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윤무영

사람들은 왜 대형 마트를 이용할까. 상품이 다양해서? 주차가 편리해서? 쇼핑 환경이 쾌적해서?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중 가격이 싸다는 이유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대형 마트에 대한 정의부터가 그렇다. 유통산업발전법 제2조는 대형 마트를 “유통 구조의 합리화를 통해 소매점에서 거래되는 통상 시중 가격보다 현저하게 저렴한 가격에 상품을 판매하는 3000㎡ 이상인 점포”라고 규정하고 있다. 대량 구매·진열·저마진·고회전·셀프서비스, 최저 투자 등 생산·유통·판매 구조의 합리화를 통해 상품을 저가에 판매하는 것이 대형 마트의 특징이다.

그런데 과연 대형 마트의 상품이 진정 싸기는 한 것일까. 〈시사IN〉이 신년호부터 ‘기자 체험-마트 끊고 살아보기’를 연재한 뒤 많은 제보가 잇달았다. 따져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 이들 제보의 골자였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일부 동네 슈퍼 상인은 “미끼 상품 빼고 대형 마트 상품 중 싼 건 몇 가지 안 된다”라며 대형 마트에 대해 강한 불신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것이 사실일까? 제수 용품에서부터 명절 선물에 이르기까지, 물건 사야 할 일 많은 설을 앞두고 〈시사IN〉이 대형 마트 저가 신화의 진실을 파헤쳐보았다.

같은 공산품인데 대형 마트가 더 비싸다?

2006년부터 명절 물가를 조사해온 전국주부교실중앙회는 이번 설을 앞두고도 전국 16개 시·도 전통 시장과 대형 마트에서 가격 조사를 실시했다. 지난 1월6~7일 이틀간 벌인 조사 결과에 따르면, 4인 가족을 기준으로 올해 설 차례상을 차리는 데 드는 비용이 전통 시장은 평균 13만4553원, 대형 마트는 평균 18만7759원일 것으로 추산된다. 곧 전통 시장을 이용하면 대형 마트를 이용할 때보다 제수 비용을 5만원가량(28.3%) 절약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명절 물가 조사는 육류·과일·채소 등 설 제수 용품 22개 품목을 대상으로 진행한다. 명절 아닌 평상시 조사에서도 결과는 유사하게 나타난다. 지난해 8~12월 전국 7대 도시 19개 대형 마트·전통 시장에서 7개 분야(수산물류·육류·곡류·과일류·야채류·가공식품류·생활용품류) 36개 품목을 상대로 월별 가격 비교 조사를 한 중소기업청 산하 시장경영지원센터에 따르면, 대형 마트 상품 가격은 전통 시장에 비해 평균 19.2%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왼쪽 표 참조). 이 중에서도 특히 육류(△26.0%)와 채소류(△25.5%)가 비쌌다. 

이는 일반 소비자에게도 상식으로 통한다. 서울 양천구에 사는 교사 김 아무개씨(41)는 “재래시장에 가면 한 근에 7000~8000원 하는 돼지고기를 대형 마트에 가면 1만~1만2000원 주고 사야 한다. 고기나 채소는 확실히 대형 마트가 비싼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김씨는 전통 시장보다 대형 마트를 즐겨 이용한다. ‘대형 마트 물건이 더 믿을 만하다’고 여겨서다.

실제로 상품에 대한 불신은 서비스·주차 시설 등에 대한 불만과 더불어 전통 시장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주된 요소 중 하나로 작용한다. 앞서 조사에 따르면, 전통 시장의 원산지 비표시율은 대형 마트에 비해 월등하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곧 전체 36개 조사 대상 품목 중 원산지를 표시하지 않은 품목이 대형 마트는 2개 품목에 지나지 않는 반면 전통 시장은 25개 품목으로 나타난 것이다.
 
문제는 비공산품이 아닌 공산품 분야에서도 대형 마트 상품의 가격이 전통 시장보다 비싼 현상이 빚어진다는 사실이다(시장조사센터는 전통 시장 내 영업 중인 슈퍼마켓에서 이들 공산품 가격을 조사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지난 다섯 달간 가공식품류 8개 품목(밀가루·식용유·된장 등)의 월 평균 가격은 대형 마트가 2만8959원, 전통 시장이 2만4729원이었다. 대형 마트가 전통 시장보다 4230원(14.6%) 비쌌다. 생활용품류 4개 품목(샴푸·치약·세제·티슈) 평균 가격 또한 대형 마트(2만9688원)가 전통 시장(2만4905원)보다 4783원(16.1%)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에서도 특히 대형 마트가 비교적 비싼 품목은 세제(34.2%), 치약(12.2%), 식용유(11.9%), 된장(9.4%) 순이었다. 곧 전통 시장에서 평균 8517원에 구입할 수 있는 C사 ㅂ세제(3.2kg)는 대형 마트에서 1만2944원에 파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통 시장에서 각각 3817원과 6943원에 구입할 수 있는 C사 ㅎ된장(1kg)과 D사 ㅊ고추장(1kg)의 대형 마트 평균 가격 또한 4212원과 7153원으로, 대형 마트가 전통 시장보다 높았다. 전통 시장에서 1935원에 팔리는 L사 ㅍ치약(160g)의 대형 마트 판매가는 이보다 269원 비싼 2204원이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ㅍ치약을 만드는 L사는 “제조업체는 가격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는 하지만 일단 물건이 유통 업체 손에 넘어가면 가격 결정에 간여할 수 없다”라며, 들쭉날쭉한 가격은 순전히 유통 과정에서 정해진다고 말했다. 대형 마트든 전통 시장이든 주변에 새 점포가 들어서 경쟁이 과열되거나 하면 제살 깎아먹기를 감수하며 싼값에 물건을 팔기 때문에 점포별 가격 차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한 식품 제조업체 관계자는 “전통 시장이나 소규모 점포에 물건을 대주는 대리점 주인이 상품 가격이 오르기 전 물건을 대량으로 입도선매했을 가능성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대형 마트가 가격 인상분을 판매가에 바로 반영하는 것과 달리 전통 시장의 경우 한동안 이전 가격에 상품을 유통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시장조사센터 경영혁신지원실 강성한 팀장은, 전통 시장의 경우 대형 마트보다 상대적으로 마진율을 낮게 책정하는 까닭에 가격이 싸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초기 투입 비용 외에 인건비·건물 유지비 등으로 막대한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 대형 마트에 비해 전통 시장은 원가고정비가 덜 들어 상품 가격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형 마트는 시장조사센터의 조사 결과 자체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같은 3.2kg들이 세제라 해도 일반 매대(판매대)에 놓인 제품이냐, 기획 상품이냐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이런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일반 매대에 놓인 제품만으로 가격을 일괄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라고 롯데마트의 한 관계자는 말했다.

 

 

실제로 대형 마트에서 이런 일은 흔히 벌어진다. 설맞이 준비로 분주한 서울 은평구 이마트의 일반 판매대에 놓여 있는 ㅂ세제 3.2kg들이의 판매가는 1만5900원(100g당 497원). 그런데 바로 옆 기획 코너에 전시해놓은 ㅂ세제 4.3kg들이의 판매가는 1만2800원(100g당 297원)이었다. 동일한 상표에 용량이 더 큰 제품을 오히려 더 싼 가격에 파는 셈이었다. 이곳에는 평상시 2만1360원인 4.3kg들이 세제를 1만2800원에 초특가 할인 판매한다는 선전 문구도 붙어 있었다. 이럴 때 소비자들의 선택은 대부분 4.3kg짜리로 쏠리게 돼 있다. 한눈에 가격을 단순 비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형 마트에서 물건 값을 파악한다는 것이 늘 이렇게 단순한 일일까?

싸게 샀다고 좋아했더니 용량이 다르다?

“대형 마트와 동네 슈퍼는 공급 단계에서부터 들어오는 물건이 다르다”라고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소규모 점포를 운영하는 김 아무개씨는 주장했다. 용기나 용량 면에서 이들 물건에 차이가 난다는 것은 업자들 사이에서 이미 공공연히 알려진 비밀이라고 그는 말했다.

〈시사IN〉 취재 과정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호에 소개한 ㅍ치약 3개들이 세트. 동네 슈퍼에서 4600원에 팔리는 이 상품은 대형 마트에서 4380원에 팔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대형 마트 것이 더 싸겠거니’ 했는데, 뭔가 이상해 들여다보니 용기와 용량이 미세하게 달랐다. 동네 슈퍼 것은 160g, 대형 마트 것은 150g으로 용량당 가격을 따져보면 동네 슈퍼 것이 더 쌌다.

 

 

 

 

ⓒ시사IN 한향란낱개로 파는 초코송이는 41g, 묶어 파는 초코송이는 29g이었다(왼쪽). 칸쵸 또한 낱개와 묶음상품이 각각 50g, 45g으로 달랐다. 용량은 달라도 이들 과자의 겉포장과 디자인은 같았다.

그나마 이 경우는 용기라도 다르다. 여기서 나아가 용기는 그대로인데 용량만 변형하는 방법도 있다. 제과회사들이 흔히 쓰는 수법이다. 회사원 안 아무개씨(37)는 지난 주말 집 근처 대형 마트에서 ㅇ제과 ‘초코송이’ 3개짜리 묶음 세트를 발견하고 기쁜 마음으로 이를 샀다. 낱개 판매 시 희망 소비자 가격이 600원인 이 과자 3개짜리 묶음 상품 가격이 990원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800원 아꼈다고 좋아하며 집에 돌아온 안씨는 과자를 뜯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겉포장에는 분명 차이가 없는데 과자 용량이 각각 29g으로 표기돼 있었던 것이다. 낱개로 파는 초코송이 과자(41g)와는 12g이 차이 났다. 내용물을 헤아려보니 용량 차이가 더 확연하게 다가왔다. 낱개 상품에 들어 있는 초코송이는 18개, 묶음 상품에 들어 있는 초코송이는 평균 13개였다. 용량당 가격을 따졌을 때 묶음 상품과 낱개 상품 간에 큰 차이는 없었지만 안씨는 제과회사의 상술에 놀아난 듯해 기분이 상했다.

ㄹ제과 ‘칸쵸’ 또한 마찬가지. 낱개 상품과 묶음 상품의 크기·디자인이 모두 같은데 용량은 다르다. 낱개 판매하는 기존 칸쵸(희망 소비자가 700원) 용량이 50g, 2개씩 묶어 파는 칸쵸 용량이 45g이다.
이렇게 용기나 용량을 달리 제작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제조업체와 유통업체 간 주장이 엇갈린다. ㅎ식용유를 만드는 C사는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보장하고, 대형 마트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판매대가 넓은 대형 마트는 다양한 제품으로 구색을 맞추기 원하고, 소비자 또한 이를 원하기 때문에 이 회사만 해도 5~6가지 서로 다른 용량의 식용유를 납품한다는 것이다.

 

 

 

 

ⓒ시사IN 한향란가격이 엇비슷한 제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용량이 미세하게 다른 경우도 있다. 식용유 1.8ℓ와 1.7ℓ짜리(왼쪽), 치약 160g짜리와 150g짜리(오른쪽)가 대표적이다.

반면 한 대형 마트 관계자는 “제조업체들이 일정한 마진을 보장받기 위해 끊임없이 다양한 시도를 하는 듯하다”라고 말했다. 이를테면 과자의 경우 본래 100g이 표준 용량인데 대형 마트 쪽에는 95g짜리를 제시하는 등 제조업체가 동네·대형 마트에 서로 다른 용량의 제품을 납품하려 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또 다른 제조업체 홍보 담당자는, 대형 마트에서 끊임없이 행사 제품을 요구하는데 달리 방법이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행사 전단에 자사 제품이 실리느냐 아니냐에 따라 매출이 몇 배씩 달라지는 판에 대형 마트 측의 비위를 맞추면서 자기들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다양한 제품을 갖춰 이에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싼 게 비지떡, 성분도 다르다?

과자 가격을 취재하던 중 한 독자가 흥미로운 제보를 해왔다. 칸쵸의 경우 동네 슈퍼와 대형 마트에서 판매하는 것의 성분이 차이 난다는 것이었다. 확인해보니 일부 사실이었다. 곧 동네 슈퍼에서 파는 칸쵸(50g)와 달리 대형 마트에서 파는 칸쵸(45g)에는 달걀·고구마분말·베타카로틴·곡류가공품 등 재료가 빠져 있었던 것이다. 대신 대형 마트 제품 재료에는 물엿이 새로 추가돼 있었다.

이에 대해 ㄹ제과 담당 연구원은 “지난해 하반기 제작비 절감 차원에서 과자 성분을 일부 바꿨을 뿐 대형 마트와 동네 슈퍼용 제품 성분을 달리해 따로 만들지는 않는다”라고 해명했다. 그런데 대형 슈퍼에 비해 물건 회전율이 낮은 동네 슈퍼에는 옛 상품이 남아 있다 보니 오해가 빚어졌다는 것이다. 생활용품을 제조하는 L사 관계자는 “용기나 용량 면에서는 대형 마트와 동네 슈퍼용 제품을 달리할 수 있어도 성분을 달리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그러자면 생산 라인을 별도로 가동해야 하기 때문에 생산 비용이 오히려 증가한다는 논리다.

칸쵸를 둘러싼 오해는 소비자 모르게 과자의 성분이 바뀐 데 따라 발생한 해프닝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대형 마트에서 요즘 판매 비중을 점점 늘려가는 PB(자체 브랜드) 상품은 실제로 성분이 다른 경우도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8월 7개 주요 대형 마트에서 판매하는 PB 상품과 NB(제조업체 브랜드) 상품을 조사한 한국소비자원은, PB 상품이 NB 상품보다 평균 24% 저렴했지만 일부 PB 상품은 가격이 싼 대신 주요 성분 함량이 NB 상품보다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이를테면 농협목우촌이 제조한 ‘ㅎ불고기햄(1kg)’은 PB와 NB를 만든 제조업체가 동일한데도 주요 성분인 돼지고기는 PB 상품이 NB 상품에 비해 30% 이상 적게 함유된 것으로 나타났다(가격은 PB 상품이 NB 상품에 비해 11.1% 저렴했다).

인스턴트 커피 또한 마찬가지였다. J사에서 만든 ‘이마트 스타믹스 모카골드’, I사에서 만든 ‘홈플러스 좋은 상품 모카골드 커피믹스’, 롯데쇼핑의 ‘와이즐렉 모카골드’는 NB 제품보다 단위 가격이 6.3~30% 저렴하지만 커피 함량은 0.7~1.6% 적었다.

‘낚이는 소비자’ 대신 ‘똑똑한 소비자’ 돼야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대형 마트가 가격 경쟁력을 갖추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전통 시장 대 대형 마트 가격 조사를 대행해온 전국주부교실중앙회 최애연 국장은 “조사 품목을 확장하면 대형 마트가 전통 시장보다 싼 것으로 나올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단, 소비자들이 생활 속에서 가장 빈번하게 찾는 36개 품목을 상대로 한 중소기업청 조사에서는 전통 시장이 갈수록 가격 우위를 점하는 추세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대형 마트에 대해 분통을 터뜨리는 소비자가 점점 늘고 있다. 앞서 소개한 것 외에도 대형 마트가 소비자의 눈을 속이는 방식은 여러 가지다. 특정 품목에만 적용되는 할인 혜택을 과장해 소비자를 ‘낚는’ 대형 마트가 있는가 하면 대목을 맞아 은근슬쩍 물건 값을 올리는 곳도 있다. 서울 중구의 한 대형 마트는 지난해 12월30일 4380원에 팔던 ㅍ치약 3개들이 묶음 상품을 2주 뒤인 1월13일에는 6500원에 팔았다. 설 대목을 틈타 상품 가격을 무려 32.6%나 올려받은 것이다.

한국소비자원 박현주 책임연구원은 “소비자를 오인케 하는 대형 마트의 잘못된 행태는 소비자들이 나서 고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얄팍한 상술에 당하지 않으려면 결국 소비자가 똑똑해져야 한다는 뜻이다.

취재 지원/이환희·임병식 인턴기자

 

 

기자명 김은남·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ken@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