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는 선진국에도 생산성 상승과 소비자들의 생활수준 향상이라는 이득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세계화는, 중국 노동자에게 일자리를 잃은 미국 노동자들의 분노로 대표되는 새로운 불만을 가져다주었다. 미국의 클린턴과 영국의 블레어 등 진보 정부들은 개방과 세계화를 촉진했지만, 감세와 규제완화와 함께 불평등이 심화되었고 세계화의 패자들을 끌어안는 데 실패했다. 결국 이들의 분노가 포퓰리즘의 득세로 이어졌고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는 이제 세계경제를 뒤흔들고 있다.
무엇보다 무역전쟁으로 전 세계의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려 세계경제에 충격을 줄 가능성이 존재한다. 트럼프의 전략가였던 스티브 배넌이 지적한 바와 같이 미국 무역전쟁의 본질은 글로벌 가치사슬을 중국에서 미국으로 옮겨 경제적·기술적 패권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관세 부과는 글로벌 기업들이 중국으로부터 다른 국가로 생산기지를 옮길 수 있기 때문에 세계무역에 큰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도 있다. 〈블룸버그〉도 지적하듯, 더욱 큰 위협은 직접적인 수출규제다. 트럼프가 안보 문제를 들어 중국의 화웨이와 ZTE에 대한 미국 기업들의 부품 수출을 규제하는 것이 대표적 조치다. 유럽연합(EU)도 군사 기술에 사용될 수도 있는 원자력 기술 등과 관련 있는 제품의 수출제한을 강화했다.
아베 정부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도 마찬가지다. 이는 역사 문제를 둘러싼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의 성격이 크지만, 일본 정부는 그 핑계로 안보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8월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한다면 한국의 제조업체들이 큰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 문제는 한국이 전 세계 D램의 70% 이상을 공급하는 현실에서 이러한 규제가 글로벌 공급망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일본의 수출규제 발표 후 2주 만에 D램 가격이 25%나 높아졌고, 전 세계 언론이 이 조치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자유롭고 공정하며 호혜적인 무역 추구해야
아베의 수출규제는 일본 자신에게도 상처를 입힐 수 있다. 자국의 소재기업과 산업이 피해를 볼 수 있고, 수출 둔화는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트럼프도 마찬가지다. 이미 미국의 무역전쟁으로 미국 소비자들과 기업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예일 대학의 골드버그 교수 등은 2018년 무역전쟁으로 미국 경제가 오히려 78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고 보고한다. 아직은 그 충격이 크지 않지만 무역전쟁이 확대되면 경제에 주는 악영향은 더욱 커질 것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보호무역에 반대하는 여론이 더 높으며, 크루그먼 같은 경제학자들은 트럼프의 무역전쟁이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뿌리는 다르지만, 트럼프의 보호주의 포퓰리즘과 한국을 때리는 아베의 극우 정치는 개방된 세계경제에 대한 위협이라는 점에서 매한가지다. 과연 패권을 추구하는 국수주의 정치가 세계화를 쓰러뜨릴 것인가. 분명한 것은 보호무역과 수출규제로 세계화가 비틀대는 것은 자본만이 아니라 세계시민 모두에게 나쁜 소식이라는 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포용적인 세계화를 위해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아베와 트럼프가 지난 4월 합의한 대로 자유롭고 공정하며 호혜적인 무역을 추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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