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품자들도 거개가 영국·독일·미국 등지에서 외연을 넓히고 내면을 다진 작가이다. 그런데도 사진에 머무르던 시선이 자꾸 벽이나 천장으로 이동한다. 그 까닭은? 간단하다. 1925년에 지어진 르네상스풍 건축물이 아직까지 멋을 풍기고, 서울역사로 ‘군림’하던 79년 동안 구석구석에 스민 추억과 낭만 덕이다.
고풍스러운 샹들리에도 볼거리
긴 복도와 낡은 계단을 지나 만나는 ‘섹션2 타인을 느끼다’에서는 가족, 부부, 연인, 나와 또 다른 인간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작품을 만난다. 벽지가 너덜거리는 낡은 전시장은 인간들의 관계처럼 음울하고 불안하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 분위기가 외로운 표정의 등장인물들과 은은히 잘 어울렸다.
먼지 낀 유리창으로 햇볕이 드는 방에 들어서자, 커다란 7층 건물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1억원 가까이 한다는 김인숙씨(독일에서 활동)의 ‘토요일 밤’이다. 재미있는 것은 66개 방에 불이 켜 있고, 그 방방마다에서 온갖 기이하고 해괴한 일(살인, 난교, 폭력 등)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어떻게 이 장면을 잡아냈을까. “건물 사진을 찍은 다음, 각각의 방 사진을 연출해 찍고 그것을 합성했다”라고 큐레이터 손영실씨는 말했다. 김인숙씨는 “사회의 거울 구실을 하는 예술가로서, (여성을) 어둡고 불안하게 하는 장소에서의 관계와 강박을 추구했다”라고 말했다.
‘특별한 방’ 서너 개를 더 지나자 드넓은 홀이다. 한쪽 벽에는 노인들의 죽음을 담은 큰 사진들(최광호 작)이 서 있고, 건너편에는 수채화 같은 고상우씨의 ‘포옹’ ‘입맞춤’ 등이 걸려 있다. 아무리 봐도 낯설다. 고씨는 “처음 시도하는 방식이어서 그럴 것이다”라고 말했다. 고씨는 모델의 몸에 보디페인팅을 하고, 그것을 음화로 인화한다고 설명했다. 고풍스러운 샹들리에가 그 그림들을 더 요요하게 부각하고 있었다.
두 시간 남짓 옛 서울역사의 숨은 건축미를 접하고 보니, 이 유적만은 옛 중앙청처럼 가뭇없이 허물어서는 안 되는데 하는 걱정이 들었다. 아무러면 그런 일이 일어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