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에는 내 마음대로 고를 수 있는 책이 없다. 제주 애월도서관에서 읽게 된 〈기독교사상〉 2019년 6월호는 그런 한계가 낳은 선물이다. 이 잡지에 실린 여러 글 가운데 가장 먼저 눈길이 간 글은 김정호 뉴욕 플러싱제일교회 목사(전 연합감리교회 한인교회 총회장)가 기고한 ‘동성애에 관한 미국 연합감리교회의 자세와 향방’이다.

지난 2월3~26일 미국 세인트루이스 에서 열린 연합감리교회 특별총회에서는 ‘동성애자 목사 안수 허용’ 찬반을 놓고 찬성파와 반대파 사이의 표 대결이 있었다. 그 결과 동성애자 목사 안수 허용을 찬성하는 ‘하나의 교회 플랜(One Church Plan)’이 좌절되고, 동성애 관계에 있다고 공언한 동성애자 목사에 관한 처벌을 강화하는 ‘전통주의 플랜(Traditional Plan)’이 통과되었다. 전 세계에서 모인 총대 대표 832명 가운데 438명이 전통주의 플랜에, 384명이 하나의 교회 플랜에 표를 던진 것이다.

ⓒ이지영 그림


미국 연방대법원은 2015년 동성 결혼을 합법화했다. 미국의 주요 기성 교단들(미국 장로교회, 연합그리스도교회, 미국 침례교회, 미국 복음주의루터교회, 퀘이커, 성공회)은 동성 결혼을 인정하고 동성애자 목사 안수를 지지하는 입장으로 변화했다. 이 때문에 하나의 교회 플랜을 적극 지지했던 미국 내 지역 총회(로스앤젤레스가 있는 서부 지역과 보스턴이 있는 동부, 시카고가 있는 중부)에서는 이번 결의를 불의한 결정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거부와 항거의 입장을 밝혔다.

세계교회(global church)로서 연합감리교회는 전 세계적으로 1200만 신도를 거느리고 있다. 지역별로 보면 미국이 700만명으로 가장 많고, 아프리카에 400만명, 유럽과 유라시아 그리고 필리핀에 나머지가 분포해 있다. 이런 신도 구성은 연합감리교회 안에서 미국과 유럽 목회자들이 행사하는 영향력을 짐작하게 해준다. 실제로 연합감리교회의 최고 지도집단인 총감독회는 미국과 유럽 대표에게 장악되어 있으며, 이들의 절대다수가 하나의 교회 플랜을 지지했다. 앞서 나온 표 대결에서도 미국 총대 대표의 3분의 2가 전통주의 플랜을 반대했다. 하지만 아프리카와 유라시아, 그리고 필리핀 총대 대표의 절대다수가 전통주의 플랜에 찬성표를 던졌다. 중앙아시아와 러시아 지역을 책임지고 있는 고려인 4세 에드워드 헤이가 감독으로부터 그들이 하나의 교회 플랜에 반대하는 이유를 들어보자. “만약 교단이 동성애자 목사 안수를 결정했다면, 내가 책임을 맡은 카자흐스탄과 같은 중앙아시아 지역의 교회들과 러시아 교회들은 바로 그날로 교회 문을 닫아야만 한다.”

투표가 끝나고 미국 총대 대표들의 불평이 터져 나왔다. 첫째, 연합감리교회 장정(章程) 101조는 선교 목적에 필요하다면 그 지역의 문화적 상황이나 관습을 따를 수 있도록 허용한다. 그렇다면 미국 교회들에도 해외 교회와 같은 문화적 자율성이 부여되어야 공평하다. “동성애자 목사 안수의 문제는 오직 미국 교회에만 적용되는 사안인데, 이를 해외에 있는 교회가 결정하게 된 현실에 대해 미국 교회 진보 진영은 무척 당황하고 있다.” 둘째, 연합감리교회의 재정 99.3%(약 6억 달러)가 미국의 교회에서 나오고, 해외에서 걷히는 재정은 고작 0.7%(약 400만 달러)이다. 이 때문에 미국 연합감리교회 내부에서는 “자신들에게 절대적으로 중요한 사안을 해외 교회에 의해 거부당하는 현재의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런 이의 제기에 대해 아프리카 등지의 해외 교회는 “‘제국주의적 발상’이라며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동성애가 외국에서 생겨났다고?

진보적 가치가 다수결 투표에 의해 좌절되는 이런 사례는 다수결 투표는 물론 다수결 투표가 ‘기계장치의 신’처럼 강림하는 민주주의의 제도적 허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이것만이 아니다. 1980년대를 통과해온 한국의 민중·민족주의자들 가운데는 ‘제3세계’가 서구 제국주의자들에 비해 해방적·진보적이라고 믿는 경향이 짙다. 하지만 연합감리교단 안에서 일어난 저 사례는 1980년대적 환상이 더는 유효하지 않음을 말해준다. 실제로 유엔에 상정된 여러 인권 의제들은 아랍의 ‘오일 머니’에 매수된 제3세계의 반대표에 의해 좌초된 경우가 많다.

 

 

 

 

서구에서 여성이나 성소수자 인권을 확충하라는 권고를 들을 때마다 제3세계는 제국주의자들의 문화적 침략이라고 발끈해왔다. 답답한 마음에 애월도서관에서 책들을 검색하다가 최용성의 〈로컬 문화 윤리학:로컬 문화와 탈식민성 윤리학의 만남〉(인간사랑, 2017)을 발견했지만, 지은이의 기본 시각은 제3세계에 개입하려는 서구의 윤리학을 “제국주의와 분리된 순수한 윤리학”이 아니라고 기각하는 편이다. 그렇다면 인도의 수티(미망인 분신 풍습), 아프리카 대륙에서 자행되는 여성 할례, 파키스탄에서 흔히 벌어지는 명예살인, 사법절차 없이 극형을 당하는 아랍권의 동성애자에 대해 인류는 입을 다물어야 할까? 만약 열녀(烈女) 되기를 강제하는 조선 시대의 풍습이 아직까지도 한국에 남아 있다면 그 또한 문화 다원주의와 ‘로컬 문화 윤리학’으로 변호되어야 할 것이다.

서구가 제3세계에 보편적 인권을 수용하도록 설득하는 과정에서 문화 제국주의니 내정 간섭이니 하는 비난을 듣지 않기 위해 선행해야 할 조건은 분명히 있다. 먼저 서구는 서구 안에 남아 있는 인종적·문화적 차별을 계속해서 고쳐나가고, 서구의 허다한 정권이 경제적 이익 때문에 제3세계 독재자들을 비호해온 잘못된 관행과 절연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최용성도 지적했듯이, 제3세계가 여성과 동성애자에 대해 원래 전통보다 더 엄격한 근본주의로 회귀하게 된 것도 서구의 침략과 서구식 근대화에 대한 반발 때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슬람권의 경우 서구적인 시각에서 본 동양에 대한 편견인 ‘오리엔탈리즘’에 반발하는 과정에서 정당한 서구의 성과들까지 배척하는 ‘옥시덴탈리즘’의 위기를 동시에 겪고 있는 것이다.”

그 반발의 결과 이슬람권을
비롯한 제3세계는 자신의 전통을 대대적으로 부정하게 되었다.
예컨대 동성애는 인종과 종교를 달리하는 전 세계 어느 지역에서나 골고루 나타나며 전통 사회의 일부로 용인되었다. 하지만 경제적 세계화와 자유시장 이데올로기가 그들을 침탈하자 제3세계는 “동성애는 외국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속이면서, “서구 저항과 동성애 반대를 같은 선상”에 놓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서는 바네사 베어드의 〈성적 다양성, 두렵거나 혹은 모르거나〉(이후, 2007)를 보면 된다.

 

기자명 장정일 (소설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