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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경제’ 빙자해 ‘전시 행정’ 펴는가

경제난을 전쟁에 빗댄 뒤 청와대 지하 벙커로 들어간 이명박 대통령은 이곳에서 정부 각 부처에 ‘속도전’ 채찍질을 가하기 시작했다. 역대 정권의 청와대 지하 벙커 내력과 용처를 들여다보았다.

정희상 기자 minju518@sisain.co.kr 2009년 01월 12일 월요일 제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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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청와대 제공
1월8일 청와대 지하 벙커에서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주재한 이명박 대통령(가운데).
올해 경제 위기 상황을 전시(戰時)로 규정한 이명박 대통령의 신년 연설 이후 청와대의 전쟁 대응 체제 구축이 본격화했다. 청와대 경내에 마련된 지하 벙커에는 이른바 ‘워룸’(war room·전시작전상황실)이 설치됐다. 이 대통령은 1월8일 새해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지하 벙커에서 직접 주재하는 것으로 임무를 시작했다.

청와대 지하 벙커에서 지휘봉을 든 이 대통령의 모습은 ‘전시 총동원 체제’를 연상케 한다. 경제 위기를 전쟁으로 도식화해 국민적 합의와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고 원하는 대로 국가의 모든 재원을 ‘강제 징발·징집’하려는 의도 아니냐는 염려가 불거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경제난에 전시 동원 체제를 들이댄다면 대운하처럼 국민 절대다수가 반대하는 정책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지 말란 법 없다. 이래저래 청와대 지하 벙커 활용을 두고 개운찮은 뒷말이 많다.
 
청와대에 대통령 전용 지하 시설물을 판 때는 1970년대 중반 3공화국 시절이다. 당시 청와대는 북한의 남침 등 위기 상황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대피해 지휘본부로 이용한다는 명목으로 현재 비서동 옆에 지하 벙커를 만들었다.

쿠데타 대비 시설로 출발


대통령 전용 벙커 설치 배경에는 군부 쿠데타에 대한 두려움도 작용했다. 유신체제로 1인 철권 통치를 강화하던 박 대통령은 자기가 5·16 쿠데타로 집권한 경험 탓인지 늘 군사 쿠데타에 대응해 경계를 늦추지 못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의 불편한 심기까지 관리해야 한다는 소신을 지닌 차지철 경호실장은 그 대책으로 유사시 군부 내의 전복 부대에 대응할 경호 체계 구축에 심혈을 기울였다. 1970년대 말 수도경비사령관을 지낸 장태완 전 의원은 “차지철 경호실장은 학자들을 동원해 막대한 예산을 들여 동서고금의 반란 역사를 연구하게 한 뒤 반란 예방 및 긴급 대피 시설을 곳곳에 만들었다. 그러나 ‘반란은 심복으로부터 나온다’는 동서고금의 진리를 깨닫지 못해 허사가 되고 말았다”고 회고했다. 1979년 10·26사건을 두고 하는 말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전쟁 발발 시 국가 공식 대통령 전용 지하 지휘 시설은 따로 있었다.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전쟁 발발과 동시에 단계적으로 이동해 사용하는 지휘소는 청와대 외곽 모처에 있는 ‘ 벙커’, 그리고 육군본부 지하에 있는 ‘△△ 벙커’다. 하지만 차지철 경호실장은 군의 핵심 지휘부도 모르는 대통령 전용 지하 벙커 두 개를 따로 만들었다. 대표적인 곳이 청와대 경내와 여의도 광장이었다. 청와대 경내에는 지하에 약 132㎡ 규모의 대통령 전용 벙커를 파고 외곽 산악에도 비상 조처를 취했다. 쿠데타군이 공군과 손잡는다면 성남공항에서 출격한 공군기가 청와대 하늘까지 날아오는 데 고작 3분. 그래서 유사시 청와대 주변 산악에 순식간에 연막을 피워올려 쿠데타 세력에 가담한 조종사의 시야를 흐리게 만드는 동시에 박 대통령을 신속하게 대피시킬 시설을 구상한 것이다. 

여의도 광장 지하에 판 대통령 전용 벙커는 국군의날 행사와 관련됐다. 해마다 국군의날 사열에 빠짐없이 참석한 박 대통령에게 실화기를 갖춘 군부의 돌발 쿠데타 가능성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차지철 실장은 박 대통령의 이런 불안을 해소해주려고 여의도 광장 한쪽에 600㎡ 규모의 비밀 지하 벙커를 마련했다. 여의도 지하 벙커는 5공화국 때까지 청와대 경호실에서 비밀리에 관리했다.

여의도 광장의 지하 벙커는 1988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후 방치했다가 2005년 봄 여의도 환승역 시설 공사를 벌이던 인부들의 손에 의해 그 존재가 처음 공개됐다. 1990년대 이후부터는 청와대 경내의 대통령 전용 지하 대피 시설도 사실상 무용지물로 전락했다.

   
ⓒ연합뉴스
2005년 여의도에서 발견된 박정희 대통령 전용 지하 벙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기까지 매달 15일 벌이던 민방위훈련이나 매년 한 번씩 실시하는 을지훈련 기간에 청와대 비서실 직원의 훈련 대피 장소로나 사용되던 청와대 지하 벙커가 새롭게 주목받은 것은 2001년 9·11테러 사건 때였다. 청와대 경호실은 이 벙커를 적의 공습, 침투뿐 아니라 테러 단체의 화생방 공격에 대비한 방어 시설로 주목해 첨단 상황실을 설치하고자 했다. 하지만 당시 야당의 반대로 예산을 확보할 수 없어 구상에 그치고 만다.

MB가 지하 벙커 없애려다 살린 까닭


노무현 정부 들어 지하 비상상황실 설치를 다시 추진했다. 남북 정상회담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위기판단관으로 일하던 류희인 청와대 위기관리비서관이 주도해 종합상황실 설치와 위기관리 매뉴얼을 마련했다. 2003년 봄 예산 16억원을 들여 버려진 지하 벙커에 NSC 상황실을 설치하는 공사를 마무리했다. 130여㎡ 규모의 첨단 상황실에는 국내 23개 주요 정부기관이 실시간 전송해오는 각종 재난 현장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자상황판을 설치했다. 육해공군사령부·경찰청·산림청·소방본부·한전 등에서 들어오는 정보가 실시간으로 이곳에 연결됐다. 공중 상황을 클릭하면 한반도 주변 360km 반경에서 운항 중인 모든 항공기 정보가 뜬다. 원자력발전소의 실시간 가동 현황과 사고 유무, 지진파 상황, 산불 발생 현황, 국가 기간시설 화재·사고 현장 CCTV 화면도 실시간으로 전달된다.

이런 청와대 지하 벙커는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사라질 위기를 맞았다가 가까스로 살아나기도 했다. ‘과거 10년 청산’을 기치로 내건 이명박 정부 인수위 시절 NSC 사무처를 폐지하면서 산하 종합상황실마저 덩달아 해체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때마침 숭례문 화재 사건이 발생해 종합상황 판단 미숙으로 국보가 전소되는 것도 막지 못했다는 비판이 일자 지하 벙커의 위기관리 상황실 기능은 간신히 되살아났다. 하지만 상황실장은 1급 비서관에서 2급 행정관으로 격하됐다. 그러다 다시 금강산에서 박왕자씨 피살 사건이 발생하면서 비상 상황 대처 능력 부재에 대한 거센 비판에 직면해 상황실 직급도 비서관급으로 격상됐다.

현 정부 들어 오락가락하던 청와대의 지하 벙커 위상이 난데없이 ‘초특급’으로 격상한 것은 새해 들어 이 대통령이 이곳을 경제 위기 ‘전시작전상황실’로 만들겠다고 천명하면서부터다. 대통령으로서는 경제난을 전쟁에 빗대어 청와대 지하에 지휘부까지 설치해 총력 대응할 테니 국민이 믿고 따라달라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을 법하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의 반응은 뜨악하다. 누리꾼들도 ‘지하로 숨어서 웬 전쟁?’이라거나 ‘청와대가 가자 지구냐’라는 힐난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다. 경제정책이란 군사작전이 아니며, 가뜩이나 고통 받는 국민이 거리에 넘쳐나는데 그들 가까이 다가가 어루만져주긴커녕 전시 지하 벙커로 들어가는 대통령이 국민 소통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는 지적이다. 이처럼 전시(戰時) 행정이 전시(展示) 행정으로 비치는 한 국민의 힘을 한데 모으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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