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에 쥐고 도끼처럼 쓸 수 있는 모양의 뗀석기가 ‘주먹도끼빵’이 되었다. 유지은씨(31)는 그 빵에 이야기를 만들어주고 패키지를 디자인하는 홍보·브랜드 분야 프리랜서였다. 이른바 ‘6차 산업’ 종사자로 주먹도끼빵을 비롯한 많은 농산물 가공품이 유씨의 손을 거쳤다. 주로 혼자 일하다 보니 성별을 이유로 차별받을 일도 드물었다. 결혼은 달랐다. 새로운 가족과 부대끼는 동안 유씨는 ‘한국에서 여자는 대체 뭘까’ 하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웠다. 여성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

막연했던 생각이 구체화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뽀통령’을 좋아하는 조카 덕분이었다. 조카와 함께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불현듯 마음이 불편했다. 등장하는 캐릭터 일곱 중 여성은 단 둘이었다. 사고를 치기보다 사고를 수습했고, 싸우는 대신 삐쳤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대부분의 콘텐츠가 그런 식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때마침 SNS를 통해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엄마들 모임을 접했다. 유·아동 콘텐츠를 페미니즘 시각으로 다시 읽고 고쳐 쓰는 동안, ‘할 일’도 분명해졌다.

ⓒ시사IN 신선영


지난 1년간 유씨는 도서관과 서점을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수백, 수천 권의 그림책과 동화책을 샅샅이 훑었다. 독일·영국·스웨덴 등에서 시행 중인 성평등 가이드라인과 아동문학 연구 자료를 참고해 나름의 기준도 세웠다. 등장인물 설정 및 묘사와 대사에 성차별적이거나 성 고정관념을 반영하는 내용이 없을 것, 여성 주인공이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할 것 등 기준을 통과한 책을 목록으로 만들었다. 좋다고 알려진 책이지만 선정할 수 없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번역을 거치면서 원서와 달라진 경우가 있었다. 성별이 불분명한 성 중립 캐릭터를 굳이 남녀로 나눈다든가, 동등한 관계였던 주인공이 결혼 이후 여성만 존댓말을 쓴다든가 하는 식이었다.

유씨는 목록을 바탕으로 지난 6월11일, 3~7세 아동을 양육하는 부모를 위한 성평등 도서 큐레이션 서비스를 론칭했다. CI(Corporate Identity)는 딱따구리다. 딱딱한 나무를 쪼개는 딱따구리처럼 견고한 성 고정관념을 뚫을 수 있는 힘을 담고 싶었다. 딱따구리를 발음하기 어려워하는 아이들을 고려해 나무 뚫는 소리인 ‘우따따’를 서비스 이름으로 지었다. 우따따는 월 3만~5만원을 내면 그림책 2~4권과 함께 색칠하고, 오리고, 그리는 등 책과 관련된 활동을 할 수 있는 워크북을 제공한다. 책 선정만큼이나 유씨가 신경 써서 만든 워크북에는 다양한 몸집의 아이들, 성별을 나타내는 색이나 옷차림을 부각하지 않는 묘사, 살림하고 육아하는 아빠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림책은 아이가 처음 만나는 다른 세상이잖아요. 성별로 자신의 가능성을 제한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성평등 교육이야말로 창의성을 고양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 아닐까요. 단순히 ‘내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다양성에도 도움이 되는 거죠.” 유씨는 7월13일 약 두 달 일정으로 출장을 떠났다. 영국·독일·스페인 등지에서 실제 유·아동 성평등 교육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중점적으로 살펴보고 올 예정이다.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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