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인

2008년 말, 대통령이 또다시 ‘경제논리’를 들고 나왔다. “방송통신은 정치논리가 아니라 실질적인 경제논리로 해나가야 한다”라는 것. 여기서 정치논리란 아마도 방송의 공공성(공익성) 논의일 것이고 경제논리란 예의 ‘글로벌 미디어 산업 육성’을 말할 것이다.

한국에서 글로벌 산업 육성이라는 논리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관해서는 이미 썼으므로(경향신문 2008년 12월31일자) 여기서는 방송의 미시경제학쯤에 해당하는 걸 한번 생각해보기로 하자.

우선 공중파는 말 그대로 ‘공공재’이다. 새뮤얼슨의 정의에 따르면 공공재란 비포화성과 비배제성이라는 특성을 지닌다. 이런 재화의 경우 이기적 인간은 모두 그런 서비스를 원하지 않는다고 대답할 것이므로 시장에 맡긴다면 그 서비스(예컨대 국방)가 전혀 공급되지 않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공중파가 바로 그렇다. 누가 KBS를 본다고 해서 그 프로그램이 닳는 것도 아니고(비포화성) 또 누군가를 보지 못하도록 막을 방법도 없다(비배제성).

금융과 언론은 ‘체제를 구성’하는 산업

그러나 광고가 개입하면 상황은 급반전한다. 광고란 수요자에게 요금을 매기는 대신 오히려 공급자에게 소비량(시청률)에 비례해 보상하는 것이다. 시청자는 돈을 추가로 내지 않은 채 방송사 간의 시청률 경쟁으로 더 재미있는(반드시 유익한 것은 아니겠지만) 프로그램을 보게 되니까 좋고, 방송사는 프로그램 제작비용을 얻으며, 기업은 더 효과적인 광고를 할 수 있으니 모두 이익을 보는 게임으로 보인다.

광고 비용은 다른 곳에서 발생한다. 이제 광고주는 대단한 권력을 지니게 된다. 이들은 무엇보다도 높은 시청률을 우선하므로 자극적인 프로그램을 생산하며, 동시에 수입을 전적으로 재벌이나 건설회사 광고에 의존하는 방송사가 그들의 비리를 폭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정부와 한나라당이 노리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예컨대 ‘삼성-중앙방송’이 생기고 그들의 프로그램이 대기업의 이익을 충실하게 옹호한다면 광고는 그쪽으로 몰릴 것이다. KBS1이나 MBC가 이런 광고 수주 경쟁에서 얼마나 의연할 수 있을까.

그런데 기업은 광고비를 물건 값에 반영해서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 있다. 결국 국민이 시청료를 더 낸 것과 다름없게 된다(어떤 프로그램을 본 시청자와 그 프로그램의 광고 상품을 사는 소비자가 동일하지는 않겠지만). 어차피 우리가 제작 비용을 대는 것이라면 기업에 편향된 선정적 프로그램만을 택할 이유는 전혀 없다.

또 하나 고려해야 할 것은 언론이라는 서비스의 속성이다. 금융이 경제의 핏줄이라면 언론은 민주주의의 핏줄이다. 그런 면에서 금융과 언론의 경제학적 성격은 체제재(system goods)이다. 체제를 구성하는 산업이 망하게 되면 공적자금, 즉 세금으로 구제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언론(금융) 공공성의 핵심이며 이런 체제재를 사적으로 운영하면 그 사회는 필연적으로 붕괴한다. 금융의 사적 운영을 한껏 부추긴 결과가 현재의 금융위기이며 언론의 사적 이익 추구는 결국 민주주의를 사멸시킨다. 

경제학이 제시하는 결론은 이런 정도일 것이다. 방송은 공공재이며, 더 넓게 언론은 민주주의라는 필수불가결한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는 체제재이다. 따라서 시장이 언론의 비용을 댈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광고는 언론을 시장에 맡기는 수단이지만 결국 그 비용은 소비자가 부담하며 체제재로서의 언론을 고사시킬 가능성이 높다. 어차피 소비자=시청자(구독자)=납세자가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우리가 직접 비용을 대는 것(시청료·구독료 일부)이 낫다.

그러나 이것이 옛 소련의 이스크라나 평양방송처럼 국영언론을 의미해서는 안 된다. 시민이 직접 운영하는 방송. 이것이 경제학적 해법이다. 물론 시민의 목소리는 자신이 속한 계급이나 지역, 그 외의 여러 이유로 다양할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방송법·신문법이 통과된다면 가난한 사람이나 지방의 목소리는 철저하게 배제될 것이다. 아니 자기가 지방에 사는 가난한 사람이라는 사실조차 잊게 될지도 모른다. ‘경제논리’를 대기업 CEO 수준에서 이해하면 경제도, 민주주의도 죽는다.

기자명 정태인 (경제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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