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란 충돌 상황이 전쟁으로 번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최소 50% 이상은 된다.” 1970년대 이란 정부에서 에너지 자문위원을 맡았고 지금은 에너지 컨설팅 회사를 운영 중인 페레이둔 페샤라키가 미국 CNBC 방송에서 한 말이다. 실제로 요즘 미국 주요 언론에서는 미국-이란 전쟁에 대한 우려가 높다.

미군은 최근 무인정찰기 글로벌호크가 호르무즈해협 근처에서 이란 혁명수비대에 의해 격추된 직후 군사 보복으로 대응하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막판 중단 결정으로 가까스로 무력충돌은 피했다. 미국은 보복 공격을 멈췄지만 이란 최고 지도부를 향한 제재를 단행하면서 긴장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6월24일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를 겨냥한 추가 제재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뿐 아니라 미국이 테러 집단으로 규정한 이란 혁명수비대의 고위 사령관 8명을 제재 대상에 새로 포함했다. 미국 내 이란 자산 수십억 달러가 동결되었다.

ⓒAP Photo6월21일 이란 혁명수비대가 미군 무인정찰기 글로벌호크를 격추했다며 공개한 무인정찰기 잔해.

자국 최고 지도부를 향한 미국의 추가 제재에 맞서 이란은 결사항전 태세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백악관을 가리켜 “정신적 불구”라고 혹평했는가 하면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에 대한 제재를 “터무니없고 멍청한 짓”이라고 맹비난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도 트위터를 통해 로하니 대통령에게 “현실을 모르는 무식한 행태”라고 맞받아쳤다. 이어 그는 “이란이 미국을 건드린다면 압도적인 미국의 군사력에 직면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이처럼 미국-이란 양국의 긴장이 높아지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을 포함해 일부 적성 국가들에게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온 ‘최대 압박(maximum pressure)’ 정책이 과연 이란에도 통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최근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회의적 분위기가 확산 중이다. 미국은 최대한 경제 압박을 통해 이란으로 하여금 핵협정 재협상의 장으로 끌어내려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란은 미국의 압박에 굴복해 협상장에 나오기는커녕 반발 수위를 높이며 군사적 대응까지 각오하고 있다. 이란이 자국 영공을 침해했다며 미군 무인정찰기를 격추한 사건이 이 같은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미국은 그동안 이란에 대해 ‘최대 압박’ 기조를 유지해왔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우방들의 강한 만류에도 지난해 5월 이란 핵협정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하며 이란에 재협상을 요구했고, 이란이 불응하자 최대 압박 카드인 경제제재로 응수했다. 당시 제재는 미국 기업은 물론 이란과 거래하는 외국 기업까지 그 대상에 포함돼 이란으로선 경제 직격탄을 맞았다.

문제의 핵협정은 미국을 포함한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과 독일이 이란을 상대로 수년간 험난한 협상을 벌인 끝에 2015년 7월 타결된 것이다. 공식 명칭은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 당시 핵협정은 향후 13년 동안 이란이 저농축 우라늄 저장을 98%까지 감축하고 핵무기 생산에 필수인 가스 원심분리기도 3분의 2까지 줄이며, 이 기간에 새로운 중수 원자로 시설을 짓지 않기로 합의했다. 그 대가로 이란은 경제제재 해제와 함께 그간 막혔던 원유 수출을 재개할 수 있게 되어 경제 회복의 숨통이 트였다.

“트럼프 참모들, 전쟁 불가피론 주장”

미국의 일방적 핵협정 탈퇴 이후 경제제재가 복원되면서 원유 수출이 막히자 이란 경제는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국제통화기금(IMF) 통계에 따르면 이란은 핵협정 타결 이듬해인 2016년 무려 12.3% 경제성장을 기록했고, 2017년에도 6% 가까이 성장했다. 미국의 제재 이후 이란의 경제성장률은 2018년에는 마이너스 3.9%를 보였고, 올해도 마이너스 6%로 예측된다.

이란은 최악의 경제난을 겪으면서도 미국의 최대 압박에 굴복하지 않을 태세다. 오히려 이란은 저농축 우라늄의 저장 규모가 6월27일 이후엔 2015년 핵협정 때 규정된 한도를 넘어설 것이라고 시사했다.

이란의 추후 행동과 관련해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란이 저농축 우라늄 저장 한도를 넘길 경우 “모든 옵션이 테이블에 있다”라면서 군사행동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군사행동의 열쇠를 쥐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군 무인정찰기 격추 사건 직후 “이란이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다”라며 미군의 보복 공습을 승인했다가 실행 10분 전에 이를 취소한 바 있다. 이후 워싱턴 외교가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외적인 위기상황을 조성하는 데는 능하지만 수습 능력이 부족해 외교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워싱턴포스트〉는 “현재 워싱턴에는 이란에 대한 최대 압박 정책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조차 과연 트럼프 대통령이 제대로 된 대이란 정책을 갖고 있는지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베네수엘라에서 야권이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을 상대로 쿠데타를 시도하다 실패하자 야당 지도자인 후안 과이도를 합법적 지도자로 선언한 뒤 군사행동을 시사했다가 슬그머니 철회한 바 있다.

ⓒEPA트럼프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6월24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서명을 마친 ‘대이란 추가 제재 행정명령’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핵문제 해결을 위해 군사충돌도 불가피하다는 백악관 외교안보 참모들과 달리, 대이란 제재가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인식 아래 가급적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을 선호한다. 실제 그는 핵무기 금지와 테러 지원 활동 중단이라는 “아주 단순한 요구”를 이란이 들어주면 제재를 풀겠다고 말한다. 반면 이란은 미국이 먼저 기존 제재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동 협상 전문가인 로버트 아인혼 전 국무부 차관보는 〈월스트리트저널〉에서 “이란을 협상 테이블로 복귀시키려면 먼저 트럼프 행정부가 제재 해제 조건으로 제시한 12개 포괄적인 요구 사항부터 수정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아직까지 트럼프 행정부는 기존 요구를 완화할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 일부 외교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최대 압박을 통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공개 협상의 장으로 끌어들이는 데는 성공했는지 몰라도 비밀 협상을 선호하는 이란에는 통하지 않으리라 본다.

이처럼 미국-이란 사이의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외교 전문가들은 사소한 오판에 따른 군사 충돌 가능성을 경고한다. 미국과 이란 어느 쪽이든 도발적 군사행동에 나선다면 전쟁이 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스티븐 폼퍼 국제위기그룹 선임정책국장은 〈워싱턴포스트〉에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지만, 외교 안보 참모들이 전쟁 불가피론에 불을 지피고 있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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