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제도 개혁인가, 검찰 개혁인가? 더불어민주당이 선택의 기로에 섰다. 교섭단체 3당(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이 지난 6월28일 도출한 합의에 따라서다.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와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의 활동 시한을 8월31일까지로 연장하되, 위원장은 교섭단체가 의석수 순위에 따라 나눠 맡는다는 것이 합의문의 골자다. 제1당인 민주당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면 제2당 자유한국당에서 다른 특위 위원장을 맡게 된다.

정개특위는 선거제도를, 사개특위는 검경 수사권 조정 및 공수처 신설을 담당한다. 세 안건은 지난 4월30일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에 올라갔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여야 합의 없이도 국회 본회의에 올라갈 수 있다. 당시 몸싸움으로 이를 저지하려던 자유한국당은 지금도 ‘무효’를 주장한다. 자유한국당 출신 위원장이 맡게 될 특위 안건은 처리되기까지 난항을 겪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연합뉴스6월28일 교섭단체 3당 원내대표가 정개특위와 사개특위 관련 합의문에 서명했다.

민주당은 두 특위 중 어느 쪽을 선택할까? 민주당의 선택에 따라서는 ‘선거법 개혁’이 좌초될 수도 있다. 내년 총선 일정 때문이다. 패스트트랙에 올라간 법안은 설사 특위 위원장이 의결을 거부하더라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본회의에 상정된다. 문제는 시일이다.

일단 민주당이 정개특위 위원장을 맡으면 선거법 개혁안은 8월31일까지 특위에서 의결될 수 있다. 그다음 단계인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90일 이내)’ 기간이 최장 90일이란 점을 감안하면, 선거법 개혁안은 늦어도 올해 11월 말에는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것이다.

민주당이 사개특위 위원장을 선택한다면, 정개특위 위원장은 자유한국당의 몫이다. 자유한국당의 정개특위 위원장은 선거법 개혁안을 의결하지 않을 것이다. 이 경우에는 국회 절차상 ‘행정안전위원회 심사’가 추가된다. 그렇게 되면 패스트트랙 관련 조항에 따라 선거법 개혁안은 늦으면 내년 1월 말에야 본회의에 상정된다. 이렇게 선거법 개혁안이 본회의를 통과한다 해도 ‘선거구 획정’ 등을 완료해야 바뀐 법안으로 내년 4월15일 총선을 치를 수 있다. 매우 빠듯한 일정이다. 자칫 개정 선거법이 무용지물로 전락할 수도 있다.

민주당이 정개특위 위원장을 맡아야 한다는 의원들은 “사개특위 위원장을 자유한국당에 내주더라도 사법개혁 법안 추진에 치명적이지는 않다”라고 주장한다. 사개특위 안건은 소관 상임위원회가 법사위다. 정개특위 사안인 선거법 개정안과 달리, 법사위 소관인 사법개혁 법안들은 국회법에 따라 180일간 소관 상임위(법사위) 심사 기간만 채우고, 90일간의 체계·자구 심사는 거치지 않아도 된다. 즉, 늦어도 10월 말에는 공수처 신설안과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본회의에 자동 상정된다.

정의당은 애초 양자택일의 상황을 빚은 교섭단체 3당 합의를 강하게 비판한다. 특히 날이 향하는 곳은 민주당이다. 6월28일 합의에 따르면 민주당이 어떤 선택을 하든 정의당인 심상정 정개특위 위원장은 교체될 수밖에 없다. 합의문 발표 당일 의총에서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는 “개혁을 향해 노력해온 정의당에게 단 한마디 사전 교감 내지 논의도 없이 합의한 것은 배제의 정치이고, 배신의 정치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라고 비판했다. 같은 날 심상정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어 “쉽게 말해 해고됐다”라고 말했다. “자유한국당은 ‘심상정 위원장 교체’를 집요하게 요구해왔다. 선거제도 개혁을 좌초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정의당 내에서는 “이런 요구를 수용한 민주당 지도부의 정치개혁 의지가 의심스럽다” “민주당 선택에 따라 개혁 공조 와해를 검토해야 한다”라는 말까지 나온다.

선거제 개혁에 영향 받는 의원들의 선택

야 3당(정의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이 우려하는 것은 민주당이 사개특위를 선택하는 경우다. 자유한국당이 정개특위 위원장을 가져가면, 야 3당의 결정적 이익이 걸린 선거법 개혁이 좌초될 수 있다고 본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와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가 7월2일 기자회견을 열어 “민주당이 정개측위 위원장을 맡아 선거제 개혁을 책임 있게 완수하라”라고 밝힌 이유다.

민주당은, (민주당이) 한쪽 특위 위원장을 택한다고 해서 다른 특위가 담당하는 현안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민주당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정개특위 위원장을 맡으면 사법개혁을 포기하는 것이고, 사개특위 위원장을 맡으면 선거제 개혁을 포기하는 것처럼 언론이 프레임을 만드는 게 매우 악의적이다. 둘 다 추진해나갈 핵심 과제다”라고 말했다.
 

ⓒ사진공동취재단4월29일 정개특위 회의에 앞서 장제원 자유한국당 간사가 심상정 위원장에게 항의하고 있다.

야 3당이 사실상 4당 공조를 걸고 ‘정개특위를 선택하라’고 요구했지만 민주당 지도부는 결론 내기를 수차례 미뤘다. 민주당 지도부는 ‘7월 초까지 결론을 내겠다’라고 천명한 바 있다. 그러나 7월4일 의원총회 후 박찬대 원내대변인은 “당내 의견이 완전히 쏠려 있지는 않다. 다음 주 초에 (결정되리라고) 예상한다”라고 말했다. 나흘 뒤인 최고위원회의에서도 민주당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한 정개특위 위원은 7월10일 “오늘내일 정개특위 위원장을 맡는 쪽으로 발표할 줄 알았는데, 여러 상황과 맞물려서 오래갈 것 같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내에서 ‘사개특위를 선택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이들은 ‘지지자 여론’을 이유로 꼽는다. 이원욱 원내수석부대표는 지난 6월28일 “‘검경 수사권 조정, 공수처 신설 등은 노무현 정부에서부터 주장한 중요 의제다. 사개특위 (위원장을) 자유한국당에 넘기면 사법개혁을 사실상 포기했다고 보일 수 있다’라는 게 이 주장의 논지다”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선거제 개혁에 미온적인 당내 일부 의원들과 관련이 있다. 선거제도 개혁으로 당장 지역구가 날아갈 의원, ‘소수 정당에 의석을 떼어주는’ 게 마뜩잖은 의원도 있을 수 있다. 이들은 선거제 개혁이 사법개혁과 연동되고, 이를 통해 야 3당과 공조하던 패스트트랙 국면에서는 의견을 개진하기 어려웠던 세력이다. 그러나 정치개혁과 사법개혁 간 연동이 느슨해지고, 심지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 오자 ‘사법개혁 우선론’을 꺼내든 것으로 보인다.

현 상황에서 민주당이 사개특위 위원장을 맡는 경우, 결과적으로 사법개혁 법안 처리가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야 3당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법개혁 법안들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는 데 야 3당이 동참한 결정적 사유는 ‘선거제 개혁으로 얻을 수 있는 자당의 이익’ 때문이란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특히 바른미래당 지도부가 패스트트랙을 둘러싼 극심한 내홍에도 불구하고 견지했던 입장은 ‘선거제도를 바꿔야 독자 생존할 수 있다’였다(〈시사IN〉 제607호 ‘한국 정치 요동칠 20대 국회 최대 사건’ 기사 참조). 정개특위 민주당 간사인 김종민 의원은 “이번에 정개특위 위원장을 가져오지 않으면 4당 공조로 이룬 과반 세력이 깨진다. 당연히 사법개혁 법안들도 처리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진퇴양난 가운데에서도 민주당 인사들은 대체로 “사개특위를 택해 ‘당장 3당에서 매 맞는 것’보다는 정개특위를 택하는 게 낫다”라고 기자에게 말했다. 세 법안을 패스트트랙에 올린 뒤에 쭉 그랬듯, 민주당이 어느 한쪽을 택하기로 결정한 뒤에도 상황이 쉽사리 정리되지 않을 공산이 높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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