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화려하다. 경제 점성술사, 이단적 혁명가, 21세기 의적, 대안 없는 종말론자…. 경제학자 김태동 교수(성균관대)는 “내가 아는 한 가장 뛰어난 국민의 경제 스승”이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실제 미네르바는 “이제는 모르면 당하는 시대가 아니라 털리는 시대”라며 저 높은 경제학을 이 낮은 곳으로 이끌어내는 데 일조했다. 누리꾼 중에는 “당신 때문에 10년 만에 다시 경제학 서적을 꺼내들었습니다”라는 반응을 보이는 이가 적지 않았다. 미네르바가 필독서로 꼽은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는 4개월여 만에 1만7000부가 팔렸다. 미네르바가 지목하기 전에는 연간 2000부가 전부였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판매량이다.

누리꾼은 미네르바의 신상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가 쏟아낸 예견 중에서 오류가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왜 미네르바에 대한 열기는 식지 않을까? 문제는 미네르바가 아니라 ‘미네르바 현상’이었다. 우선 ‘관’의 신뢰가 무너진 곳에 ‘민’의 지혜가 살아 있음을 보여줬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김병권씨는 “정부와 보수 세력은 근거 없는 낙관으로 상황을 오도했고, 진보 세력은 구체적인 사실관계 분석을 소홀히 한 채 신자유주의 종말론으로 흘렀다”라고 지적했다. 그 사이에 국민에게 “사실관계를 있는 그대로 알려주는” 구실을 미네르바가 했다는 것. 홍종학 교수(경원대 경제학)는 12단계 경제위기설로 유명한 미국 루비니 교수의 사례를 들며 “지금이야 유명해졌지만 지난해까지만 해도 그는 미친 사람 취급받을 정도의 비관론자였다. 그런데 미국 의회는 청문회에 그를 불렀고 언론에서도 그의 견해를 다뤘다. 다양한 견해가 소개되지 않으면 예상치 못한 변수가 터졌을 때 대중은 당황하게 된다”라고 덧붙였다.

신뢰가 부재한 공간에 집단 지성이 터를 잡았다는 견해도 있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는 미네르바 현상에 ‘촛불’의 메커니즘이 관통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촛불의 집단 지성은 ‘내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지적 네트워크’였다. 이들에게 직급이나 나이, 배경은 중요하지 않다. 굳이 실명일 필요도 없다. 자기 이름을 걸고 일대일로 붙어 자기가 지지하는 가치를 옹호하고 논리로 입증하면 된다. 그러한 혹독한 검증 과정을 거치면서 탄생한 지성은 내 지성의 일부가 되고 내 주장의 확장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촛불의 집단 지성이 지난 5~6월에는 쇠고기 이슈로 분출되었다면 지금은 경제로 드러나는 것이고, 따라서 제2, 제3의 미네르바는 계속 나올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때문에 김어준씨는 과거 깃발 아래 모인 군중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말했다.

‘촛불’의 집단 지성이 낳은 현상

미네르바만큼이나 누리꾼 사이에서 인기를 누리는 경제평론가 박경철 원장(‘시골의사’)은 반대의 해석을 내놨다. 경제보다 정치 현상으로 보는 쪽이었다. “백마 탄 초인을 기다리는 심정 아니겠나. 대중이 새로운 리더십을 갈망한 것은 꽤 오래되었다. 하지만 새로운 리더십 선출 구조가 마련되지 않다보니 그 공백을 과학에서는 황우석이 그랬듯 경제에서 미네르바가 채워주는 게 아닌가 싶다. 정치권이 각성해야 할 문제다.” 박 원장은 미네르바를 배척해서도 안 되지만 과도하게 찬양할 필요도 없다며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위기론을 제기하면 위기는 절대로 오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미네르바가 긍정적 기능을 했다. 하지만 루머에도 박수친다면 결국 대중은 어리석다는 협공을 받게 된다.”

미네르바 특유의 화법도 한몫했다. 시사평론가 김종배씨는 “단정적으로 말하기 힘든 경제 영역에서 화끈한 예언적 화법으로 경제 대통령을 자청한 이명박을 상대로 ‘맞짱’을 뜨는 것에 누리꾼이 환호한다”라는 점을 꼽았다. ‘지금이 펀드에 가입할 시기’라거나 ‘지금 주식을 사면 1년 내 부자가 된다’고 호언하는 대통령에게 미네르바의 독설은 일종의 대리 배설이었을까?

기자명 박형숙 기자 다른기사 보기 phs@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