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을 확인하는 일이 잦아졌다. 예년보다 학부모, 학생 연락 빈도가 대폭 늘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6학년들의 담임교사로 살아가려면 문자 한 줄, 전화 한 통도 놓칠 수 없었다. 사실 고학년 담임을 자원했다. 학교폭력 사안이라도 터지면 최소 일주일간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온갖 행정 절차와 상담 등으로 진을 빼야 한다.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그간 6학년 담임을 못 해봤기에 직접 경험하고 배우고 싶은 욕구가 더 컸다.

학기 초, 아이들 정보가 거의 없었다. NEIS(교육행정 정보시스템)에 탑재된 이름과 주소, 생년월일 정도로는 부족했다. 나는 아이들의 교우 관계도를 작성하고, 수시로 일대일 면담을 했다. 옆 반 선생님과 협의해 과거에 있었던 주요 사건(절교, 왕따 등)을 중심으로 정보를 모았다. 물리적 폭력보다 관계 폭력이 잦은 특성을 반영해 남학생이나 여학생 무리의 내력과 불화를 조사한 것이다.

내가 정보에 집착했던 이유는 학교폭력의 원인이 대부분 너와 나의 ‘다름’에 있기 때문이었다. 다름(차이)의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비만, 지저분함 같은 외모가 따돌림의 시작이 되는가 하면 부모의 직업이나 가정형편의 차이가 위계를 만들기도 했다. 갖가지 다름 중에서 어떤 다름이 차별, 나아가 폭력으로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담임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아이들의 성격과 특징, 환경적 요인을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이렇게 준비했는데도 불구하고 크고 작은 일들이 생겨났다. 그래도 어찌할 바를 몰라서 허둥지둥대는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

ⓒ박해성


학교폭력은 국민 관심도가 높아서 학부모들이 대처법을 어느 정도 숙지하고 있을 것 같지만, 막상 아이가 학교폭력을 당했다고 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우선 자녀의 이야기에 공감하면서 부모가 도와줄 테니 안심하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아이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전달하기보다는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편집할 것이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비난보다는 수용하고 지지하는 태도가 기본이다.

이후에는 담임교사와 상담하며 상황 파악에 들어간다. 처음에는 자녀에게 들었던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당사자들이 서로 얼마간 피해를 주고받으므로 피해자와 가해자를 명확하게 나누기 힘들기 때문이다. 기대한 내용과 차이가 있더라도 교사를 믿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것이 좋다. 가정과 학교에서 아이의 생활방식이 다를 수 있고, 교사는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 살아가는 자녀를 지켜본 전문가다.

학교를 ‘괴물’로 만드는 어른들

상황 파악 단계가 끝나면 대부분 서로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면서 문제가 해결된다. 간혹 흥분한 학부모가 훈계 명목으로 상대방 아이를 심하게 꾸중하거나 부모 간 싸움으로 비화하기도 한다. 심각한 수준의 폭력이라면 당연히 학교폭력위원회를 개최하고 추후 경찰에서 사건을 다루어야겠지만, 대개 교육과 중재로 해결될 수 있다.

아이들이 몸과 마음의 상처를 딛고,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을 여러 차례 지켜보았다.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학교 밖 사람들이 떠올리는 학교폭력은 잔학함으로 가득한 공포 영화에 가깝다. 극단적인 학교폭력 사례가 기사의 단골 소재가 되기 때문이다. 형사처벌을 받아야 할 가해자는 법의 심판대에 서는 게 맞다. 그러나 평범한 성장기의 아이들도 이런저런 악행을 저지르고 반성하며 자라난다. 잘 몰라서, 충동적으로, 재미있어서 친구를 괴롭히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 사실을 쉽게 잊는다.

나는 학교가 경찰서와 법정이 아닌 성장의 공간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싸운 다음 날 어깨동무하는 아이들보다, 지레 겁먹은 어른들이 학교를 괴물로 만드는 것은 아닌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기자명 이준수 (삼척시 도계초등학교 교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