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ㄷ 과장에게 맥주병으로 맞은 사건은 입사 3년 차에 일어났는데, 팀 회식에서 2차로 찾은 맥줏집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부하로서 충성을 맹세하는 척하며 호기롭게 술을 마시고, 세련된 아부와 함께 왁자지껄 웃고 떠드는 술자리는 그날도 다르지 않았다. 농담 사이사이 업무상 부하가 가져야 할 태도를 얘기했던 것 같다. ‘직장 생활, 일 잘하는 것보다 태도가 훨씬 중요하다’ 이런 말이 오가다가 내가 별 반응이 없자, ㄷ 과장이 웃으면서 “이 자식아, 좀 잘해라” 하며 맥주병으로 가볍게 내 머리를 때렸다.

평소라면 “과장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충성!” 하며 술을 다시 따랐겠지만, 웬일인지 그날 나는 병으로 한 대 맞은 뒤에도 침묵을 지켰다. 묵묵히 술만 마시자 주변인들도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술자리 분위기가 급격히 가라앉았다. 내가 술자리에서 계획되어 있는 부하된 자의 ‘코드’대로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모두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윤현지 그림


급하게 자리가 정리되고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온 그 밤, 잠을 자지 못했던 것 같다. 그날 침대에 누워 무엇을 느끼고 곱씹었던가? 어떤 모멸감이었는지, 아니면 분함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그 상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뒤늦게 화가 나거나 했던 것도 아니었다. 내가 그나마 ㄷ 과장을 노려보았던 것은 3년 차 사원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저항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다음 날 회사에 출근하지 않는 것으로 그 저항을 이어갔다. 무단결근을 한 것이다(조심하시라, 노동자의 무단결근은 회사의 사정과 업무 내용에 따라 단 며칠만으로도 정당한 해고 사유가 되니까). 오후 느지막이 상사에게 전화해 “퇴사하겠다”라고 선언하고, 혼자 차를 몰고 강화도에 갔다가 밤늦게 돌아왔다.

이튿날 회사에 출근했더니 ㄷ 과장은 내게 즉각 사과했다. 나는 그 사과가 진심임을 알았지만, 과장 때문에 퇴사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사실 그를 전혀 미워하지도 않았고 평소 인격적으로 훌륭한 분이어서 후배들로부터 존경받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술자리에서의 그 폭력 사건은 너무 경미한 것이어서 사실 아주 작은 에피소드에 불과하지만, 나는 무언가 모를 답답함과 인생에서 쌓인 울분을, 그 술자리를 기화로 폭발시켰는지도 모른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 규정에 거는 기대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퇴사를 결심하고 있었고, 실제로 2년 후에는 대학원 진학을 위해 그것을 감행하게 된다. 그것은 나중의 일이었고, 퇴사를 입으로 뱉은 뒤에는 두려워졌다. 대책 없는 퇴사 선언 이후 시간이 지나자 차가운 현실을 파악하기 시작했고, 슬그머니 퇴사를 번복하고 싶은 마음이 자리를 잡았다. 당시 나이 스물아홉. 안정적인 회사를 그만두고 해외여행을 갔다 돌아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니, 내게 뭔가 하고 싶은 게 남아 있기나 한가. 선후배들과의 몇 차례 술자리 끝에, 나는 ㄷ 과장에게 사과하고 회사의 내 자리로 패잔병처럼 돌아왔다.

내 경우는 일회적인 사건에 불과했지만, 통상의 직장 내 괴롭힘은 매우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폭력이 행해질 경우 그 강도가 점증하는 형태로 구성된다. 폭언이나 업무적으로 보이지 않는 괴롭힘의 사례가 더 많기도 하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 규정이 7월16일부터 시행되었다. “사용자 또는 근로자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근로기준법 제76조 2항).” 누군가에게 부당한 고통을 받으며 임금노동을 제공해야 하는 노동자는 이제 사라질 수 있을까? 이 법이 그 작은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기자명 양지훈 (변호사·〈회사 그만두는 법〉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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