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유정의 짧은 침묵은 이후에도 찾아볼 수 있었다. 최근의 예를 들자면 MBC 파일럿 예능 〈가시나들〉에서 소판순 할머니와 짝을 이뤄 대화할 때다. 특유의 활달함으로 끝없이 대화를 이어가던 그는 몇 번 침묵을 보인다. “나를 두고 먼저 떠난” 남편은 “나쁜 사람”이라는 할머니의 말에 그는 침묵한다. “우리도 (너희처럼) 꽃 같은 때가 있었다”라고 할 때도 그렇다. “아유, 아니에요”라며 어떻게든 위로하거나 좋고 예쁜 말을 들려주려 하지 않는다. 그저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예능 속 연예인의 진심이란 늘 알기 어려운 법이지만 유정은 아이돌에게, 그리고 방송인에게 기대되는 ‘예능 화술’이나 리액션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듯한 몇몇 순간을 내비친다.
친화력의 비결은 다른 데 있지 않다. 그의 시도 때도 없는 질문은 결국 상대방에 대한 세세하고 한없는 호기심, 곧 관심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보인다. 주어진 역할보다, 역할을 통해 만나게 된 사람과의 관계가 훨씬 중요하다는 듯이 말이다. 소판순 할머니는 회를 거듭할수록 활달해진다. 유정에게 휘말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는 얼굴을 종잇장처럼 마구 구겨대며 분방한 표정을 짓고, 보이그룹 안무를 과격하고도 완벽하게 소화해낸다. 그런 모습은 ‘흥 많은 연예인’보다는 차라리 수학여행의 장기자랑에서 본 것 같다. “2반은 누구 없어?” 하면 마치 맡겨놨다는 듯이 부리나케 뛰쳐나가 무대를 장악하는 아이 말이다. 그런 그에게서 우리는 친해지고 싶은 친구를 발견하는지도 모른다. 상대를 이해하고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려는, 또한 이를 위해 뭐든지 할 준비가 돼 있는 그런 친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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