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한국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라’다. 7월3일 일본 방송 TV아사히에 출연한 아베 신조 총리는 “(한국이) 국제적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우대조치를 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국제적 약속이 휴지조각이 되었다”라고 말했다. 경제보복 조치에 대해 아베 총리와 일본 정부는 다음과 같이 합리화한다. 1965년 한일협정 당시 서로의 청구권을 포기했고, 이는 국가 간 약속이 되었다. 2015년에는 한·일 ‘위안부’ 합의까지 맺었지만 한국은 정권이 바뀐 뒤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한국 사법부는 이 한일협정과 반대되는 판결(2018년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을 내렸다. 국가 간 약속을 따르지 않는 나라에게 그동안 제공한 우대조치(화이트리스트)를 물리는 건 당연하다는 논리다. 이는 일본 내부 결집용으로도 활용된다. TV아사히와의 인터뷰에서 아베 총리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일본도 할 때는 뭐든 한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아베 총리가 주장하는 ‘약속’의 핵심은 무엇일까. 아베 총리의 말대로 한국은 국가 간 약속을 가볍게 여긴 걸까. 우선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 문제부터 살펴봐야 한다. 정식 명칭은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이다. 여기서 양국은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고 협약했다. 아베 총리를 비롯한 일본 우익은 상대방 국가에 대한 개인 청구권까지 이 협정에 기초해 일괄 해결되었다고 주장한다.
 

ⓒ연합뉴스

그러나 일본 내부에서 아베 총리의 인식과 반대로 해석해온 역사가 있다. 2018년 11월14일, 일본 중의원 외무위원회에서 고쿠타 게이지 의원(일본공산당)은 1991년 야나이 지 당시 외무성 조약국장의 발언을 언급했다. 당시 야나이 국장이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한일 청구권협정은 양국이 국가로서 가진 외교 보호권을 서로 포기한 것이다. 개인의 청구권을 국내법적 의미에서 소멸시킨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가 간 청구권과 개인의 청구권은 별개라는 입장이었다. 이에 대해 고노 다로 일본 외무장관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이) 개인 청구권 자체를 국내법적 의미로 소멸시킨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2018년 10월30일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처음으로 일본 정부 각료가 ‘개인 청구권은 별개다’라고 확인해준 셈이다. 고노 외무장관은 동시에 “개인 청구권을 포함해 한·일 간의 재산 청구권 문제는 한일 청구권협정에 의해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이 끝났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2000년부터 개인 청구권 소멸 논리 펼쳐

이 모순된 인식에 꾸준히 문제를 제기해온 대표적 인물이 야마모토 세이타 변호사다. 청구권 문제에 관한 전문가이자, 1990년대 위안부 소송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법률 대리를 맡았던 인물이다. 야마모토 세이타 변호사는 2014년 〈한일 양국의 한일 청구권협정 해석의 변천〉이라는 논문에서 ‘개인의 청구권이 1965년 한일협정으로 소멸했다’는 논리는 비교적 최근에 등장했다고 설명한다. 1990년대 위안부, 피폭 피해자, 강제징용 피해자 등 한국인 피해자가 각종 ‘전후 보상 재판’을 청구했는데, 일본 정부는 이때까지 ‘1965년 한일협정 때 다 해결되었다’라고 하지 않았다.

흐름이 바뀐 것은 2000년 11월부터다. 당시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주법(일본강제노동손해배상특례법)을 통해 2차 세계대전 당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배상받을 길을 마련해두었다. 당시 미국에 사는 강제동원 피해 한인이 일본 기업에 소송을 제기하자 일본 정부는 이 소송에 대한 의견서를 2000년 11월17일에 제출한다. 이 의견서에서 일본 정부는 처음으로 개인의 청구권이 1965년 한일협정으로 소멸되었다는 논리를 동원했다.
 

ⓒ합동통신 1965년 12월18일 한일협정 비준서를 교환하는 이동원 외무장관(왼쪽)과 시나 일본 외무장관.

과거 일본 사법부도 일본 정부가 반발하고 있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유사한 판례를 남겼다. 1965년 한일협정과 마찬가지로 일본은 미국과 소련을 대상으로도 청구권협정을 체결했다.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1951년)과 일·소 공동선언(1956년)이 그것이다. 미국의 군사행동으로 인한 원폭 피해자와 소련의 조치로 인해 피해를 당한 시베리아 억류 피해자는 청구권협정에 따라 일본 정부에 소송을 제기했다. 일본 사법부는 이 소송에서 개인 청구권이 사라지지 않았다고 판결했다. 즉, 피해를 본 개인이 미국과 소련에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다고 보았다.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이나 일·소 공동선언에 나오는 청구권 포기 조항은 국가의 외교 보호권에 국한되므로, 피해자 개인이 미국이나 소련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는 소멸하지 않았다는 논리였다.

일본 정부 역시 유사한 판단을 내놓은 적이 있다. 1991년 3월 다카시마 유슈 당시 외무대신 관방심의관은 참의원 내각위원회에서 “일·소 공동선언에서 청구권 포기는 국가 자신의 청구권 및 외교 보호권의 포기일 뿐, 개인의 청구권까지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1990년대까지 일본 정치권에서 ‘개인 청구권’은 상대국을 막론하고 조약과 별도로 널리 인정되던 권리였다.

아베 총리가 주장하는 ‘약속’의 의미는 이처럼 시대에 따라 달리 해석됐다. 2019년 현 시점에 ‘한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주장은 정치적 수사에 가깝다. 나아가 일본은 추가 명분을 하나 더 세우고 있다. ‘안전보장’이라는 키워드다.

세코 히로시게 일본 경제산업장관은 7월9일 국무회의 직후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조치는 안보를 위해 수출 관리의 국내 운용을 검토하는 것이다. 협의할 대상이 아니며 철회도 고려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전날인 7월8일 문재인 대통령이 ‘양국 간 성의 있는 협의’를 촉구한 것에 대한 대응이었다. 한국이 장기적으로 일본 안보에 위협이 되는 존재라는 주장이다.

마침 일본 언론에서 안보상 위험 요인이 생겨 이번 수출규제가 추진되었다는 식으로 보도를 내기 시작했다. 7월9일 일본 NHK 방송은 일본 정부 관계자 발언을 인용해 “수출규제를 한 원재료는 화학무기인 사린 등으로 전용될 가능성이 있다”라고 보도했다. 이 보도는 신빙성이 떨어진다. 보도 내용에 등장하는 일본 정부 측 관계자는 이번 수출규제 품목 중 하나인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가 사린가스 제작에 쓰일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지만 사린가스는 저순도 불화수소로도 충분히 만들 수 있다. 1995년 옴진리교가 저지른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테러의 기억을 노려 내부 여론을 자극하기 위한 정치적 발언으로 해석된다.
 

ⓒ연합뉴스7월10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30대 기업 총수들이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와 관련한 대책을 논의했다.

7월10일 후지TV는 “한국에서 지난 4년간 무기로 전용 가능한 전략물자의 밀수출이 156차례나 발생했다”라는 내용을 일본 정부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해 보도했다. 해당 보도 역시 명확한 근거가 부족하다. 전략물자 밀수출 문제는 한국 정부가 적발해낸 실적에 관한 내용으로 올해 5월에 국회의 요청(조원진 국회의원실)에 따라 제출한 자료였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오히려 우리나라 전략물자 수출 관리제도가 효과적이고 투명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일본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총 적발 건수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라며 후지TV 보도를 반박했다.

아베 총리는 공세를 이어갔다. 7월7일 후지TV에서 진행된 참의원 선거 당수 토론에서 아베 총리는 “한국은 대북 제재를 지키고 있다고 말하지만, 징용공(강제징용 피해자) 문제에 대해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 명확하게 됐다. 무역관리도 지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당연하다”라며 일본에서 수입한 물품이 북한으로 흘러 들어간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7월11일 국회 국방위 소속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어 “일본이 과거 불화수소 등 전략물자를 북한에 밀수출한 사실이 일본 안전보장무역정보센터(CISTEC) 자료에서 확인됐다”라고 발표했다. 오히려 무기 제조에 이용되거나 군사용으로 활용 가능한 전략물자가 일본에서 밀반출됐다는, 따라서 일본이 적반하장식 대응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발표 열흘 만에 일본의 무역규제 문제는 한·일 양국 간에 돌이킬 수 없는 거리감을 만들었다. 특히 한국을 ‘위험국가’ 수준으로 판단할 것이라는 일본 정부의 방침이 드러남에 따라, 한국 정부 역시 대응 강도를 높이고 있다. 7월10일 청와대에서 30대 기업 총수 및 경제단체장과 회동한 문재인 대통령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우리 경제에 타격을 주는 조치를 취하고 근거 없이 대북 제재와 연결시키는 발언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일본이 더 이상 막다른 길로만 가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협의를 제안했던 7월8일 첫 메시지와 달리 매우 강경한 톤이었다.

정부는 아직 외교적 해결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지만 사태가 빠른 시일 내에 해결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일부 야당 인사들은 강제징용 배상 청구를 한국 정부가 처리하는 형태로 특별법을 만들자고 제안하지만 이는 대법원 판결 자체를 무력화할 우려가 있다. WTO 제소, 추경 확보, 부품 국산화 등이 대안으로 제기되고 있으나 핵심은 일본의 변화일 수밖에 없다. 대북 문제, 미·중 무역전쟁만큼이나 어려운 외교적 문제가 동아시아에서 동시다발로 펼쳐지고 있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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