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백승기지난 봄 누리꾼들은 저마다 통일되지 않은 ‘아고라’ 깃발을 들고 거리로 나서곤 했다(아래). 위는 12월18일 서울 명동에서 ‘반MB 퍼포먼스’를 벌이는 누리꾼들.

‘촛불’ ‘촛불소녀’ ‘촛불시위대’. 역시나 촛불이 압도한 한 해였다. 올해의 인물 후보군에도 촛불 관련 키워드가 넘쳐났다. 그러나 〈시사IN〉 기자들은 격론 끝에 2008년 올해의 인물로 ‘아고라’를 최종 선정했다. 촛불이 점화되기 전이나, 사그라진 뒤나 아고라가 변함없이 보여준 역동성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포털 사이트 ‘다음’이 ‘아고라’를 서비스하기 시작한 것은 2004년 12월. 아고라(광장)에 모여 정치·사회 및 일상의 대소사를 논의했던 그리스인처럼 누리꾼이 온라인에서 크고 작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토론의 공간을 제공하고자 했다고 회사 측은 밝히고 있다. ‘토론’ ‘이야기’ ‘즐보드’ ‘청원’ ‘네티즌과의 대화’ 같은 하위 메뉴로 구성된 아고라가 ‘폭발’한 것은 2008년 봄이었다.
4월6일 고등학생 ‘안단테’가 시작한 ‘이명박 탄핵 서명운동’이 기폭제가 됐다. 애초에 안단테가 핵심적으로 문제 삼은 것은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이었다. 이것이 이른바 쇠고기 졸속 협상 파문과 맞물리면서 일파만파가 됐다. 인터넷 미디어 조사기관인 코리안클릭에 따르면, 미디어다음 순 방문자 수는 2008년 4월 1875만명에서 2008년 5월 2000만명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페이지뷰(웹페이지를 열어본 횟수) 또한 4월 29억여 건에서 5월 38억여 건, 6월 47억여 건으로 급증했다.

‘안단테’ 청원 계기로 아고라 ‘폭발’

이 과정에서 새 아고리언들이 유입됐다. 몇 년 전 〈딴지일보〉에서 독자 논객으로 활동한 것이 고작이고 먹고사는 데 치여 인터넷 댓글도 보는 둥 마는 둥 살았다는 채수범씨(38, 닉네임 ‘한글사랑 나라사랑’)는 올 4월 우연히 아고라를 알게 되면서 신천지를 발견한 듯 눈이 번쩍 뜨였다고 한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뒤 ‘이건 아닌데’ 싶은 일이 줄줄이 터져 속만 끓이던 참이었다. 아고라를 보니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거기에 다 있더라. 살 것 같았다”라고 그는 말했다.

이들을 매료시킨 아고라의 힘은 무엇이었을까. 〈아이뉴스 24〉 김익현 기자는, 아고라에서 하버마스가 말한 ‘공론 장(public sphere)’의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말한다(〈사이버공론장의 영향력 확대와 역기능〉). 하버마스에 따르면 공론 장은 사적 개인의 단순한 친목 모임이 아니라 주권 의지를 지닌 사적 개인이 모여 스스로의 의지를 표현하는 공개된 장소이다. 그곳은 △토론을 통해 형성되는 공간이고 △이전에는 배제됐던 많은 사람이 참석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이며 △발화자의 사회적 신분이 아니라 그 내용의 장점에 따라 평가되는 공간이다.

실제로 아고라에서 ‘계급장’은 필요없다. 오직 ‘내용’에 따라 평가받는다. ‘안단테’는 고등학생이라는 사회적 신분과 관계없이 ‘탄핵 서명’이라는 내용으로 130만명의 동의를 이끌어냈다. 올 한 해 아고라를 달군 ‘네티즌의 힘으로 우토로 마을 살리기’나 ‘태안반도 자원봉사 지원 모금’ ‘독도 수호 희망모금’ 또한 마찬가지. 중요한 것은 제안자가 아니라 그가 제기한 이슈에 다중(多衆)이 얼마나 공감하느냐였다.

이 과정에서 논리와 설득은 필수이다. 닉네임 ‘장자_누리꾼’은 아고라를 알고 난 뒤 ‘아직도 인터넷에서 존댓말을 사용하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말한다. 진지하게 글을 써야 남을 설득하기도 쉽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공감을 얻은 ‘개념글’은 ‘베스트’에 올라간다. 그렇지 않은 글은 밀려난다. 자연스럽게 자정작용이 이뤄지는 것이다. 기존 사이트는 이런 자정 능력에서 심각한 허점을 드러냈다고 ‘장자_누리꾼’은 주장한다. “네이버는 반복적인 도배하기와 냉소주의가 쳇바퀴 돌듯 한다. 토론을 해도 ‘좌빨’ 등 욕설만 오간다. 디시인사이드는 ‘알바’들의 시장터, 막말의 배설구가 되어버렸다.”
 

ⓒ시사IN 한향란

“아고라의 패배는 우리의 패배”

전문가들의 합세는 아고라에 새 활력을 불어넣었다. 특정 언론에 기고하는 등 기성 매체의 권위를 빌리기보다 아고라에서 ‘계급장 떼고 맞짱 뜨기’를 선택한 전문가의 존재는 이전에 찾아보기 어렵던 것이었다. 국토해양부 산하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김이태 박사(46)가 ‘대운하 참여하는 연구원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아고라에 글을 올린 것은 5월23일이었다. 하반기에는 ‘미네르바’와 김태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성균관대 교수) 등 제도권과 비제도권을 넘나드는 경제 논객이 이 흐름에 대거 합류했다(위쪽 상자 기사 참조).

아고라는 ‘집단 지성’뿐 아니라 ‘집단 감성’이 꽃피는 공간이기도 했다. 촛불시위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누리꾼은 기성 언론을 보지 않았다. 대신 아프리카TV, 칼라TV로 생중계되는 집회 현장을 지켜보았고, 자신들이 생산한 동영상 UCC와 휴대전화·디지털카메라 데이터를 끊임없이 온라인에 유통시켰다. 이렇게 ‘운동’과 ‘놀이’와 ‘저널리즘’이 일체화된 새 혼종 문화의 등장을 이상길 교수(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는 ‘커뮤니케이션적 사건’이라고 명명했다(〈시위·놀이·저널리즘의 혼종문화 탄생〉).

“시위대가 청와대로 가야 하는 이유”(‘짐승이라오’)와 “시위대가 청와대로 갈 필요가 없는 이유”(‘임일오’) 같은 ‘기성 언어’가 치열하게 논전하는 한쪽에서 “대운하 하면 뭐가 좋은데요? 물 민영화? 헐, 장난하세요? 진짜 어이없다. 이명박 대통령. 그쪽께서 대한민국 물 주인 아니잖아요”(18살 학생) 같은 ‘10대 언어’가 공존하는 곳이 아고라였다. 시인 김형수씨는 이렇게 썼다. “난적, 난제를 풍자와 해학으로 무력화시키는, 오직 최강자만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을 아고라는 끝없이 찾아냈다. ‘심재철 의원 18원 후원 사건’ 같은 것들을 보면서 나는 놀랐고, 동시에 나의 ‘낡음’이 두려웠다.”

반면 아고라는 여론의 쏠림 현상을 극대화한다는 염려를 낳기도 한다. 이상길 교수는 “이견이나 이론의 여지를 인정하지 않고 그 존재를 관용하지 않는 태도가 공론 장에 참여하는 개인·집단·미디어 모두에게 공통으로 발견된다”라고 지적했다. 때로는 이 과정에서 사실 왜곡이나 명예훼손이 발생하기도 한다. 정부 여당이 사이버모욕죄 등 온라인 공간에 대한 규제 장치를 도입하겠다는 것도 표면으로는 이런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아고라 대표 논객 중 한 명인 나명수씨(48, 닉네임 ‘권태로운 창’)는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다고 아고라의 뿌리가 흔들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인터넷 공간, 특히 포털 사이트에 대한 각종 사전·사후 규제가 강화되면서 일부 아고리언 사이에 ‘검열로부터 좀더 자유로운 곳에 포스트 아고라를 구축하자’는 의견이 개진된 일이 있다. 그러나 아고라는 반드시 지켜야 할 최후의 보루라는 것이 ‘권태로운 창’의 주장이다. “아고라는 조직도, 모임도 아닌 여론 그 자체다. 아고라의 패배는 우리의 패배다”라는 그는 12월31일 서울 종각에서 열릴 예정인 촛불 집회 현장에서, ‘YTN 살리기’ ‘전교조 해직 교사 살리기’ 등 공안탄압에 맞서는 현장에서 촛불 정신을 되살리기 위해 지금도 치열하게 ‘광장의 상상력’을 모으는 중이라고 말했다.

 

기자명 김은남·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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