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백승기낡은 역사 안에 걸린 사진은 고풍스럽고 애잔한 분위기 덕에 더 빛을 발한다.
이상야릇한 전시회다. 옛 서울역사에서 열리고 있는 〈서울국제사진페스티벌〉을 두고 하는 말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벽에 걸린 사진보다 낡은 벽과 군데군데 전선이 드러난 천장에 자꾸 눈이 간다. 그렇다고 사진의 작품성이나 색감이 수준 낮다는 말이 아니다. 벽에 걸린 사진들은 한결같이 특별하고 아름답다.

출품자들도 거개가 영국·독일·미국 등지에서 외연을 넓히고 내면을 다진 작가이다. 그런데도 사진에 머무르던 시선이 자꾸 벽이나 천장으로 이동한다. 그 까닭은? 간단하다. 1925년에 지어진 르네상스풍 건축물이 아직까지 멋을 풍기고, 서울역사로 ‘군림’하던 79년 동안 구석구석에 스민 추억과 낭만 덕이다.

ⓒ시사IN 백승기낡은 벽지와 배관이 드러난 전시장에 걸린 사진도 마찬가지다.
〈서울국제사진페스티벌〉의 주제는 인간 풍경. 사진 100여 점은 다시 ‘안을 바라보다, 타인을 느끼다, 밖으로 나가다’라는 세 범주로 나뉘어 20여 개의 ‘방’에 걸려 있다. 1층 우람한 기둥 주변과 낡은 전시실에 걸린 ‘섹션1-안을 바라보다’의 사진들은 한 인간이 삶을 자각하는 방식과, 자신의 삶이 어떤 기억과 경험으로 채색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김치·돌나물 등으로 표현한 윤진영의 ‘데드마스크’와, 어릴 적 동경하던 ‘아름다운 금발의 여인’을 모사한 도로시 M. 윤의 ‘마릴린 먼로’ 등이 대표적이다. 

고풍스러운 샹들리에도 볼거리

긴 복도와 낡은 계단을 지나 만나는 ‘섹션2 타인을 느끼다’에서는 가족, 부부, 연인, 나와 또 다른 인간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작품을 만난다. 벽지가 너덜거리는 낡은 전시장은 인간들의 관계처럼 음울하고 불안하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 분위기가 외로운 표정의 등장인물들과 은은히 잘 어울렸다.

먼지 낀 유리창으로 햇볕이 드는 방에 들어서자, 커다란 7층 건물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1억원 가까이 한다는 김인숙씨(독일에서 활동)의 ‘토요일 밤’이다. 재미있는 것은 66개 방에 불이 켜 있고, 그 방방마다에서 온갖 기이하고 해괴한 일(살인, 난교, 폭력 등)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어떻게 이 장면을 잡아냈을까. “건물 사진을 찍은 다음, 각각의 방 사진을 연출해 찍고 그것을 합성했다”라고 큐레이터 손영실씨는 말했다. 김인숙씨는 “사회의 거울 구실을 하는 예술가로서, (여성을) 어둡고 불안하게 하는 장소에서의 관계와 강박을 추구했다”라고 말했다. 

‘특별한 방’ 서너 개를 더 지나자 드넓은 홀이다. 한쪽 벽에는 노인들의 죽음을 담은 큰 사진들(최광호 작)이 서 있고, 건너편에는 수채화 같은 고상우씨의  ‘포옹’ ‘입맞춤’ 등이 걸려 있다. 아무리 봐도 낯설다. 고씨는 “처음 시도하는 방식이어서 그럴 것이다”라고 말했다. 고씨는 모델의 몸에 보디페인팅을 하고, 그것을 음화로 인화한다고 설명했다. 고풍스러운 샹들리에가 그 그림들을 더 요요하게 부각하고 있었다.

〈섹션1〉에 걸린 윤진영의 작품과 도로시 M. 윤의 ‘마릴린 먼로’, 그리고 〈섹션2〉에 소개된 고상우의 ‘포옹
‘섹션3-밖으로 나가다’의 사진은 인간과 자연, 인간과 환경의 관계를 보여준다. 때문에 섹션 1, 2의 사진보다 더 외롭거나 쓸쓸하다. 이제는 쓸모없게 된 대리석 벽난로와 굳게 닫힌 낡은 문 옆에 걸린 사진들은 더 오래 발걸음을 붙잡았다. 소설같이 많은 이야기가 보이고, 알 수 없는 애잔함이 가슴을 울리는 그림들. 

두 시간 남짓 옛 서울역사의 숨은 건축미를 접하고 보니, 이 유적만은 옛 중앙청처럼 가뭇없이 허물어서는 안 되는데 하는 걱정이 들었다. 아무러면 그런 일이 일어날까.

〈섹션3〉에 전시된 이지마 가오루의 작품(왼쪽). 위는 이승준의 작품.
기자명 오윤현 기자 다른기사 보기 nom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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