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안희태교육부의 로스쿨 정원 1500여 명 방침이 보고되자, 일 주일 동안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위는 10월24일 시민단체가 연석해 마련한 기자회견.
로스쿨 지지자 역할을 자임해왔던 시민단체가 뒤늦게 제도 비판에 나섰다. 로스쿨이 곧 개혁이라며 깃발을 올린 채, 합리적 논의보다는 제도 도입에만 급급해했던 것은 아닌지 자성할 대목이 있다.  

정원이 1500명으로 발표되자마자 그동안 ‘로스쿨 지지자’ 역할을 자임해왔던 참여연대 사법개혁센터 측에 견해를 물었다. ‘애프터서비스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꼬집자 사법개혁센터장 한상희(건국대 법학) 교수는 의외의 태도를 보였다. “책임론이 나와도 할 말이 없다. 더한 것도 자임해야 할 판이다.” 그만큼 충격과 허탈감이 컸다는 얘기이다.

로스쿨은 참여정부가 법조 개혁 로드맵 가운데 마지막까지 포기할 수 없었던 카드이다. 법조 개혁의 상징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스쿨 논의가 시작된 지 10년이 넘도록 도입 여부에 합의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청와대만 드라이브를 건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이때 마주치는 손뼉 노릇을 해준 것이 시민단체와 이른바 중위권 대학, 그리고 지방 대학들이다. 

시민단체 가운데 참여연대의 ‘로스쿨 푸싱’은 꽤 열성적이었다. 국민을 위한 법률 서비스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명분과, 부당하게 공고화된 사법 권력을 깰 기회라는 일반인의 정서가 맞아떨어지면서 로스쿨은 곧 법조 개혁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제대로 정착되기 위해서 반드시 짚어야 할 대목들을 언급하기는 했지만, 방점은 미비한 부분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는 데에 찍혀 있었다.  

물론 충정이 이해되는 대목이 있다. 결국 비판점만 얘기하다 보면, 기존 사법고시를 통해 법조 인력이 배출되는 공고한 구조를 바꿀 수 있는 계기를 찾기가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대 법대로 대변되는 법조 권력과 사법고시 제도의 부작용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시스템 자체를 바꾸자는 발상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는 없다. 로스쿨 반대자들의 주장 가운데에는 진지한 고민 끝에 우려를 표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기성 구조를 바꾸는 데 부담을 느껴 이리저리 핑계를 댄다는 혐의를 받기에 충분한 주장들이 혼재했기 때문이다. 

로스쿨 지지자들의 배신감은 ‘자업자득’

그러나 윤곽이 드러난 로스쿨 제도는, 로스쿨 도입이 곧 개혁이라고 믿으며 도입 논의에 앞장섰던 참여연대가 배신감을 느낄 만큼 비틀린 구석이 많다. 참여연대가, 총입학정원제라는 장치 자체가 로스쿨 제도의 취지에 걸맞지 않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정부 편을 들었던 것은, 정원 규모가 커지면 동일한 효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는 현실론 때문이었다. 그런데 1500명, 기껏해해야 2000명에서 묶는 것으로 결정이 나니 허탈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교육부 추산에 따르더라도 정원을 2000명으로 할 경우 국민이 받을 수 있는 법률 서비스의 수준은, 2021년이 되어야 OECD 평균에 도달한다(10월17일 국회 보고 자료). 그것도 2006년 평균치이니 15년은 뒤지는 셈이다. 지난 10월26일 천정배 의원은 교육부 통계의 허점을 꼬집으며 “로스쿨 정원을 3000명으로 늘려도 2023년이 되어야 2006년 OECD 평균치에 도달한다”라고 주장했다. 나라마다 법조인 체계가 달라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현행 로스쿨 제도와 정원 규모로는 현재 추진 중인 사법고시 선발 인원을 늘리면 되지 왜 굳이 로스쿨을 도입하느냐는 의문을 해소할 길이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지난해 말 위 센터는 로스쿨 도입에 미온적이거나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진 국회의원들에게 ‘로스쿨 지지자의 편지’라는 이름으로 10여 차례 설득 편지를 보냈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로스쿨 제도는 제도의 취지를 달성할 수 없는 형태’라며 명확하게 반대 견해를 밝혔던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의 답장에 대한 센터 측의 회신은, ‘설득과 압박’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민노당의 한 보좌관은 “요즘은 시민사회가 오히려 정책 현실화에 더 깊숙이 개입하고, 그러면서 올바른 제도를 고민하기보다는 제도 도입 자체에 더 비중을 두는 경우가 있다”라고 말했다.

로스쿨에 미온적인 인사로 교육위 꾸려

그 결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정작 교육부는 로스쿨 시행에서 막강한 권한을 가진 법학교육위원회를 꾸리면서 제도 도입에 미온적이거나 비판적이었던 인사들로 대거 위원단을 꾸렸다. 시민사회가 보기에, 로스쿨 제도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기 위한 고민을 깊게 해본 경험이 없는 이들이 다수 위원으로 위촉된 것이다.

 한 예로 사법개혁센터의 한상희 교수는, 지난해 말 학술진흥재단에서 로스쿨 인가 기준에 관한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다. 현재 각 대학에서 로스쿨을 준비할 때 참고로 삼는 기준집이다. 그러나 현재 인가 기준에 관해 흘러나오는 이야기는 영 딴판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사법고시 합격자 수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사법고시 합격자 수를 헤아린다면, 그 숫자로 서열이 매겨져 있는 기존 법대의 기득권이 유지될 공산이 크다. 한 교수는 “사시 합격자 수로 사실상 등급이 매겨지다시피 한 기존 법대의 서열과 상관없이 신규 투자와 능력 있는 교수 충원 등으로 재도약할 기회를 꿈꾸었던 많은 대학을 허탈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아직 시민사회가 애프터서비스를 해야 할 대목은 많아 보인다. 로스쿨 제도는 여러 가지 제도 개혁과 쌍을 이루어야 한다. 우선 변호사 자격 시험제도의 골격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법무부는 외부 전문가를 포함한 실무단을 꾸렸다. 하지만 아직 회의를 두 차례밖에 가지 않았을 정도로 지지부진하다. 교육부가 10월30일 발표할 로스쿨 인가 기준을 비롯, 실사와 인가 과정에도 밀착 감시가 필요하다.

따지고 보면 로스쿨 제도는 대학 길들이는 데 이골이 난 교육부와, 기득권을 내놓을 생각이 없는 법조 권력의 환상의 짬짜미가 가능한 넓디 넓은 마당이다.

기자명 노순동 기자 다른기사 보기 lazyso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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