에서 볼 때는 원칙대로 대응했다는 것이다. 사고 이후 사과와 진상 규명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데, 북측은 사고 다음 날인 7월12일 사업자인 명승지종합개발지도국에서 유감을 표시했다. 8월3일 금강산지구 군부대 대변인이 특별 담화에서 유감을 표명했다. 내가 취임한 후인 9월에 현장을 찾았는데, 그때도 금강산 군 책임자가 우리 사업소를 찾아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남쪽 관광객인 줄 알았다면 총격을 가했겠는가”라며 유감을 표명했다. 군 책임자라면 어느 정도 위치인가?금강산 지구 군 책임자로, 거론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보호할 필요가 있어 정확하게 누구라고 언급할 수 없지만, 북한 군부의 뜻을 전할 정도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중요한 건, 이번 사건은 현대아산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점이다. 관리를 잘못했다. 현대아산이 향후 책임을 지고 남북 양쪽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는 선에서 해결하는 게 맞다.  지난해 12월1일 개성 관광까지 중단하며 북쪽도 강공으로 나왔다. 북으로서는 군 초병이 원칙대로 대응했고, 유감도 표명했는데 사업자 간 협의 없이 남한 정부가 나서서 일방적으로 관광을 중단한 것을 매우 억울해한다. 처지를 바꿔보면 2년 전 금강산에서 작업 차량이 운전 실수로 북한군을 치어 숨지게 한 사건이 있었다. 그때도 우발적 사고라서 사업자 단위에서 처리했다는 것이 북한 쪽 견해다. 물론 일반 국민이 총격으로 사망한 사건이라 우리 정부도 엄중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뜻을 북에도 전했다. 하지만 남북 관계 전반을 살펴볼 때 우리 정부가 대범하고 적극적으로 풀어야 한다. 북한도 충분히 관계 회복에 나설 의향을 비치고 있다고 본다.

그동안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 민간 기업이 막후 구실을 해왔다. 혹시 복안은?사실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다. 여러 가지 채널을 이용해서 남과 북 양쪽의 의견을 상대방에게 전달하고 있다. 북한은 현대아산에 대한 애정이 깊다. 지금은 현대와 북쪽만 문제가 아니라, 남쪽 정부와 관계가 얽혀 있다. 일단 중단된 금강산이나 개성관광을 재개하는 것이 시급하다. 북쪽이 6·15 선언이나 10·4 선언을 존중하자고 말하는데, 내가 보더라도 두 선언은 존중되어 이행되어야 한다. 그런 큰 틀의 합의가 있다면 관계 개선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가능하다. 또 중요한 건 아무리 남북 관계가 꼬이더라도 인도적인 지원은 정치 논리와 무관하게 지속되고 강화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내가 통일부 인도지원국장을 지내봐서 아는데, 남북 관계는 기본적으로 우리 동포라는 견지에서 식량이나 비료나 의약품은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지원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직접 지원이 어려우면 국제기구를 활용해서라도 지원해줘야 한다. 남쪽 동포의 마음이 북쪽 사람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북한 주민의 마음을 살 수 있는 정성을 표시한다면 북쪽도 자연스럽게 화답할 것이다. 오마바 취임 이후 남북·북미 관계를 전망하면?남북 관계는 세 가지 관계가 잘 풀려야 한다.  북미·남북·한미 관계가 서로 얽혀 있다. 그런 점에서 2월과 3월은 전환점일 수 있다. 우선 미국에 오바마 정부가 새로 등장한다. 부시 정부와는 다른 대북 정책을 내놓으면 분위기를 바꿀 것이다. 우리 정부도 대통령 취임 1주년을 맞아 내각 진용을 새롭게 짜며 국정을 쇄신할 것이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오는 3월8일 최고인민대회 대의원대회가 예정되어 있다. 남과 북, 미국이 모두 새 출발하는 분위기다. 계기만 주어진다면 실타래처럼 꼬인 남북·북미 관계도 새로운 국면에서 일거에 풀릴 수 있다고 본다. 필요한 것은 상대방을 존중하는 배려와 대범함이다.  지난 1년간의 이명박 정부 대북 정책을 어떻게 보나?1996~1997년 통일부 교류협력국장을 지낼 때 개인적으로 당시 국회의원이던 이명박 대통령을 만난 적이 있다. 남북 경협 사업에 대해 검토해 실무국장 처지에서 의견도 냈다. 그때도 대통령은 남북 경협 사업에 관심이 컸다. 여건이 주어지기만 하면 뭔가 통 큰 사업을 펼치리라 본다. 러시아에서 북한을 경유해 우리나라로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한·북·러 가스 건설 사업은 초대형 남북 경제협력 사업이 될 것이다. 남북 관계가 어려우면서 현대아산도 경영난이 심할 텐데?솔직히 힘들다. 현대아산은 매출의 80~90%가 남북 경협 사업에서 나온다. 지난해부터 금강산 관광과 개성 관광이 중단됐다. 개성공단 건설도 위축되었다. 국내 건설 시장에 뛰어들어 수지를 맞추려고 애쓰는데 어렵다. 내부적으로 비상 경영 체제로 돌입했다. 지난해 7월 기준 1084명이던 임직원을 480명으로 줄였다. 이 가운데 120명씩 돌아가면서 월급을 70%만 받으며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강도 높은 자구 노력을 하고 있지만 힘에 부친다. 급한 대로 정부에 남북협력기금 대출을 요청해, 지난해 12월 70억원을 대출받았다. 하지만 이 돈도 우리 손에 들어온 건 없다. 정부가 현대아산이 아닌 영세 협력 업체를 지원하라는 조건을 달아 대출해줬다. 중요한 것은 본체다. 현대아산이 살아나야 한다. 상반기에 남북협력기금 대출을 다시 요청할 계획이다.
기자명 고제규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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