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조남진송기호 변호사는 “한국이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제외되어도 해당 일본 기업들은 특별일반 포괄허가증으로 한국에 수출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아베 정부는 8월2일 각의(국무회의)에서 한국을 이른바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닷새 뒤 8월7일에는 무역 관련 주무 부서인 일본 경제산업성(경산성)이 시행세칙을 공포했다. 지난 7월4일부터 수출규제를 시행 중인 반도체 핵심소재 3개 이외 품목엔 별도의 조치를 일단 취하지 않았다.

그사이 8월5일, 국제통상 전문가 송기호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전 국제통상위원장)를 만났다. 이번 사태를 조사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했다가 돌아온 직후였다. 송 변호사는 이틀 뒤(8월7일)에 발표될 일본 경산성 시행세칙의 윤곽을 내다보고 있었다. ‘화이트리스트 국가 제외’가 ‘수백 개 일본산 자재의 수입 중단’으로 여겨지던 시점에서 일종의 ‘예언’처럼 들렸다. 그의 예언은 적중했다.

우선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국가’ 제도부터 자세히 살펴보자.

일본 수출기업을 식당에 비유해보자. 식당은 어느 정도 위생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면 영업허가를 받는다. 영업허가증(포괄허가)을 받은 식당은 손님에게 음식을 내갈 때마다 일일이 보건 당국으로부터 허가(개별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다. 이와 비슷하게 일본에서는 수출기업이 최소한의 ‘전략물자 통제 능력(대량살상무기 생산에 사용될 수 있는 전략물자를 적성국가에 수출하지 않도록 기업 내에서 통제하는 장치)’만 갖추고 있다면 그 업체에 ‘일반 포괄허가’라는 것을 내준다.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 기업으로부터 수입한 전략물자를 적성국가에 다시 수출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되는 국가들을 골라 화이트리스트 국가 명단을 지정한다. 일반 포괄허가를 받은 일본 업체가 화이트리스트 국가의 기업에 물품을 판매할 때는 건별로 따로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고 (일정한 기간 포괄적으로 허가를 받아) 바로바로 수출할 수 있다.

지금까지 아시아에서는 한국이 유일하게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국가에 들어가 있었다. 여기 포함되지 못한 국가들은 일본산 전략물자를 수입할 때 건별로 개별허가를 받아야 했나.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일본 기업이 이른바 ‘특별일반 포괄허가’를 받아둔 상태라면 화이트리스트 국가가 아니어도 개별허가 없이 수출할 수 있다. 다시 비유를 들자면 (어느 정도의 위생상태 유지 능력만 있으면 되는) 식당이 아니라 식품공장이라면 ‘해썹(HACCP: 원재료 생산에서 최종 소비자가 섭취하는 최종 단계에 걸쳐 식품오염을 방지하는 위생관리 시스템)’이란 제도를 적용받는다. 보건 당국이 그 식품공장에 대해 정기적으로 깨끗한 제조환경을 갖췄는지 검사하고 교육과 사후관리도 시행하는 등 식당보다 엄격한 위생관리 기준을 요구한다. 이 ‘해썹’이 특별일반 포괄허가와 비슷하다. 일본 기업들 역시 당국이 요구하는 (일반 포괄허가보다 까다로운) 수출관리 기준을 충족시키면 특별일반 포괄허가를 받아 홍콩, 타이완, 싱가포르 등 화이트리스트 국가에 포함되지 않은 나라에도 개별허가 없이 수출할 수 있다. 또 하나 유의해야 할 점이 있는데, 이런 제도는 일본 자국의 기업을 위한 것이다. 기업들이 까다로운 절차 없이 좀 더 편하게 수출하라고 이런 제도를 마련해놓았다.

한국이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제외되어도, 곧바로 1100여 품목에 이른다는 일본산 물품의 수입선이 끊어지지는 않는다는 말인가?

한국 대기업들에 물자를 수출하는 대다수 일본 기업, 예컨대 미쓰이 물산(일본 최대의 종합상사)이나 도쿄일렉트론(반도체 제조장비 업체) 같은 업체는 대다수가 일반 포괄허가증과 특별일반 포괄허가증을 모두 갖고 있다. 한국이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제외돼도 해당 일본 업체들은 특별일반 포괄허가증으로 개별허가 없이 한국에 수출할 수 있다. 다만 한국 중소기업과 거래하는 일본의 작은 업체들은 특별일반 포괄허가증을 갖지 못했을 수 있다. 중소기업 수입선에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연합뉴스8월7일 ‘일본 수출규제 관련 지역별 설명회’에서 참석자들이 설명을 듣고 있다.

 

아베 정부는 이번 조치의 명분을 안보 문제에서 찾고 있다.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수입한 전략물자를 적성국가, 예를 들면 북한으로 유출시킨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에 근거가 있나?

이번 사태는 한국 대법원 판결(일제강점기 강제징용 관련 민사소송)의 집행을 좌절시키려고 아베 총리가 부당하게 개입한 불법 무역보복이다. (대법원 판결과 집행은) 한국으로서는 엄연한 주권 행사이며, 재판의 피고가 일본 국가도 아니다(피고는 신일철주금 등 일본 기업). 안보를 핑계로 한·일 무역관계를 무기화한 반인도적인 국제법 위반 행위이기도 하다. 실제로는 안보적 사유가 전무하다. 일본에서 만난 〈도쿄 신문〉 기자에 따르면, 이 신문은 이번 조치의 주무 부서인 일본 경산성에 ‘한국의 안보 저해 행위’에 대한 확인 취재를 끈질기게 시도했다. 경산성 측은 “자세히는 밝힐 수 없지만 부적절한 사안이 있었다”라고만 답변했다. 부적절한 사안이 구체적으로 뭐냐고 질문하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아베 정부는 이웃 나라의 국가경제를 위협하는 대단히 중대한 조치를 취해놓고 정작 그 사유는 설명하지 못하는, 심각한 국제법 위반 행위를 저질렀다.

국가 간 정치 분쟁을 통상 문제에 연계시키는 것은 그 자체로 세계무역기구(WTO) 등의 자유무역 규범에 정면 도전하는 행위 아닌가?

일본은 다른 나라들의 무역분쟁에 대해 일관되게 자유무역을 옹호해왔다. 일본 경산성이 지난 7월 중순에 낸 〈통상백서〉는, “국제 생산활동의 연쇄에 장애가 생기면 양국 간 문제에 그치지 않고 전체 국제 시스템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라며 무역제한 조치의 폐해를 극복하고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을 확대하자”라고 주문한다. 심지어 일본은 준전시 상황에서 벌어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무역분쟁(우크라이나에 친서방 정부가 들어서자, 러시아 측이 우크라이나산 식품 수입금지, 러시아 영토 경유 우크라이나 제품 수출길 차단 등의 조치를 감행한 사건)에 대해서도 WTO 분쟁해결기구에 다음과 같은 공식 의견을 제시했다. “경제 외적 이유로 무역을 제한할 수 없다.” “(안보 목적으로 그런 조치를 했다면) 조치의 정당성을 입증할 책임은 러시아에 있다.” 국가별 전략물자 통제시스템 평가에서 권위를 가진, 일본의 비영리기구 ‘안전보장무역정보센터’는 2016년 영문 보고서에서 한국의 전략물자 관리를 “리거러스(rigorous)”라고 평가했다. 대단히 엄격하고 까다롭다는 의미다.


아베 정부는 누가 봐도 무리한 짓을 강행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이번 사태는 경제·통상이 아니라 정치 문제라고 본다. 아베 총리와 주변 집단이 ‘자신들이 바라는, 현재와 전혀 다른 일본’의 상(像)을 일본 국민에게 의도적으로 보여주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최근 일본 측의 제스처를 봐라. 고노 다로 외무상은 주일 한국 대사를 불러 “한국이 무례하다”라고 말했다. 외교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니카이 도시히로 자민당 간사장은 한국 국회의원단의 면담을 일방적으로 취소시켰다. 실무협의회에서는 일본 실무자들이 한국에서 찾아온 무역정책관들을 문전박대했다. 과거 한·일 관계가 극도로 악화되었을 때도 일본이 한국을 이렇게 노골적으로 때리는 경우는 없었다. 아베 정부는 개헌을 통해 만들 수 있는 나라, 즉 ‘식민지 불법행위와 전후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 일본’ 그래서 ‘전쟁도 할 수 있는 일본’이 어떤 모습일지, 일본 국민에게 미리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8월 말 화이트리스트 국가 제외로 전환되면 한국 기업의 경제적 타격이 예상되는데?

지나친 불안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일단 이번 조치가 직접적으로 규제하는 대상은 한국 기업이 아니라 일본 기업이라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일본 기업들이 수출허가 관련 규제를 위반하면 굉장히 강한 처벌을 받는다. 책임자는 최고 징역 10년, 기업엔 3년간의 업무 정지가 가능하다. 벌금도 3억 엔까지 낸다. 이런 규제 때문에 일본 기업들에 실제로 피해가 생기면 반발이 일어날 것이다. 그 불만을 아베 정부가 감당할 수 있을까? 한국의 경우엔 중소기업들이 상당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중소기업에 물자를 납품하는 일본 측 공급업체들이 특별일반 포괄허가증이 없는 경우가 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

너무 낙관적이지 않나? 한국 대기업엔 큰 피해가 없단 말인가?

한국 대기업에 물자를 납품하는 일본 업체들은 대다수가 특별일반 포괄허가증을 갖고 있다. 이 업체들은 개별허가 없이 물자를 수출할 수 있다. 지금(8월5일)으로서는 8월7일 일본 경산성에서 발표하는 시행세칙을 봐야 우리 기업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피해를 입을지 알 수 있다.

시행세칙이라니?

반드시 ‘화이트리스트 국가는 포괄허가’ ‘화이트리스트 배제 국가는 개별허가’인 것은 아니다. 아베 정부는 지난 7월4일, 불화수소 등 반도체 핵심소재의 대(對)한국 수출을 건마다 개별허가를 얻어야 하도록 묶었다. 당시 한국이 화이트리스트 국가였는데도 그렇게 했다. 반대로 화이트리스트 제외 국가라고 해서 꼭 개별허가를 받아 수출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 업체가 특별일반 포괄허가증을 갖고 있으면 개별허가 없이 포괄적으로 수출할 수 있다. 그래서 일본 정부로서는 한국을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제외시킨 뒤 후속 절차를 밟아야 한다. 한국으로 수출되는 물품들에 대해 ‘이건 개별허가’ ‘이건 포괄허가’ 식으로 일일이 지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 결과인 시행세칙이 8월7일에 나온다.


정리하면, 8월2일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제외 결정’은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도화지이고, 그 도화지에 ‘어떤 물자는 개별허가, 다른 물자는 포괄허가’라는 식으로 그림을 그리는 날이 8월7일인가?

정확한 표현이다. 다른 표현을 사용하자면 ‘화이트리스트 국가 제외’는 일본 측의 폭격 범위가 달라졌다는 이야기인데, 실제로 어디를 폭격할지는 8월7일에 정해진다. 설사 특별일반 포괄허가증을 가진 일본 업체라 해도 그날의 시행세칙에서 해당 물자를 개별허가로 묶어버리면 수출 건마다 일일이 심사와 허가를 받아야 한다. 8월2일, 경산성이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한국 수출에 대해 일본 기업이 가진 특별일반 포괄허가를 그대로 유지한다’라고 되어 있다. 한국 대기업에 물자를 공급하는 일본의 주요 제조업체와 종합상사는 거의 100%가 특별일반 포괄허가증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시행세칙에서 특정 물자를 추가로 떼어내 개별허가로 묶지는 않겠다는 의미다(송 변호사의 예측대로 8월7일 일본 정부는 시행세칙을 공표하며 기존 반도체 핵심소재 3개 품목 외에 추가로 개별허가 품목을 지정하지 않았다).

ⓒReuter7월24일 세계무역기구(WTO) 회의장에서 대표단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한국 대표단 바로 옆에 일본 대표단이 앉아 있다.

 

세칙은 언제든 바꿀 수 있으니 화이트리스트 국가 제외가 두고두고 골치 아픈 화근이 될 듯하다. WTO 제소는 너무 시간이 걸리는 방법 아닌가?

그렇지 않다. WTO에 제소해야 하고, 이런 한국의 결의를 아베 정부에 각인시켜야 한다. 아베 정권의 도발에 대해 일본 시민사회의 반응 중엔 ‘아베 총리가 방사능 수산물 관련 WTO 판정에서 한국에 패배하더니 또 지려고 저러나 보다’라는 것이 있다. 일본 사회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WTO 패소에 예민하다. 일본 측이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규제 건에 대해 ‘뭔가 부적절한 사안이 있다’ 이외엔 입을 닫는 이유도 WTO 제소에 대비해 조심하는 측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떤 이들은 ‘WTO로 가봤자 2~3년 뒤에야 결과가 나온다’라며 제소할 필요까지 부정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한국이 WTO에 제소할 것이 명백한 만큼 아베 정부의 선택 폭이 좁아진다.

WTO 제소 자체가 의미 있다?

그렇다. 더욱이 일본의 WTO 규범 위반을 명확히 입증할 만한 자료를 최근 찾아냈다. 〈도쿄 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이야기했는데, 아베 정부가 중국과 타이완에 불화수소를 특별일반 포괄허가로 수출하고 있더라. 생물화학무기에 대한 ‘국제적 전략물자 수출통제’ 시스템인 AG(오스트레일리아 그룹)에 한국은 가입한 반면, 중국과 타이완은 비가입국인데도 말이다. 국제 전략물자 통제에 참여하지 않은 중국과 타이완에 불화수소를 포괄적으로 수출하면서, 훨씬 엄격하게 전략물자를 통제하는 한국엔 개별허가를 강요하고 심지어 한 달 이상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 이는 명백히 WTO 가트 협정 제10조 3항의 ‘수출 규정의 공평하고 합리적인 운용’ 규정을 정면으로 위반한 사안이다.

한국 정부와 기업, 시민사회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문제는 한국이 핵심 원천기술과 소재를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3년 참여정부의 신산업정책처럼 제대로 된 산업정책으로 이 부문의 대일 의존성이 더는 우리 경제를 교란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또 WTO 제소, 일본 시민사회 및 산업계와 소통 등을 통해 ‘아베 그룹’의 입지를 최대한 좁혀나가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폐기’ 여론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제외했으니 우리도 GSOMIA를 폐기해야 한다’는 쪽으로 가면 곤란하다. 아베 그룹의 모순은, 안보적 명분으로 정치 문제를 경제·통상 부문에 억지 연계시킨 데 있다. 이런 모순을 국제사회에 폭로해야 한다. 그렇다면 GSOMIA 역시 무역도발 문제에 연계하기보다는 군사협력이라는 차원에서 독립적으로 평가하고 방침을 정해나가는 쪽이 낫다. 한편 오래갈 싸움인 만큼 한·일 민간교류 역시 지금보다 훨씬 활성화해야 한다. 이렇게 한·일 관계를 관리하면서 핵심 기술 및 소재의 자립화를 촉진해나가면, 이번 사태는 결국 아베 그룹이 일본 내에서 약화되고 위축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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